-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 있는 삼국시대 제철 관련 취락군. 가촌리 수혈유구는 1995년과 1996년에 창원대학교 박물관에서 실시한 양산시의 문화 유적에 관한 지표 조사 과정에서 확인되었다. 또한 토지개발공사에서 시행한 물금 신도시 택지 조성 사업지에 포함됨에 따라 1997년과 1998년에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삼...
-
경상남도 양산시 명곡동 명곡천변에 있는 조선 중기 양산군수 이여익이 고을 유생들에게 강학하던 대(臺). 강학대는 1832년(순조 32)에 간행된 『경상도읍지』에 의하면, 이여익(李汝翊)이 1644년(인조 22)~1649년(인조 27) 양산군수로 재임하면서 고을 유생들을 인솔하여 강학했기 때문에 생긴 명칭이라고 한다. 이여익은 창녕 사람으로, 자는 비경(棐卿),...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대(臺). 1939년 박재화(朴宰華) 형제가 그의 선조 박치형(朴致亨)을 우모하여 축조하였다. 금산리 거주민의 구전에 의하면, 이곳은 200여 년 전부터 놀이터로서 자리매김하여 3월 삼짇날, 4월 초파일, 5월 단오, 6월 유두, 7월 백중놀이 때 마을 사람들이 화전놀이를 하는 장소로 정해진 마을에서 가깝고 경치 좋...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나주오씨의 제단(祭壇). 나주오씨의 제단으로 주위에는 나주오씨 조상묘가 있다. 이전에는 단의 이름을 치등제단(治登祭壇)이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는 나주오씨의 집성촌이다. 중시조인 진사공 오속규의 후손인 오손을 일대로 하여 8세 오명한이 울산에 입거하고 12세 오세윤에 이르러 양산에 이거하였다....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대(臺). 경파대는 조선 고종조 사인(士人) 정임교(丁壬敎)가 향토의 사우(士友)들과 수창(酬唱)하던 승경지(勝景地)다. 정임교는 이황(李滉)의 문인인 고암(顧庵) 정윤희(丁胤禧)[1531~1589]의 후손으로, 자는 남서(南瑞), 호는 매촌(梅村), 일명 규열(奎烈)이라고도 하며, 효행으로 이름난 인물이다. 정임교는 양산향교의 문묘...
-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에 분포된 삼한시대 초기의 조개더미. 조개무지는 해안·강변 등지에 살던 사람들이 먹거나 사용하고 버린 조개·굴·도구 등이 쌓여서 무덤 같은 모양을 갖춘 것을 말한다. 삼한시대에 양산 지역에는 여러 곳에 패총이 특이한 위치에 분포되어 있는데, 이들 패총은 해안가나 강가가 아닌 구릉의 정상부에 조성된 주거지에서 내다버린 폐기장으로 기능하였다....
-
경상남도 양산시 다방동에 있는 삼한시대 조개더미. 양산 지역에는 삼한시대의 조개더미가 여러 곳에 분포되어 있다. 조개더미는 구릉의 정상부에 조성된 주거지에서 주변에 내다버린 폐기장으로 기능하였다. 조개더미는 당시의 해수면을 고려해 보아도 높은 곳에 위치한 유적으로서 그 형성의 목적이 방어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다방동 조개더미는 1965년 서울대학교 고고인...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 있는 신라시대 석축 산성. 단조산성은 영축산 정상부 위의 자연 암벽을 이용하여 축조한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신라 때 축조된 것으로 전해지며 양산시 하북면에서 울산시 울주군 삼남면 방기리로 연결되는 요해처(要害處)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때에 단조산성에 주둔하였던 조선군이 양산 지역을 침입한 왜군과 가천들에서 싸웠다고 한 점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고려시대 포곡식 석축 산성. 마고산성은 양산시 교동과 원동면 화제리 간 경계를 이루는 오봉산(해발 479.9m)의 9부 능선을 따라 축조한 산성이다. 마고산성은 주민들에 의해 ‘할미산성’, ‘마고성’, ‘산성고개’, ‘성산만딩이’ 등으로 불리고 있었다. 마고산성은 5~6세기에 쌓은 테뫼식이 아닌 대규모의 포곡식 산성인 점으로 볼 때...
-
경상남도 양산시 명곡동에 있는 신라시대 취락 유적. 양산 지역에는 신석기 시대 이래로 인간 집단의 생활 유적인 주거지가 취락을 이루어왔다. 명곡리 취락 유적은 대운산 자락의 북동쪽 사면의 단애(斷崖)에서 주거지의 단면이 발견되었다. 채집된 유물은 주로 4~5세기대의 토기류들이다. 채집 유물과 유적의 입지 등을 고려해 볼 때 명곡리 취락지는 연접한 남서쪽 구릉에...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 대성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대(臺). 대성 입구에 ‘숲안’으로 불리는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큰 터가 있다. 그 속에는 약수터가 있으며, 지금의 도로가 개설되기 전에는 행인들이 쉬어가는 곳이었다. 1917년경 마을 주민인 권순도가 숲안을 무송대(撫松臺)로 이름을 고치고 ‘세계인의 환영비’라는 비석을 세웠다. 현재 이 비석은...
-
경상남도 양산시 화룡리 어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영일인(迎日人) 처사(處士) 정상순(鄭相淳)이 축조하였다. 할석을 쌓아 반구형으로 담장을 둘러놓았으며, 바닥에는 평평한 자연석을 깔아놓았다. 그 위에는 장기·바둑·고누판이 새겨져 있다. 건너편 바위에는 휴룡연(休龍蓮)이라는 각서가 있다. 수석(水石)의 기절(奇絶)이 많아 읍재(邑宰)와 문인(文人)들의 제영(題詠)이...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대(臺). 반산대는 묵경(黙耕) 유준영(柳準永)과 그의 동생인 유복영(柳福永)과 유해영(柳海永) 삼형제가 유상(遊賞)하던 곳이라고 한다. 유준영이 남긴 시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사방의 봉화산에 아침 해 하늘로 떠오르고/ 석양에 푸른 돌은 물 맑은 북천이로다./ 옷섶을 날리며 대에 올라 금회를 노래하는데/ 반산대 위에는...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내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대(臺). 영천이씨 족보에 의하면, 영조 때 이정회(李廷會)라는 사람이 고을 선비들과 유상(流觴)한 곳이라 한다. 선장(仙庄)이라는 지명에 따라 반선대라 이름 붙였다고 전한다. 반선대의 큰 바위에 ‘반선정’이라 새겨져 있고, 아래로는 맑은 물이 흐르는 경치 좋은 곳이다. ‘반선정’ 위에는 모란바위라는...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신라시대 평지 행정성. 『삼국사기』에 의하면 463년(자비마립간 6)에 “왜인의 삽량성 침입 기록에서 보아 삽량성은 5세기 중엽 이전에 이미 존재하였다. 418년(눌지마립간 2)에 박제상이 삽라군(歃羅郡) 태수(太守), 또는 삽량주(歃良州) 간(干)이었다”는 기록을 참조하면 신라가 양산으로 진출한 것은 5세기 초반이었고...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에 있는 삼국시대 토성. 순지리 토성은 양산컨트리클럽이 조성되면서 1982년 12월에서 1983년 4월까지 동아대학교 박물관에 의해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는 전체 성곽의 1/3을 4개 지구로 나누어 실시되었다. 순지리 토성은 하북면 순지리와 답곡리의 경계부에 있는 해발 342.7m의 노상산, 일명 산성산(山城山),...
-
경상남도 양산군 하북면 순지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유적. 주거지는 집터로서 인간이 살던 모든 형태의 생활 유적이며, 양산 지역의 주거지는 신평 주거지 유적 외에 순지리, 지내리 등 여러 곳에 산재해 있다. 석기를 만드는 공방 터로 추정되는 주거지도 있다. 이들 취락은 소규모로서 몇몇 가족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하북면 순지리 영축산 동쪽 자락 못안못 주위...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신라시대 테뫼식 산성. 양산 북부동 산성의 축성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사기』에는 463년(자비마립간 6)에 “왜인이 삽량성(歃良城)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감에 왕이 그 연변(緣邊)에 두 성을 쌓았다”고 한 기록과 673년(문무왕 13)과 687년(신문왕 7)에 “삽량주(현 양산)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 있는 신라시대의 테뫼식 산성. 양산 신기리 산성의 축성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사기』에는 463년(자비마립간 6)에 “왜인이 삽량성(歃良城)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감에 왕이 그 연변(沿邊)에 두 성을 쌓았다”는 기록과 673년(문무왕 13)과 687년(신문왕 7)에 “삽량주(현 양산)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증산리에 있는 조선 중기 왜식(倭式) 석성. 물금 증산리 왜성은 일명 양산성(梁山城)이라고도 하는데, 원래는 황산역(黃山驛)이 있었던 곳이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경상도 동남의 양산 지역이 교두보로서 중요하였기 때문에 황산역이 있었던 곳에 증산리 왜성을 쌓아 침략과 방어에 이용하였다. 1597년(선조 30)에 명과 일본 사이의 강화 교섭...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에 있는 고려시대 석등. 석등은 사찰의 경내나 능묘·정원 등에 불을 밝히기 위하여 돌로 만든 등을 말한다. 통도사 석등은 높이 2.4m이다. 1매로 된 정방형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대석(下臺石)·간주석(竿柱石)이 8각으로 되어 있고, 하대석 옆면에는 안상(眼象)이 새겨져 있다. 하대석 윗면에는 8잎의 엎어 놓은 연화문을 겹...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있는 신라시대 포곡식 산성. 건립경위는 알 수가 없지만 우불산성 내부에서 채집되는 토기편과 서남쪽의 주남리 고분군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신라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의 폐기 시점은 임진왜란 당시 우불산성을 거점으로 왜군이 일시 주둔했었고, 양산 지역의 옛 기록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임진왜란 때였을 것이다. 그 후 전란 속에서 양산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조선 전기 봉수대. 조선 전기에 설치된 양산 원적산 봉수대는 동쪽과 서쪽 주변에 깬돌[割石]로 쌓은 석축이 있으며, 동쪽은 둥글게 석축을 쌓아 그 안에 기와집과 고사(庫舍)를 지었던 흔적이 있다. 서쪽은 능선 정상부를 따라 석축을 경사지게 사각형으로 쌓았고 안에 화덕을 두었다. 주변 석축은 기단 부분은 내탁(內托)하여 쌓고 그 위는...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과 북부동에 걸쳐 있는 고려시대 읍성. 양산읍성의 조성 연대는 명확하지 않다. 『삼국사기』나 『양산군지』에는 신라 자비마립간대(458~479)부터 삽량성에 대한 기록에 나와 있지만 이것을 양산읍성으로 보기에는 의문점이 많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1381년(우왕 7)에 “왜적이 양산에 침범하여 그 백성들이 그 땅을 잃고...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조선 후기 대(臺). 조선 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오명환(吳明煥)이 만년에 건립하였다. ‘병풍 같은 바위와 개석이 있어 매양 이곳에 올라 소요 자적했다’는 제명(題名)이 있다. 병풍 같은 바위 위에 개석이 있고, 대에는 연구대(蓮龜臺)라는 붉은 글씨가 선명하게 쓰여 있다. 곳곳에는 나주오씨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바위에...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늑동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연필대를 묘사한 이재현의 글이 다음과 같이 전한다. “돌 모양은 벼루와 같고 봉우리 모양은 붓과 같으니 오직 너를 좋아하는 것이 너의 붓과 벼루로다. 너를 사랑하고 이름하기를 연필이라 한 것은 붓으로써 쟁기를 삼고 벼루로써 밭을 삼아 갈고 또 다스리면 나의 단전(丹田)을 개벽하리라.”...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던 조선시대에 조성된 대(臺). 조선시대에 현재의 양산시 산막리 영동에 살았던 정병모(鄭柄謨)가 3단으로 축대를 쌓아 조성하였다고 한다. 천성산 기슭에서 발원한 범내가 양산천으로 향하다가 ‘ㄱ’자로 꺾어져 소용돌이치며 흐르는 자리에 위치한 암반 위에 있었다. 대는 높이 약 6~7m, 넓이 60평 정도로 100여 명이 동시에 모일 수 있는 규...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 법기천에 있는 대(臺). 양산 사람인 박경홍이 용천대를 소요 자적하며 지은 시가 다음과 같이 전한다. “땅과 하늘이 숨겨서 이름은 드러나지 않아도/ 돌로 된 대와 은빛 폭포를 자연으로 이루었도다./웅덩이가 검푸르니 일찍이 고기 새우 집이 되었고/ 골짜기가 깊으니 초목이 늦도록 싱그럽도다./고사(高士)가 서로 만나면 사마공처럼 술을...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정자. 일명 고운대, 최공대(崔公臺)라고 하는데, 황산강(현 낙동강의 옛 이름) 서쪽 절벽 위에 있다. 벽에는 최치원의 시가 새겨져 있었으나 오래되어 조감하기 어렵고, 시만 전할 뿐이다. 임경대는 오봉산 제1봉의 7부 능선에 있는 바위 봉우리로 낙동강과 건너편의 산, 들과 어울려 수려한 산천을 확인할 수 있는 훌륭한 명소...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대리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천은(川隱) 박기섭(朴基燮)이 여가 중에 대를 쌓았고, 선현들을 추모하여 풍호대(風呼臺)라 이름을 붙였다. 행양산군수(行梁山郡守) 동래진관(東萊鎭管)을 지낸 병마동첨절제사(兵馬同僉節制使) 이능화(李能華)의 「풍호대서(風乎臺序)」가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