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규
-
조선 후기 양산군수를 지낸 인물.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일보(一甫), 호는 강좌(江左). 권벌(權橃)의 6세손이다. 권만은 일찍부터 박학하고 문장에 능하여 이른 나이에 문과에 급제하여 1747년(영조 23)에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당시 양산은 오봉산(五封山)[하북의 영축산, 상부의 천성산·석장산, 물금의 어곡산, 원동의 내포산] 설치로 여러 가지 폐단을 겪고 있어...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김해(金海). 자(字)는 성보(聖甫), 호(號)는 만취당(晩翠堂). 절효(節孝) 김극일(金克一)의 후손이다. 아들로 수문장(守門將) 김을생(金乙生)과 부장(部將) 김의상(金義祥)을 두었다. 김영호는 조선 중기 양산 지역 출신의 사람으로 임진왜란 당시 두 아들 김을생·김의상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선무원종(宣武原從) 1등공신이...
-
고려 전기 양주방어사를 지낸 무신. 본관은 김해(金海). 김서현(金舒玄)의 후손이다. 김원현은 『고려사』에 1044년(정종 10) 진사 을과에 합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양산군수인 이만도가 찬한 비명에 의하면 문종 때 양주방어사에 임명되었을 때 왜적이 군선 190여 척을 이끌고 삼차강(三叉江)에서 양산으로 진격하자, 김원현은 전투복을 갖추고 힘써 싸워 많은 적을 참하...
-
지산마을을 따라 신령스런 독수리의 산이라고 하는 영축산을 오르는 길에는, 지금은 애잔한 흔적만 남아 있는 단조성이 있다. 그 흔적을 찾아 단조성으로 가는 길은 먼저 통도사 입구에서 지산리(서리·평산·지산)의 지산마을회관 앞 운동장 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가야 한다. 그 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 300여m 정도 가면 조선 숙종 37년에 동우대사가 건립한 축서암이 나온다. 그...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문신. 본관은 양산(梁山). 자는 여빈(汝彬), 호는 송담(松潭). 원래 부여(扶餘)백씨이다. 백수회는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당시 19세였으며, 재실에서 독서를 하다가 왜인에게 붙잡혀 일본에 가서 9년 만에 돌아왔다. 일본에서의 포로 시절 충절과 기개를 지킨 것으로 유명하며 이때 지은 가사나 한시들이 지금도 전해오고...
-
양산향교는 1396년(태조 6)에는 양산초등학교 주위에 있었으며 『조선환여승람』 원사편에 보면 성안의 현 양산문화원 뒤편 느티나무 동쪽에 충렬사가 있었다고 되어있다. 이곳에 충신, 공신의 신주를 이만도 군수가 모셔왔다고 한다. 일제시대에는 충렬사 주위에 60여개의 비석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1919년에 발생한 양산 독립만세운동 때문에 일본 헌병이 충렬사를 파괴하였다....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양산을 빛낸 삼조의열의 비석을 한 곳에 모아 조성한 경위를 밝힌 건립 조성 경위비. 경상남도 양산시에는 왜적에 대항한 신라의 박제상(朴提上), 고려의 김원현(金元鉉), 조선의 조영규(趙英珪) 등 삼조의열(三朝義烈)이 있으며, 이들을 추모하여 군민들이 건립한 비석들이 있다. 매년 조영규가 순절한 4월 15일에 제사를 지냈으나, 일제강...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 춘추공원에 있는 임진왜란 때 활약한 안근(安瑾)을 기리는 추모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양산군수 조영규는 동래성에서 분전하다 장렬한 최후를 맞이한다. 군수를 잃은 양산 백성들이 어쩔 줄을 모르자 이를 안타깝게 여긴 안근이 두 아들 안시명, 안이명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혁혁한 전공을 올렸다. 관리로서의 직분을 다하다 생을 마친 춘추원 삼조의열(三朝義烈)...
-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경상남도 양산시는 산과 들이 좋고 문화 유적이 많으며, 고대로부터 불교 포교지로서 그 명성이 높았고,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던 곳이다. 한반도의 동남부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쪽은 낙동강을 끼고 밀양시와 김해시, 동쪽과 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기장군과 금정구에 각각 접하고 있다. 경상남...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유교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유적과 유물. 유교 유물 유적은 크게 유적 자료와 유물 자료로 나눌 수 있다. 유적 자료로는 서원, 향교, 사우, 누정, 정려, 비석 등의 건축물 등을 들 수 있다. 또 유물 자료로는 서원·향교 등에서 제사 의식 때 사용하는 신주(神主)와 제기, 유교적 세계관을 드러내는 문집과 가문의 역사를 담은 기록인 족보 등이 있다....
-
고(故) 안종석 선생은 양산 향토문화 연구의 거목이었다. 성균관 부관장을 역임한 안종석가 1984년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뒤 미망인 김순덕에 의해 발간된 『석헌집(石軒集)』(1992)에 수록된 그의 약력을 간추려 적으면 다음과 같다. 고 안종석 선생은 광복 후 박제상을 기리는 사당을 거금의 사비로 세움으로써 민족정신을 바로잡고자 했다. 1949년에는 협소한 소토초등학교를 사비를...
-
1592년 일본의 침략으로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벌어진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선조 25)에서 1598년(선조 31)까지 2차에 걸쳐서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전쟁이다. 제1차 침략이 임진년에 일어났으므로 임진왜란이라 부르며, 2차 침략이 정유년에 일어났으므로 정유재란이라 하는데, 이를 통칭하여 임진왜란이라 한다. 이를 일본에서는 ‘문록(文祿)·경장(慶長)의 역’이라고 칭한...
-
경상남도 양산시의 충신을 기리는 단소(壇所). 신라시대의 충신은 박제상이다. 박제상은 신라 17대 내물왕 때 양산의 태수였다. 실성왕 때 고구려와 왜국에 볼모로 잡혀가 있던 눌지왕의 두 아우, 복호와 미사흔을 구한 후, 왜국에서 잔혹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절개를 지켜 순국한 충신이다. 고려시대의 충신은 김원현이다. 김원현은 고려 문종 때 왜적이 전선 190여...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자연신이나 조상에게 제물을 바치거나 기도를 하고자 세운 단. 제단은 제물(祭物)을 바치려고 다른 곳과 구별하여 마련한 신성한 단(壇)으로 여러 종교에서 의례의 중심을 이룬다. 마니산 참성단과 태백산 천제단 등은 단군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며, 유교에서 조상을 기리고자 제사를 지내며 제물을 바칠 때 사용되는 단을 말하기도 한다. 원시종교에서는 덩치가...
-
조선 중기 양산군수를 역임한 무신. 조영규는 어려서부터 총명함이 남달랐으며, 힘이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뛰어났다. 천성이 어질고 담대하였으며, 판단력이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힘이 특별히 세고 몸이 날래어 1544년(명종 9) 무과에 합격하였다. 제주판관을 거쳐서 무장군수와 영암군수 등을 역임하였는데, 어질고 청백한 다스림으로 인해 가는 곳마다 많은 칭송을 받았다....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제반 신앙 행위의 총칭. 종교는 신이나 절대자를 인정하여 일정한 양식 아래 그것을 믿고, 숭배하고, 받듦으로써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얻고자하는 정신문화의 한 체계를 말한다. 한국의 다른 지역과 유사하게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도 불교, 유교, 기독교, 천주교, 천도교, 원불교, 통일교 등 다양한 종교 활동들이 이루어 고 있다. 이 중 불교는...
-
경상남도 양산시 양산읍성터 내에 있던 조선 후기에 세워진 임진왜란의 충의지사 조영규와 백수회의 사우 터. 조영규(趙英圭)는 자가 옥첨(玉瞻), 본관은 직산(稷山)으로, 1554년(명종 9) 무과에 급제하여 1592년(선조 25) 양산군수로 부임하였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동래성을 사수하다가 동래부사 송상현(宋象賢)과 함께 58세로 순절하였다. 1669년(현종...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충과 효와 열을 행했던 사람들.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있는 효충사의 효충계 서문에는 충효열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무릇 충효열(忠孝烈) 세 가지는 천성에서 나오는데, 사람의 도리 가운데 큰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이 성인을 내리시어 군주로 만들고 스승으로 삼아서 삼강오륜을 가르치고 집집마다 깨우쳐서, 왕궁과 도성에서부터 시골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