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있는 김녕김씨 재실. 경의재는 김녕김씨 충의공 백촌 김문기(金文起)의 후손인 김재연(金在衍)·김재간(金在衎)·김재형(金在衡)·김우권(金禹權) 등의 재사이다. 경의재는 조선 세조 때 사육신 중 하나이다. 그의 후손인 김재연은 자는 영보, 호는 양심재이며, 성품이 순수하고 인정이 많고 검소하였다. 늙어서는 성리학을 연구하였는데 경과...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금산의 옛 이름은 금산리(琴山里)·금진(琴津)·금호(琴湖) 등이었다. 1914년 이전까지만 해도 금산리(琴山里)·금산동(琴山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거문고 ‘금(琴)’자가 붙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금정산 장군봉에서 뻗어 내린 산맥을 좌우로 금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좌우에 냉정천과 고천천의 두...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대성암에 있는 조선 전기 목판본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지장보살본원경』은 지장 신앙의 기본 경전이다. 지장보살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중생을 교화하려고 노력하여, 죄를 짓고 지옥에서 고통을 받는 중생들까지도 평등하게 구제하고자 하는 뜻이 담겨 있다. 또한 『지장보살본원경』에는 지옥의 여러 가지 모습이 나오고 부모나 조...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이때 실시된 사창은 고려시대부터 설치해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
경상남도 양산시의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470년(성종 1)에 간행된 불교 경전. 『묘법연화경』의 주된 확인은 회삼귀일(會三歸一)과 구원성불(久遠成佛)로 요약된다. 회삼귀일은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의 삼승(三乘)을 일불승(一佛乘)으로 회귀시키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 제법(諸法)의 실상을 바로 깨치면 일체 중생이 모두 성불할 수...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사창은 고려시대부터 설치해 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실시하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사창은 고려 시대부터 설치해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실시하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사창은 고려 시대부터 설치해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실시하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식을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 우리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사창은 고려시대부터 설치해 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실시하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세조 이후...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사창은 고려시대부터 설치해 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실시하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세...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조선 중기 불교 경전 목판. 대장경(大藏經)이라 함은 원래 인도에서 말하는 삼장(三藏)으로 세 광주리를 의미하는 경(經)·율(律)·론(論)을 말한다. 트리피타카(Tripitaka)라는 팔리어의 한역(漢譯)으로서 불전(佛典)의 총집성을 말하는 것이다. 삼장이란 부처의 설법[經]과 부처가 정한 교단의 규칙[律], 그리고...
-
조선 전기 양산이씨의 시조와 직계 자손과 관련된 고문서. 조선 전기의 고문서여서 일부만 보전되어 있으며, 부분적으로 훼손이 많이 된 상태이다. 보물 제1001호로 지정된 「양산이씨 종가 소장 고문서」는 양산이씨의 시조(始祖)인 이전생과 이징석, 이팔동, 이몽란 등 직계 자손과 관련된 16점의 문서를 통틀어 지칭한 것이다. 이전생의 문서는 이전생을 가선대부공조전서(嘉善大夫工曹典書)에...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사창은 고려 시대부터 설치해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실시하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의 하나. 우리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사창은 고려시대부터 설치해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실시하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위천(渭川) 지역은 동래 지역과 언양 지역을 잇는 중간 지역에 있던 지역으로 봉화산(249m) 밑의 지역이다. 위천은 원적산에서 발원하여 양산천에 합류하는 지류인데, 하천의 명칭이 지역의 명칭으로 쓰이는 것은 일반적이다. 위천산(현재의 봉화산)에는 과거 봉수대 자리였던 위천봉대가 자리하고 있다. 『신증동국...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양산군지』에 따르면 윤산(輪山)은 유산리 앞들 가운데 있는 둥근 야산으로 일명 반월산(半月山)이라 한다. 지금의 양산지방산업단지 한전변전소 서쪽에 있는 산으로 일제강점기에 신사(神祠)가 있었다가 해방과 동시에 없어졌다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조선 세조 때 만들어진 40여 개의 찰방역 중...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본관은 학성(鶴城). 세조의 원종공신인 수사 이종실의 5세손이다. 이겸수는 임진왜란 당시에 의병을 일으켜 여러 번 전공이 있었다. 1594년(선조 27)에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를 대장으로 하는 왜적이 울산 서생포에 주둔하고 명나라 장수 유정(劉綎)에게 화의를 청하였다. 그 해 3월 5일 조정에서 그 진위를 탐정하고자 장희춘(莊...
-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산. 조부는 이조판서 이만영(李萬英)이고 아버지는 순찰사 이전생(李全生)이다. 이전생이 양산시 하북면 삼수리에 정착하여 살았고 큰형 이징석(李澄石)이 세조 대에 추충좌익공신숭록대부예조판서중추부사(推忠佐翼功臣崇祿大夫禮曺判書中樞府事)로 양산부원군에 봉해졌기 때문에 본관을 양산으로 하였다. 둘째 형은 세종 대에 함길도절제사를 역임한 이징옥...
-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본관은 양산(梁山). 호는 취봉(鷲峯). 아버지는 지중추원사 이전생(李全生)이다. 김종서를 따라 6진을 개척할 때 절도사로 공을 세운 이징옥(李澄玉)과 병마절도사 이징규(李澄圭)는 동생들이다. 이징석을 포함한 세 형제를 삼장수라고 부른다. 이징석은 무과에 장원급제하고 1416년(태종 16) 사복시소윤(司僕寺少尹)으로 무과 중시에 급...
-
양산 소토리 효충마을은 신라의 충신 관설당(觀雪堂) 박제상(朴堤上)이 태어난 고향으로서 그 분에 관한 설화와 유적지가 찾아진다. 박제상이 만들었던 정자인 징심헌과 그의 저서인 『징심록(澄心錄)』이 그것이다. 먼저 징심헌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므로 전해오던 이야기와 문헌에 의해서 알아볼 수밖에 없다. 징심헌이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박제상이...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의 하나. 우리 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사창은 고려시대부터 설치해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실시하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세...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인 사창(社倉)의 하나. 우리 나라에서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사창은 고려시대부터 설치해온 의창의 폐단을 극복하고자 실시하였다. 즉, 원곡의 부족과 그것을 보충하기 위한 군자곡의 감소를 막자는 데 있었다. 농민에게 환곡 정책의 일환으로 대여했던 의창곡은 이자를 붙이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다....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 찰방역은 찰방(종6품) 1명이 관장했고, 역리들이 역의 관리와 공무를 담당했다. 특히 중앙 직속 기관이었던 찰방은 역정(驛政)의 최고 책임자였으며, 세력 또한 막강해 양산 지역에 어사가 순찰을 돌 때 보필했을 뿐 아니라 군수(종4품)의 치정을 견제하는 역할까지 했다. 황산역은 조선 세조 때 만든 40개 찰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