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복심법원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강재호는 유년 시절 윤현진으로부터 항일 정신을 배웠다. 이후 1919년 3월 27일 양산군 양산읍에서 장이 선 날을 이용하여 엄주태, 박삼도, 전병건, 정주봉 등과 독립 만세 시위 운동을 벌이기로 하였다. 강재호는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게 체포되었다. 1...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김상기(金相琦)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날 당시 범어사 지방학림의 학생이었다. 당시 범어사에는 초등학교 과정의 명정학교(明正學校)와 중등학교 과정의 지방학림(地方學林)이 있었다. 한편 서울에서 거족적인 3·1운동이 계획되면서 불교계의 민족 대표 한용운이 양산에 내려와서, 주지 오성월(吳星月) 등과 만나 독립 만세 운동에...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범어사로 출가하여 지방학림을 졸업하였다. 이후 불교 전문 강원을 다니면서 서울에서의 3·1운동에 범어사 대표로 김법린, 김상헌, 차상명, 김상기, 김한기 등과 함께 참여하였다. 1919년 3월 18일 범어사 만세 운동 때 주동자로 체포되었다가 연행 중 차상명과 탈출하였다. 다음날 다시 만세 의거에 참여한 후 동래경찰서에서 구속...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28년 3월 23일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였다. 1931년 4월 4일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의 소년부 요원으로 활동하였다. 1932년 3월 16일 구속된 양산농민조합의 간부를 탈옥시키기 위해, 양산경찰서 습격 사건의 주동자 전병건(全秉健)의 지령에 따라 300여 명의 조합원을 동원하여 선두에서 지휘하다가 검거되었다. 1932년 10월...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31년에 창립한 양산농민조합에 최달수(崔達守) 등의 권유로 소년부에 가입하였다. 1932년 3월 15일 양산경찰서에서 ‘소작료 4할 결의’를 하였다는 이유로 조합원 간부 17명을 구류 처분하자, 전병건(全秉健)의 지시에 따라 16일 조합원 300여 명이 양산경찰서를 습격하였다. 김태근도 주동자 김장호(金章浩) 등과 함께 참...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삼도는 1919년 3월 12일 친구 엄주태가 부산 동래고보 만세 시위에 참가한 후 양산 지역에서의 만세 운동 시도를 제안하자 이귀수·정주봉 등과 함께 거사일과 거사 진행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에 1919년 3월 27일인 양산 장날을 거사일로 결정하고 비밀리에 독립 선언서 200매와 공약서, 경고문 등을 등사하고 ‘대한독립만세...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7일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읍(梁山邑) 장날을 이용하여 엄주태(嚴柱泰)·김동건(金東健)·박삼도(朴三道)·정주봉(鄭周奉) 등과 함께 독립 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장터에 모인 3,000여 명의 시위 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 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벌이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같은 해 4월 22일 부산지방...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엄주태(嚴柱泰)는 1919년 3월 27일 전병건(全秉健)·박삼도(朴三道) 등과 같이 독립 선언문(獨立宣言文)과 경고문 등을 인쇄하여 배포할 것을 협의하고 200여 매를 비밀리에 인쇄하여 양산읍(梁山邑) 장날에 운집한 3,000여 민중에게 배포하다가 체포되었다.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 6월형을 선고 받...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7일 양산 장터에서 일어난 양산읍 만세 운동에 이어 이귀수 등과 함께 모의하여 양산읍 2차 의거를 주도하였다. 4월 1일 오후 2시경 2,000여 군중이 모여들자 유경문은 이귀수와 함께 군중의 선두에서 독립 만세를 외치면서 양산군청과 헌병 분견소로 몰려가 구속자 석방을 외치며 항의하였다. 일본 경찰의 공포탄 발사와 총칼...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1919년 3월 27일 제1차 양산의거에 엄주태 등과 함께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이 때 함께한 사람들은 대거 피검되었으나, 이귀수는 잠시 피신하였다가 류경문과 함께 제2차 양산의거를 모의하였다. 1919년 4월 1일 양산장에서 2,000여 군중을 동원하여 제2차 만세 시위를 주도하고 양산군청과 헌병분견소로 진격하던 중 일본 경찰에게 체...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3·1운동 당시 부산진 일신여학교와 동래고보의 만세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양산 지역에서는 엄주태(嚴柱泰)의 주도 아래 이상환·엄주태·전병건(全秉健)·박삼도(朴三道) 등이 만세시위를 계획하였다. 그리하여 1919년 3월 27일 양산장날 독립만세운동을 펼쳤다. 출동한 일경에 의해 엄주태·전병건·박삼도 등이 체포되었으나, 1차 시위 때 검거되...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정주봉(鄭周奉)은 1901년 아버지 정갑룡(鄭甲龍)과 어머니 정아기(鄭兒其)의 아들로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서 태어났다. 1921년 김갑선(金甲先)과 결혼하였으나 이혼한 이후인 1944년에는 배희이(裵喜伊)와 재혼하였다. 1959년 3월 30일 부산광역시 중구 보수동에서 타계하였다. 정주봉은 1919년 3월 경상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