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리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포리는 배내골로 가는 길가에 위치한 마을로 내포천을 중심으로 동편과 서편으로 갈라져 있어 내포리라 부르게 되었다. 내포리에는 김해김씨, 영천이씨가 오래전부터 살았고, 선장마을에도 영천이씨가 오래전부터 살아왔다. 또한 선장마을에는 청송심씨가 밀양에서 이거하였고, 달성서씨와 분성배씨의 정착촌이 있다. 1789년...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밀양 단장면에서 하천을 따라 배내골로 언양까지 이어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고, 큰 들판이 있는 곳이라 하여 대리(大里)라고 하였다. 대리는 임진왜란 때 모여든 피난민으로 큰 마을을 형성하였고, 청도김씨와 김해김씨가 먼저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1786년에 편찬된 『양산군읍지』에 보면 서면 이천리(梨川里...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언마을은 오봉산을 사이에 두고 물금읍과 접하고 있다. 명언마을은 골마을·고개밑마을·갱빈마을 등의 자연 마을을 포함하고 있으며, 김해김씨와 해주오씨가 정착하여 명언마을을 형성한 것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명언마을에는 마을의 번영과 주민들의 평안을 기원하고자 마을 수호신에게 제를 지내고 있는데, 제사...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범서마을에서의 ‘서(西)’ 자와 용포마을에서의 ‘용(龍)’ 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범서동과 용포동 일부를 병합하여 서룡동[리]이 되었다. 북쪽으로는 토곡산(855.1m) 등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대부분 지역이 높게 형성되어 있으며, 동쪽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다. 낙동강과 화...
-
경상남도 남동부에 위치한 시. 양산시는 동경 128°52′18″~129°07′57″, 북위 35°16′16″~35°31′44″에 위치하며, 동쪽과 남쪽은 부산광역시, 서쪽은 밀양시와 김해시, 북쪽은 울산광역시와 접하고 있다. 1996년 3월 1일 도농 통합 형태의 시(市)로 승격되었다. 양산시는 ‘자손대대로 살고 싶은 양산’ 이라는 구호 아래 양산시의 미래상으...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당리는 가야진사(伽倻津祠)가 있는 유서깊은 고장이며 전형적인 농촌 지역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제사조(祭祀條)에 의하면 사독(四瀆) 중 하나인 황산강(낙동강 하류)에 가야진사를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외에도 민속 행사로서 매년 음력 1월 15일에 당곡마을 당산제와 중리마을 당산제를...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원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작원관원문(鵲院關院門)의 ‘원(院)’과 토곡산의 ‘곡(谷)’을 땄는데, 곡이 동과 뜻이 상통하여 원동이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원동마을은 원리(院里), 함포(含浦) 두 자연 마을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양산군읍지(梁山郡邑誌)』 서면 면리조에는 원동리, 함포리로 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경상남도 양산시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동면 소재지는 원리에 있다. 면조(面鳥)는 꿩, 면목(面木)은 느티나무, 면화(面花)는 배롱나무꽃(백일홍)이다. 삼국시대 용당리에는 신라에서 가락국으로 통하는 수로인 가야진나루가 있었다. 신라와 가락국이 밀양군과 양산군을 거쳐 가는 경계 지점에 작원관원문(鵲院關院門)이 있어 육로...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시에 원동관이 위치한 곳에 있었던 나루. 양산 지역에서 밀양으로 건너가던 나루로, 원래는 원동관이 있던 곳이라 원동이라 불렸고, 원댕이, 원리라고도 불렀다. 원동은 신라와 가락국의 국경에 위치한 교통의 요충지였다. 그래서 이곳에 작원관원(鵲院關院)을 두고 육로와 뱃길을 감독, 관리하였다. 그래서 ‘원이 자리한 마을(洞)’이라는 뜻의 ‘원동...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원동 또는 원댕이라 하였다. 신라와 가락국이 수로 및 육로를 이용하여 김해와 밀양으로 내왕하던 교통 요충지로서 중리마을 서쪽에 국경수비대라 할 수 있는 작원관원(鵲院關院)이 있었다. 여기에 마을이 형성되어 원리(院里)라고 하였다. 원리에 거주가 시작된 것은 삼한시대로 추정된다. 삼한시대부터 황산강(지금의 낙동...
-
옛날 용당리에는 논농사를 할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마을사람들의 삶이 대단히 곤궁했었다.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을 먹지 못한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데서 나온 것이었다. 예전 이곳 용당리에는 논농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곳이 홍수로 물난리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어서 예전부터 논농사를 피하고 다른 농작물을 심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용당리는...
-
박윤웅을 시조로 하고 박유경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흥려(興麗)는 울산의 옛 지명으로써 한자 뜻대로 고려를 일어나게 한 곳이라는 뜻이다. 흥려박씨 현재 명칭은 울산박씨(蔚山朴氏)이다. 시조 박윤웅(朴允雄)은 신라 경명왕의 막내아들인 국상공(國相公) 박교순(朴交舜)의 7세손이다. 울산박씨는 시조인 장무공(莊武公) 박윤웅에서 시작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