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마을
-
지산리를 찾아가는 길은 경부고속도로 통도사 나들목(IC)에서 시작한다. 통도환타지아를 지나 홀로 오롯이 자리한 외길을 따라 들어오면 지산마을은 통도사의 후문과 연결되어 있고, 평산마을은 통도사와 철조망을 경계로 위치한다. 아래 위 만복재가 동네를 둘러싸고 있으며 이곳에서 바라다 보이는 마을 뒤쪽의 영취산에 흐드러지게 핀 붉은 단풍은 가히 장관이다. 단풍이 흐드러지게 피는...
-
지산리는 영축산 아래 첫 동네이다. 등산로의 들머리이기도 하다. 하루에 15차례 정도 이곳에서 신평을 오가는 마을버스에서 내리면 먼저 파란 바탕에 흰색 글씨의 ‘지산 만남의 광장’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 아래에 ‘마을구판장’이라는 글씨도 눈에 띈다. ‘수퍼’ 또는 ‘수퍼마켓’이 흔한 요즈음 ‘구판장’이 왠지 정겹게 느껴진다. 구판장 앞에는 지친 나그네들이 쉬어갈...
-
토요일과 일요일, 공휴일 등 등산객이 있는 날에는 만남의 광장 한쪽에는 푸성귀를 가지고 나와서 팔고 있는 할머니들을 볼 수 있다. 토요일인데도 할머니는 단 두 사람밖에 보이질 않는다. 알고 보니 다들 들꽃 축제가 열리는 서운암으로 가고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만 만남의 광장에 남았다. 강복숙(76) 할머니도 가지 못했다. 그는 6·25 참전 용사인 김명관 할아버지와 부부지간이다. 혹여...
-
왼쪽으로 자리를 옮긴다. 강복숙 할머니는 등산객에게 여전히 “머구 하나 사 가소. 간장 부어가 조래기 해 놓으면 맛있심더. 돌냉이는 갈아서 요구르트에 넣어 먹으면 참 맛있다. 요거 이천 원. 산나물은 데쳐가지고 버물려 먹으면 맛있심더.”라며 나물 선전에 한창이다. 그러면서 “이 할매가 통도사 신도다. 절에 많이 다닌다.”며 심상희(80) 할머니를 소개한다.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다...
-
지산에 가면 조용하고 살기 좋은 마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소문이 도시사람들에까지 흘러들어 갔는지 지산리는 외지인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전원주택들이 적지 않게 들어서 있다. 서리 쪽의 윗마을에는 거의 부산 등지에서 온 외부사람들의 주택들이다. 지산마을도 독지골 쪽으로 대여섯 채의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다. 덕분에 땅값도 올라 지산의 경우 평당 70~80만원씩 하고, 서리...
-
지산리는 도시와 가까운 지역이지만 도시의 번잡한 모습을 찾아보기는 힘든 곳이다. 부산에서 30분 정도를 교외로 달리다 보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가 나오고, 그 주변으로 평화로운 분위기의 마을이 있다. 영축산 산자락에 위치한 지산마을은 대부분 등산객이나, 통도사를 찾아오는 관광객을 상대로 장사를 주로 한다. 주민들 대부분이 나이가 많은 할머...
-
사기장 고 신정희의 큰 아들인 신한균 사기장은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받아 현재 지산마을에서 도자기를 굽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를 찾은 봄날의 어느 저녁에 신한균 사기장은 우리나라 도자기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가운데 양산과 관련된 것이 있어서 더욱 귀를 기울이게 했다. 신한균의 말을 인용해 본다. “일본에는 다도문화가 발달해 있어서 차사발이 많아요. 그 중...
-
이곳 지산마을 일대의 영축산 산자락은 야생화의 보고이다. 이곳 산자락에 있는 통도사 서운암에서 매년 들꽃 축제가 열린다. 2002년에 이어 7회째 열린 이 축제는 개막법회에 이어 여러 행사가 화려하게 이어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큰 볼거리는 아마 천지에 수놓은 들꽃일 것이다. 서운암 뒤가 바로 영축산 자락이라서 시선을 어디에 두어도 온통 들꽃으로 뒤덮여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
지산마을을 따라 신령스런 독수리의 산이라고 하는 영축산을 오르는 길에는, 지금은 애잔한 흔적만 남아 있는 단조성이 있다. 그 흔적을 찾아 단조성으로 가는 길은 먼저 통도사 입구에서 지산리(서리·평산·지산)의 지산마을회관 앞 운동장 쪽으로 등산로를 따라 가야 한다. 그 길을 따라 마을을 지나 300여m 정도 가면 조선 숙종 37년에 동우대사가 건립한 축서암이 나온다. 그...
-
지산마을과 평산마을에서는 당산제를 지낸다. 당산제는 일 년 동안 마을의 안녕을 비는 매우 중요한 마을 행사이다. 지산마을에서는 3월 3일 삼짓날 오전 11시에 당산제를 모시는데 제사를 주관하는 하는 사람을 가리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홀아비, 과부, 재혼한 사람, 젊은 여자 등등은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의 선정에 아예 제외된다. 보통은 부부가 아주...
-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사찰로 더 유명한 통도사는 우리나라에서 불법을 전하는 중심이 되어 왔다. 통도사의 의미와 규모를 굳이 정치적인 용어로 표현하자면 지역구가 아닌 전국구 사찰인 셈이다. 영축산 자락의 남쪽 기슭에는 대웅전을 비롯한 수많은 암자들이 골짜기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지산리는 영축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내린 여러 능선 중...
-
마을 할머니와 대화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신다. 이름처럼 백수까지는 끄떡없으실 것 같은 너무나 정정하신 80대의 김백수 할머니는 마을에 대해 공부하러 왔다는 말에 할머니가 알고 계신 마을에 대한 비밀이야기를 해주시려는 듯 소곤소곤 마을에 대한 말씀을 꺼내신다. “여기 마을사람들은 살다가 부자가 되믄 마을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칸다.” 할머니께서 던지신 말씀에 무...
-
‘마을’이라는 이름은 많은 사람들이 마음을 담고 살아가는 곳이다. 마음이 맞는 또는 함께 맞춰가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인 만큼 그들만의 조직도 많이 구성되어 있다. 먼저 마을을 이끌어줄 이장님과 새마을 지도자 등의 행정 조직과 함께 부녀회, 중년회, 노인회(65세 이상, 본관은 양산에 있고 마을에 있는 것은 하북지회)가 있고 따로 친목회도 구성되어 있다. 마을의 이장이라는 자리는...
-
지산마을에는 반세기 동안이나 잊혀졌던 조선사발을 다시 재현한 우리 그릇 세계의 실로 큰 그릇이 있다. 조선사발의 명맥을 잇는 집념의 장인, 신정희 선생이다. 70평생을 전통 도자기 재현에 몸 바친 선생의 열정이 뜨겁게 불타고 있다. 임진왜란 이후 명맥이 끊어졌던 조선사발을 재현한 사기장, 고(故) 신정희(申正熙)[향년 77세] 선생의 뒤를 이어 사기장의 길로 들어선 큰...
-
▶ 축서암 지산마을회관 앞 운동장에서 등산로를 따라 마을을 지나 300여m 가면 1711년(숙종 37)에 동우대사가 건립한 축서암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절(암자)들은 주로 마을로부터 떨어져 있거나 아니면 자연과 일정한 조화를 가지면서 존재하고 있는 것이 보편적이다. 축서암은 통도사에 소속된 암자이지만, 영축산 아래 지산마을 속에 있어 마을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
고요하게 이어진 길을 좇아, 초산마을 입구임을 보여주는 표지석을 따라 골짜기로 올라가면 도시형 전원주택이 들어서 있다. 10여 년 전부터 주택 개발붐이 들어 옛 마을이 없어지고 외지인들이 들어와 사는 곳이다. 능선의 좌측에 풍경의 소리를 담은 국사당이 보인다. 초산리를 뒤로 한 채 다시 지방도를 따라 오면 지산마을 입구임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있다. 입구에는 길 가던 나그네를 손짓하...
-
맑은 곳에선 맑은 술이 나는 법이다. 물과 공기가 좋은 지산마을에는 술을 빚는 곳이 몇몇 있다. 먼저, 영축산의 솔잎을 이용해서 전통약주를 빚고 있는 양조장을 찾아가 보았다. 마을에 들어서면 고소하고 코끝을 쏘는 약주 향이 공기 중에 떠돌아 마음을 설레게 하는 듯하다. 충청도의 양조장집 막내딸로 태어난 통도참송엽주를 만드는 양조장의 구 대표를 만나서, 우리는 이야기를 들...
-
지산리는 영축산 산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작은 개울물들만이 마을 가운데를 지나고 있 때문에 홍수 때 물에 잠기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2002년 강력한 태풍 루사가 왔을 때에 물난리가 난 적이 있었다. 다음은 당시 홍수 루사에 대한 주민의 기억이다. “여는 냇가가 없기 때문에 비가 올 때 물에 잠기는 일은 거의 없다. 여기가 산 바로 뒤라서 홍수가 든 적은 거의 없...
-
지금은 승려의 세계와 일반인들의 세계가 구분되어 있지만, 과거 일제강점기에는 그렇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의 이곳 지산리는 승려의 세계와 일반들의 세계 즉, 승속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았다. 승려가 절 이외에도 마을에 와서 생활하고, 마을 사람들이 절로 들어가 승려가 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의 승려는 지금의 승려와는 다른 대처승이라는 사람들이 있었다. 대처승은 결혼한 승려를 말하는데,...
-
지산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대한 애착이 굉장히 강한 것 같다. 단조성에 대한 전설만 해도 옛날이야기 책 한 권은 읽은 것만 같은데 마을에는 그 외에도 마을에 대한 전설이 더 많다고 한다. 그것은 아마 마을을 신성한 마음으로 보존하고 이어가려는 사랑의 표현이 아닌가 한다. 많고 많은 전설 중 하나가 바위들에 얽힌 전설이다. 지산마을 양장웅 이장은 어린 시절부터 들...
-
현재 지산마을에는 70가구 정도가 모여 살며, 그 중 20가구 정도는 도시에서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평산마을은 통계상으로 80여 세대이나 실제로는 40세대에 불과하다. 이는 통도사가 평산 소속으로 되어 있어서, 통도사 스님들이 개인이 하나의 세대주로 되기 때문에 세대 수가 많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마을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년층들이다. 젊은 층들은 거의 남아 있지...
-
지산리는 통도관광민박마을이다. 통도환타지아를 지나 왼쪽으로 돌아 마을길을 따라가면 갈래길이 나온다. 왼쪽으로 가면 평산마을, 오른쪽으로 가면 지산마을이다. 평산마을로 가는 길로 들어가면 길 왼쪽에 약수터가 나온다. 거기에 서서 오른쪽 영축산 쪽을 바라보면 ‘원조 손두부집’ 간판이 보인다. 그곳이 시어머니에게서 두부 만드는 법을 배워 17년째 전통방식으로 손두부...
-
지산리에는 농사 시기에 모내기, 타작을 할 때 품앗이의 목적으로 만든 계가 있다. 이 계가 만들어진 계기는 해방이 되고 이승만 정권, 그리고 여러 역사의 흐름 속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하던 1970년 초반 만든 것이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새마을운동으로 근대화의 힘찬 민족운동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을 무렵, 지산리 마을에서도 마을의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어 농촌을 살...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지산골 또는 지산이라 하였는 데, 진시황 때 서불(徐巿)이 불로초를 구하러 동방으로 왔을 때 영지(靈芝)를 구한 지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입향조는 현재 평산마을에 정착한 김해김씨였다고 한다. 지산당 앞에 있는 묘의 입석에 ‘장사랑김해김씨함풍십년(將仕郞金海金氏咸豊十年)’이라 쓰여 있어 정착 시기는 대략 1800년경으로...
-
현재의 지산리는 지산, 평산, 서리로 나누어져 있다. 지산리의 내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통도사를 빠트리고는 이야기를 할 수 없다. 먼저 통도사와 관련하여 남아 있는 지명을 살펴보자. 옛날 평산의 옛 이름은 부도골(혹은 부뒤골)이었는데, 이것은 부도(스님들의 사리를 모시고 있는 탑)가 있는 뒷마을이라는 뜻에서 그렇게 부른 것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국사당을 중심으로 본 서리마을을 본앞...
-
마을 뒤로 든든하게 산이 자리한 지산리가 위치한 곳은 영취산의 끝자락이다. 우리나라의 풍수지리학에 의하면 기가 많이 모이는 곳에 평범한 사람이 자리 잡으면 기에 눌리기 때문에, 이런 곳에는 절이 위치하여 기를 눌러주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큰 절이 앉아 있는 곳은 무척이나 많은 기(氣)가 모이는 곳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마을의 입지를 풍수지리학으로 설명하자면 영축산에서 이어지...
-
지산마을의 광장 입구에 취서사(鷲棲祠)가 있다. 가락국의 왕자 신라 각간 김무력(金武力)과 신라 삽량주 도독 김서현(金舒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이다. 이 두 분은 그 유명한 김유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이다. 취서사는 김해김씨 종친회에서 재실건립을 결의한 후에 1986년 10월 12일 착공하여 그해 12월 20일에 재실(취산재)만 완공하여 준공하였다가 1...
-
서리마을 뒷산 정상에 국사당(局司堂)이 있다. 주소는 지산리 134-1이다. 본래 국사당의 자리는 통도사 사문암 쪽에 평평한 절터가 남아 있는 곳에 있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현재의 위치는 마을의 뒷산 정상에 있다는 상징성을 지니고 있으며 불교와는 관련이 없는 토속 신앙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향토사학자들은 보고 있다. 사당의 규모는 크지 않지만 콘크리트와 목조가 결합하여...
-
지산마을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렇게 크지 않은 비석을 발견하게 된다. 비석이 있을 만한 자리가 아닌데도 비석이 있어서 상당히 생소하고 엉뚱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석의 명문은 ‘팔도승지금지석(八道僧之禁地石)’이다. 비석에 대한 관리도 잘 되어 있지 않고 비석 앞에 세워져 있는 조그만 푯말에 통도사 소유라고만 되어 있다. 비문의 글귀만 해석해 보면 팔도의 승려가 들...
-
지산마을 언덕을 넘어가면 장밭들이라고 불리는 넓은 들판이 나온다. 이곳은 통도사 소유의 땅이다. 본래 통도사는 신라시대 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된 이래 고려시대를 지나오면서 많은 토지를 소유하게 되었다. 통도사의 소유토지를 알려주는 국장생석표 등이 멀리 밀양에 있는 것을 볼 때 이러한 정황을 알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억불정책을 시행하였으나 통도사의 소유토지에까지는...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양산의 읍치로부터 최북단에 있는 고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665년(문무왕 5)에 신라가 상주와 하주를 개편해 양주(良州)를 신설하여 이에 속했다. 757년(경덕왕 16)에 고을 명을 양주(良州)로 개칭하고 헌양현(巘陽縣)[지금의 언양]을 영현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에 양주(良州)는 양주(梁州)로 개칭되었...
-
지산마을에 사는 최원봉(95) 옹(2008년 작고)은 1973년 부친이 세상을 떠난 뒤 34년 동안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부모님의 산소를 찾아 길을 나섰다. 통도사 산문을 비껴난 길을 따라 30분 가량 걸어 도착한 야산이 최옹의 부모와 아내가 묻혀 있는 곳이다. 최옹은 "가고 오지 않는 게 세월이고, 다시 볼 수 없는 게 부모"라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묘소의 잡초를 뽑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