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산군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소재 가야진사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가야진사는 토속 종교의 대상인 용신을 모신 사당으로, 지금도 매년 음력 3월에 시제와 기우제를 같이 지내고 있다. 1983년 양산군에서 발간한 『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 낙동강 나루에 자리 잡은...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혼인이나 혈연 또는 입양의 유대로 맺어진 집단. 가족은 단일 가구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남편과 아내, 어머니와 아버지, 아들과 딸, 형제와 자매라는 각각의 역할 수행을 통해 상호 작용하면서 공통의 문화를 만들고 유지해 나가는 집단으로 간단하게 정의하면 부부를 기초로 하여 만들어진 집단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2006...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양산천 변의 아파트 마을이라는 뜻에서 ‘강변마을’이라고 칭하였다. 강변마을은 1991년 9월 20일 협성강변타운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면서 형성되었다. 1992년 1월 1일 자치 관리 운영위원회를 구성하였으며, 1994년 7월 1일자로 강변마을이 회현마을에서 분동되었다.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양산시로...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유산동·어곡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양산시청을 중심으로 양산천 서쪽에 위치한 동이라는 의미에서 유래되었다. 1807년부터 1936년 이전까지는 양산군 상서면에 속하였으며, 1936년부터 1979년까지는 상서면이 개칭된 물금면에 속하였고, 법정리로는 교리·유산리·어곡리로 분류되었다. 그 뒤 1983년 교동리·유산리·어곡리가 물금면에서 양산읍으...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강서동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상북면·원동면·하북면), 7개 동(삼성동·중앙동·강서동·소주동·평산동·서창동·덕계동) 중 강서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강서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곡리는 천성산의 맥을 이은 큰골과 맞밭골의 두 개의 곡(谷)이 뻗어 합쳐진 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는데, 두 개의 계곡이 합쳐 벌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개곡리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출토되는 유물, 유적으로 보아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골에는 신라 말기나 고려 초기에 절이 있었을...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두 개의 계곡이 합쳐 벌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개곡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개곡마을의 형성 시기는 출토되는 유적·유물들을 보아 신라 말기나 고려 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골에는 신라 말이나 고려 전기에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古)기왓장·주춧돌·구들장 등이 출토되었을 뿐 아니라, 대밭골에는...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있는 개화바위와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3년 양산군에서 발간한『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원동면 신주마을에 사는 노인 내외가 자식이 없었다. 하루는 할머니의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집 뒤의 큰 암석에 아이가 있음을 알려주고, 그 아이가 15세가 되는 해의 5월 5일에는 밖에 내보내지 말라고 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건립된 금성나씨 재실. 경북재는 1941년 금성나씨 양산 입향조인 북간처사 북헌(北軒) 나이인(羅以仁)과 그 후손들을 모시기 위해 건립되었다. 후손 나진규와 나기흥이 중심이 되어 나이인을 비롯한 금성나씨 143위를 모시는 재실을 북정과 분암 사이에 세웠다. 금성나씨의 시조는 나총례(羅聰禮)로 고려 혜종과 정종 때 공을...
-
1874년 양산군민이 동래부로 넘어간 구포의 관할권을 양산군에 돌려달라고 의정부에 올린 진정서. 1873년 양산군이 담당했던 구포 관할권이 동래부로 넘어가자 1874년 양산 군민은 진정서를 작성하고 41명이 연서하여 의정부에 진정서를 올렸다. 의정부는 내용을 심리하고 결정 내용을 기록하여 양산 군민에게 돌려주었다. 1장이며 양산 군민이 집단으로 진정서를 작성하고 41명이 연서한 ‘...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 옛 양산군 관아 터에 있던 조선시대 폐문루 터. 경성루는 조선시대 양산군 관아에 있던 폐문루(閉門樓)로서 새벽과 밤에 취타(吹打)하여 관문을 열고 닫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경성루가 건립되고 없어진 연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0년(철종 11) 가을 양산군수 이휘정(李彙廷)이 부임하여 폐문루가 유지하기 어려울 정도로 훼손된 상황을 보고...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역사. 양산의 고려시대 지명은 양주인데, 김인훈 등의 호족 세력이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적극 동조한 이후 지역 행정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아울러 양주에는 울주와 함께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는데, 이는 양주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 지역임을 말해준다. 일시적으로 동래현과 기장현을 속현으로 관할하기도 하고,...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국가의 감독 아래 공공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은 기관이나 단체 중 공공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자 사행정, 사조직, 시민 사회 단체, 민간 단체, 기타 사설 기관 등과 구분되는 공조직으로 공공 서비스와 공공 재화를 생산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은 관공서로 통칭하는 국가 행정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법인으로 분류되는 정부 투자 기관이...
-
양산의 지도는 향토의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볼 수 있는 도구이다. 이는 지도가 종합과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이 양산의 모든 것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그려진 양산의 고지도는 제작 당시의 위치 정보를 이미지로 전달하기 때문에 텍스트로 쓰인 지리서보다 위치 파악에 효율적이다. 따라서 양산의 고지도는 양산 지역의 향토 문화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교동(校洞)이라는 마을 이름은 1397년(태조 6)에 향교가 양산에 건립된 후 여러 차례 옮겨져 오다 1828년(순조 28)에 현 위치에 건립되면서 향교가 위치한 마을이라는 뜻에서 유래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1807년(순조 7)까지는 양산군 서면(西面)에 속하였고 곡포리(曲浦里)로 불렸다. 1807년부터 1936년까지는 양산군...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향교가 있는 마을이라 해서 ‘교동마을’이라고 칭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1807년(순조 7)까지는 양산군 서면에 속하여 곡포리(曲浦里)·별양곡리(別良谷里)·유산리(由山里)·어곡리(魚谷里)로 형성되었다. 1807~1936년까지는 양산군 상서면에 속하여 곡포리가 교동리와 회현리(會賢里)로, 별양곡리는 양동리로 개칭되었다. 1914년...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내원사 입구에 있는 세 비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1983년 양산군에서 발간한『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1869년(고종 6)에 당시 양산군 소속이던 구포면이 동래군에 탈속되게 되었다. 양산군민들이 양산군으로 환속해줄 것을 청하였으나 아무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에 사림 우석규·서상로·이기수 세 사람이 직접 한양에 가서 임금...
-
조선 전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 대저도에 설치한 둔전(屯田). 둔전은 변경이나 군사 요지에 설치해 군량에 충당한 토지이다. 고려 시대에 처음으로 설치했는데, 농사도 짓고 전쟁도 수행한다는 취지 아래 부근의 한광지(閑曠地)를 개간·경작하여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하였다. 이로써 군량 운반의 수고를 덜고 국방을 충실히 수행할 수 있었다. 조선 초기에 국방 문제가 제기되고 그에 따른 군자(軍...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금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금산의 옛 이름은 금산리(琴山里)·금진(琴津)·금호(琴湖) 등이었다. 1914년 이전까지만 해도 금산리(琴山里)·금산동(琴山洞)으로 기록되어 있다. 거문고 ‘금(琴)’자가 붙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금정산 장군봉에서 뻗어 내린 산맥을 좌우로 금산리가 형성되어 있는데, 좌우에 냉정천과 고천천의 두...
-
경상남도 양산시 다방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금촌(金村)’이란 마을 이름은 이 마을 앞산에서 쇠가 났다고 하여 쇠 ‘금[金]’자를 따서 ‘금촌(金村)’이라 하였다. 금촌마을은 양산읍 다방동(多芳洞)에 속해 있다가 1946년 다방동의 행정리인 다방마을에서 분동되었다. 외다방·바깥다방·쇠마을·새마을이라고도 한다.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되어...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에서 화적에 맞서 가족을 지킨 여인. 1832년의 읍지에 실려 있지 않은 사실이 1878년 간행된 『양산읍지(梁山邑誌)』에 실린 것으로 보아 1832년부터 1878년 사이의 일로 보인다. 나수원의 누이 나씨는 신유년 여름 양산군에 화적이 침입했을 때, 처녀의 몸으로 자신의 목숨을 돌보지 않고 오라버니와 조카의 목숨을 살렸다고 한다. 모든 군민들이 그...
-
경상남도 양산시 주남동에 있는 이겸수를 제향하던 서원 터. 학성이씨(鶴城李氏) 서면파 이겸수(李謙受)의 자는 자우(子虞), 호는 잠와(潛窩)이며, 수사(水使) 이종실(李宗實)의 5세손이요, 이종실의 여섯째 아들인 서면파 파조(派祖) 이직강(李直剛)의 후손이다. 1594년(선조 27) 왜장(倭將)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울산의 서생포(西生浦)에 진을 치고 화친을...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의 끝 지역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 남동쪽으로 떨어졌다는 뜻에서, ‘남락(南洛)’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남락마을에서 출토된 도편(陶片) 및 와편(瓦片), 성 터 군락지 등으로 보아 삼한시대 이전에 생긴 것으로 보인다. 특히 양산시 동면 여락리의 석곽묘와 환호 군락지의 형태로 보아 삼한시대부터...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양산군 읍내면 시가지에 위치하여 일동마을 다음이라고 하여 이동마을로 칭하였는 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읍내의 남쪽에 해당된다고 하여 남부동으로 칭하게 되었다. 본래 읍내면에 속해 이동리(二洞里)라 불렸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동으로 승격되어 남부동이라 불려졌다. 1918년 읍내면이 개칭된 양산면에 속하게 되었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돌내[일명 군산천] 안쪽이 되므로 내석 또는 내리라 하였다. 임진왜란 당시 밀성박씨 한 사람이 조카를 데리고 울주군 언양면 지내마을로부터 이주하여 살았다고 한다. 당시 그 밀성박씨의 별명이 내석이었다고 하는 데, 그의 호(號)에서 유래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강릉유씨 유지(劉址)라는 사람이 피난 와 정착...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송리는 옛날 마을 주변 곳곳에 울창한 송림으로 놀기 좋은 정자가 군데군데 있어 송정골이라고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송정골 안에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내송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1500년대로 알려져 있다. 450년 전 평해황씨와 안동장씨가 정착하여 마을을 형성하였고, 그 후 경주이씨·김해김...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양산군 읍내면 지역으로 뒷산에 차가 많이 있다 하여 다방(茶房)이라 이름하여 내려오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다방(多芳)으로 개칭되었다. 다방으로 개칭된 이유는 문헌상 기록은 없으나, 많을 다(多), 꽃방울 방(芳)으로서 다방(茶房)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면서 좀더 뜻이 깊고 격상시킨다는 의미가 담겼다는 구전이 있다. 본래 읍...
-
경상남도 양산시 용당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지금의 우불산(于佛山)이 ‘당(堂)갓’으로 불렸을 때 당갓 아래 마을이 형성됨에 따라 마을 이름을 ‘당촌’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786년(정조 10)부터 당촌마을이 속한 용당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786년 웅상읍이 웅촌면으로 개칭되고, 1896년(고종 33) 8월에 전국 8도(道)를 13도로 분할하면서 용...
-
경상남도 양산시 어곡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대리’와 ‘동리’의 첫 글자를 따서 ‘대동’이라 부르게 되었다. 대동마을은 자연 마을인 대리와 새목마을을 합하여 이루어졌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합쳐져 어곡동이 되었다. 당시 어곡동의 행정리로는 상화룡마을[용선마을]·하화룡마을[화룡마을]·대리마을·동리마을·조항마을이 있었다. 대리마을은 어곡동의...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큰 돌이 있으므로 대석(大石)이라 하여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나주정씨(羅州丁氏)인 정득(丁得)이 모친을 등에 업고 김해에서 낙동강을 건너 피난을 와서 홍룡폭포 갯들 밑에서 생활하다가 현재 지역으로 내려와 정착하였는 데, 당시 마을에 돌이 많아 마을 이름을 돌실이라고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양산군이 하북방(下北...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대한노인회 중앙회 산하 양산 지역 지회. 대한노인회 양산시지회는 노인의 권익 보호와 복지 증진에 기여하고 봉사 활동을 통하여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며 회원 상호간의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1953년 2월 10일 경상남도 지역에 노인 복지 시설의 시초라 할 수 있는 경로당이 건립되었다. 1975년 8월 25일 보건복지부장관...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 속하는 덕계1마을은 덕계마을 아래쪽에 있다. 덕계1마을과 관계된 지명으로는 조평(鳥坪)·배나무골·범살미·몰강소·소심산·점비알·옹기점 등이 있다. 덕계마을은 『울산지명사』에 따르면 산 아래에 배나무가 만발하다 하여 이천(梨川)으로 불려오다가, 조선 말기에 이르러 덕계로 칭했을 것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경상남도 양산시 동쪽 끝단에 위치하며, 신흥 주거 단지 및 공업 도시로서 발달하고 있는 지역이다. 산업 유통 및 교통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행정리인 덕계리의 이름을 따서 덕계동이라 하였다. 덕계마을은 두 갈래로 흐르는 강줄기 사이에 자리 잡은 ‘큰 시내 사이에 만들어진 마을’로서 큰 ‘덕(德)’ 자와 시내...
-
조선 후기 경상도 관찰사가 작성한 향교 교육 운영 지침을 경상남도 양산군에서 옮겨 적은 고문서. 조선 후기에 경상도 감영에서 도내 71개 군현에 공문서를 발급하였고, 이를 수급한 양산군은 공무에 참고하기 위하여 해당 공문서를 옮겨 적었다. 발급 및 수급 연월일은 미상이다. 감영에서 보낸 관문이라는 공문서의 필사본이며, 이러한 고문서를 등서라고 한다. 전체 고문서가 온전한 형태로 보...
-
‘천석꾼은 천 가지 걱정을 하고 만석꾼은 만 가지 걱정을 한다.’는 속담이 있다. 부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와 비례하여 걱정거리도 많아진다는 말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들어오면서 돈은 우리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 버렸다. 물질만능주의가 되어버렸다는 비판도 적지 않지만 돈이라는 것이 꼭 나쁘게 이용되는 것만은 아니다. 돈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돈, 그 이하의 가치도 혹은 그...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동면은 양산시와 역사를 같이 한 곳으로 양산시를 중심으로 할 때 동쪽에 있기 때문에 동면이라고 하였다. 동면은 삼한시대 변한의 12국 중 거칠산국과 정치적 관계를 맺었다가 신라의 탈해왕 때 정복되고, 후에 삽량주로 편제되었다. 신라 경덕왕 때 양주에 편입되었다. 임진왜란 때 금정산성 축성 후 동래현에 병합되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내송리에 있는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상북면·원동면·하북면), 7개 동(삼성동·중앙동·강서동·소주동·평산동·서창동·덕계동 중 동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19...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일마을은 동일스위트 2차 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파트 건설업체의 상호에서 명칭을 가져와 동일마을이라 칭하였다. 양산시 덕계동 지역은 인근 양산 삼호리 고분군과 명곡리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덕계동 지역에 정착민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931년(태조 1...
-
강원도를 출발하여 경상도를 가로질러 흐르고, 경상도의 젖줄이라고 불리는 낙동강, 낙동강의 기나긴 여행을 시작해보자. 오늘날의 낙동강은 예전에는 다른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렇다면 낙동강의 이름은 어디서 유래되었으며, 어디로 흘러가는가. 낙동강의 이름을 찾아보기 위해서 다 같이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자.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현재의 우리가 알고 있는 낙동강은 무...
-
우리나라의 특징은 각기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방언, 즉 사투리이다. 지역마다 문화적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지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사람의 이동이나, 물자,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명동마을도 지형적 이유와 역사적 이유로 독특한 문화를 가지...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매실’, ‘매일’로 불리다가 매곡이라고 하였다. 내산(內山)으로도 불렀다. 1896년에 울산군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할 때 양산군 웅상면에 편입되었고, 1917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매곡리라고 하였다. 1998년에 덕계리가 웅상읍에서 분리되면서 함께 분리되어 매곡동이라 하였다. 대운산 자락에 위치하여 매곡동 전체...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매실, 매일이라고도 했는데 매실나무가 있는 곳이어서 매곡이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울산군 서면을 웅촌면으로 명명했다가 1896년에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할 때 매곡이라 하였다. 1906년에 양산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매곡리라 하였다. 매곡마을 남서쪽에는 용천산이, 남동쪽에는 널발재...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동은 가매소 북쪽에 있는 들을 칭하는데, 명곡마을이 처음 생긴 곳이다. 명곡마을에서 분리되면서 이름이 바뀌어 명동이 되었다. 삼한시대에 명동 지역은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蔚山郡)으로 개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西面)으로 명명...
-
1903년(고종 40) 명례궁에서 작성하여 경상남도 양산군청에 발급한 완문(完文). 완문은 주로 관청에서 향교·서원·단체 또는 개인에게 발급한 것이다. 완문의 기능은 어떠한 사실을 확인해 주거나, 권리와 특권을 인정해 주는 것으로 일종의 인준(認准) 문서이다. 이 「명례궁완문」은 1903년에 명례궁에서 작성한 완문으로 현재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조선 말기 경상남도 김...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모심기 중에 흥겹게 부르는 노동요.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모심는 소리는 경상도 교창식 모심기 노래와 잦은 모심기 노래로 나눌 수 있다. 경상도 교창식 모심기 노래는 긴 소리이며, 잦은 모심기 노래는 긴 모심기 소리에 이어 부르거나 쉴 참에 부르는 짧은 소리이다. 잦은 모심기 소리에는 잦은 모노래, 설설이, 왕거무(거무노래), 이리흔들 등이...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물금읍 지역은 옛날 신라와 가락국이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국경을 접할 때 두 나라의 관리들이 상주하면서 이 곳에 왕래하던 사람들과 물품을 조사·검문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관리들의 검색이 심하여 강을 건너는 두 나라 사람들이 매우 불편해했다. 그래서 양국 대표가 모여서 의논하기를 이 지역만은 서로 ‘금하지 말자’는 합의를 하...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에 있는 물금읍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상북면·원동면·하북면), 7개 동(삼성동·중앙동·강서동·소주동·평산동·서창동·덕계동) 중 물금읍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
-
경상남도 양산시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여 전해오는 민중의 노래. 민요의 분류에서는 하나의 기준만 있을 수 없으며, 일정한 기능을 가진 기능요와 그 기능이 일정치 않은 비기능요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양산 민요를 기능의 성격에 따라 분류하면 노동요·의식요·유희요로 나눌 수 있다. 노동요는 노동을 하면서 노동의 박자와 맞게 부르는 노래이다. 노동의 종류에...
-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에 있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양산 지역 협의회.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양산시협의회는 조국의 민주적 평화 통일에 관한 국민적 합의를 확인하고, 범민족적 의지와 역량을 집결하여 민주적 평화 통일을 달성하는 데 필요한 제반 정책의 수립 및 추진에 관하여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그 자문에 응하기 위해 창립되었다. 1980년 10월 27일 ‘헌법’ 제...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서룡리에서 박초라는 인물에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평범한 인물이 영웅적인 기지를 발휘하여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위기에서 구하는 이야기이다. 1983년 양산군에서 발간한『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옛날 범서마을에 박초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힘이 세고 용감하며 의리가 있었다. 하루는 사냥을 나갔다가 해가 저물어 객주를 찾아 여장을 풀었...
-
경상남도 양산시 화룡리 어곡동에 있는 조선시대 대(臺). 영일인(迎日人) 처사(處士) 정상순(鄭相淳)이 축조하였다. 할석을 쌓아 반구형으로 담장을 둘러놓았으며, 바닥에는 평평한 자연석을 깔아놓았다. 그 위에는 장기·바둑·고누판이 새겨져 있다. 건너편 바위에는 휴룡연(休龍蓮)이라는 각서가 있다. 수석(水石)의 기절(奇絶)이 많아 읍재(邑宰)와 문인(文人)들의 제영(題詠)이...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서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화제리로부터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라 하여 범서라 칭하였다고 전한다. 서룡리 범서마을이 속한 원동면은 1783년에는 양산군 서면(西面)으로, 1795년경에는 양산군 하서면(下西面)으로 불렸다. 1831년 당시 하서면에 속한 자연 마을로는 내화리(內花里), 외화리(外花里), 범서리(凡西里), 신...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북부마을에서 분동되었기 때문에 북부1마을이라고 한다. 북부1마을이 위치한 옛 웅상읍(熊上邑) 지역은 인근 삼호리(三湖里)와 명곡리(椧谷里)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곳에 정착민의 취락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31년(태조 13) 2월에 후백제 격퇴에 공을 세운 고을 사람 박윤웅(朴允雄)...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북부마을에서 분동되었기 때문에 북부2마을이라고 한다. 북부2마을이 위치한 옛 웅상읍(熊上邑) 지역은 인근 삼호리(三湖里)와 명곡리(椧谷里)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곳에 정착민의 취락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31년(태조 13) 2월에 후백제 격퇴에 공을 세운 고을 사람 박윤...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양산군 읍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 서부동, 북안동의 일부를 병합하면서 북안과 서부의 이름을 따서 북부동이라 칭하게 되었다. 시가지가 확장·팽창됨에 따라 1982년 9월 1일 북쪽의 희망마을과 서쪽 구획 정리 지구의 신북안마을이 분동되었고 또 신북안마을이 확장·발전함에 따라 1986년 7월 1일 중북안...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는 양산 읍내면 지역으로서 마을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 북정원이 있었다고 하여 북정리로 하였다는 전설과 마을이 형성되었을 때 읍내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北)’자를 따고 마을에 밤나무, 잣나무, 소나무 등 정자 나무가 많다 하여 ‘정(亭)’자를 따서 북정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 아래쪽을 하북정, 마을 중심부를...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이루어지는 법에 의한 민사 및 형사 사건의 재판과 그에 관련된 국가 작용. 일반적으로 사법은 입법, 행정과 함께 국가 통치 작용의 하나이다. 개인 상호 간 또는 국가와 개인 간의 법률 관계에 관한 쟁의로 소송이 제기될 경우 무엇이 적법인가를 선언하는 행위로서 그 범위는 국가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사법 제도는 좁은 의미로 재판 제도를 의미하나, 넓은...
-
조선시대에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곡물 대여 기관. 고구려의 진대법(賑貸法), 고려시대의 의창 제도·상평창 제도를 이어받아 조선시대에 발전시킨 것이 사창제도이다. 사창이 처음 실시된 때는 1451년(문종 1)이었다. 이때 경상도 각 고을의 사창 설치 규정이 마련됨에 따라 결실을 보게 되었으며, 1461년(세조 7)에 드디어 사창제가 전국적으로 실시될 수 있었다. 그...
-
경상남도 양산 시민들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적 단위. 사회는 일정하게 설정된 영역 내에서 종교·가치관·규범·언어·문화 등을 상호 공유함과 동시에 특정한 제도와 조직의 형성을 통하여 질서를 유지하면서 존속하는 인간 집단을 의미한다. 즉 사회는 문화와 제도 면에서 독창성을 지닌 공통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의 집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는 주로 민족, 국가, 문화,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양산읍 내면 지역으로서 마을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세가지 설이 있다. 첫째, 산골에 막을 치고 살았으므로 산막이라 하였다는 설, 둘째,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원효산에 올라가 막을 치고 하룻밤 쉬어간 곳이라 하여 산막이라 불렀다는 설, 셋째, 천성산 기슭에 있는 반고굴에서 수도하는 원효대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요석공주가 산에 막을...
-
경상남도 양산시 산막동에 전해 내려오는 원효대사 관련 이야기. 고승 원효와 관련된 설화로, 원효가 수도한 자재암 가까이에서 요석공주와 설총 모자가 머물렀다는 이야기이다. 서울의 소요산에도 유사한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1983년 양산군에서 발간된 『내 고장 전설』에 수록되어 있다. 산막마을은 천성산 기슭의 산골마을로, 이 마을 남쪽 산등성이를 넘으면 원효대사...
-
경상남도 양산시 산막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이름의 유래와 관련하여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산골에 막을 치고 살았으므로 산막이라 하였다. 둘째,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원효산에 올라가 막을 치고 하룻밤 쉬어간 곳이라 하여 산막이라고 한다. 셋째, 천성산 기슭에 있는 반고굴(磻高窟)에서 수도하던 원효대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온 요석공주(遙石公主)가 산에 막을 치고 있...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삼감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삼감이란 마을 이름의 유래는 감수(甘水)가 솟아나는 세 곳의 샘이 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지금도 물통골샘, 복판샘, 아래샘 등 세 개의 샘이 있다. 삼감마을이 속한 하북면은 685년(신문왕 5)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였을 때 삽량주의 일부였다. 757년(경덕왕 16)에는 삽량...
-
조선 전기에 경상남도 양산에서 간행된 『삼강행실도』의 복간본. 『삼강행실도』는 우리나라와 중국의 서적에서 군신, 부자, 부부의 삼강에 모범이 될 만한 충신, 효자, 열녀의 행적을 모은 도덕서이다. 초간본은 1434년에 간행되었으며 그 후 관련 사실이 추가되면서 여러 차례 재간행되었다. 1428년 진주에 사는 김화라는 여인이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하자, 세종이 엄벌에...
-
경상남도 양산시의 신기동·북정동·산막동·호계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삼성동은 신기동·북정동·산막동·호계동 등 네 개의 법정동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산막동·북정동·호계동 등 세 개 동이 같이 이뤄졌다 하여 삼성(三成)이라 일컬어 왔다. 이후 이 세 개 동의 ‘삼(三)’자를 따고, 신기동의 뒷산에 있는 신기산성에서의 ‘성(城)’자를 따서 네 개 동이 다 포함된다...
-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 있는 삼성동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상북면·원동면·하북면), 7개 동(삼성동·중앙동·강서동·소주동·평산동·서창동·덕계동) 중 삼성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삼성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1914년에 삼려·연호·용암의 일부를 병합하여 만든 마을로서 삼려의 ‘삼(三)’ 자와 연호의 ‘호(湖)’ 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896년 웅촌면을 웅...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 구역. 정확한 명칭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양산시의 최북단에 위치한 면이 두 개로 나뉘면서 상북면으로 이름을 짓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시대인 685년(신문왕 5) 전국의 행정구역을 9주 5소경으로 개편하였을 때 상북면은 삽량주의 일부였다. 757년(경덕왕 16)에는 삽량주가 양주로 개칭되었다. 고려 태조 때 양주(良州)가 양주(梁州)로...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상북면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상북면·원동면·하북면), 7개 동(삼성동·중앙동·강서동·소주동·평산동·서창동·덕계동) 중 상북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리의 위쪽에 위치하고 있어 상삼리라 하였다. 마을에 삼림이 매우 울창하였으므로 ‘삼(森)’ 자를 붙여 지명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조선시대 양산군이 하북방(下北坊)과 상북방(上北坊)으로 분리될 때 상삼리는 하북방에 속하였다. 1897년 행정구역 개편 때 중북면(中北面)에 속하였다. 당시 중북면의 면치는 상삼리 일부인...
-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건설회사의 이름 및 아파트 상호를 따서 새롬마을이라 칭한다고 한다. 새롬마을이 속한 북정동은 본래 양산군 읍내면 지역으로서 마을 이름은 조선시대에 북정원(北亭院)이 있었다고 하여 북정리(北亭里)로 하였다는 설과 마을이 형성되었을 때 읍내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북(北)자를 따고 마을에 밤나무·잣나무·소나무 등 정자나무가...
-
경상남도 양산시의 용당동·삼호동·명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에 공물을 관리하는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서창(西倉)이라 한데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896년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소석마을 일부와 삼계마을을 병합한 뒤 소석마을에서의 ‘석(石)’ 자와 삼계마을에서의 ‘계(溪)’ 자를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조선시대 양산군이 하북방(下北坊)과 상북방(上北坊)으로 나뉠 때 남양리·구창리는 상북방에, 상삼리는 하북방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반희동·소석동의 일부, 중북면의 삼계동...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선거권을 가진 지역 주민이 공직에 임용될 사람을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하는 행위. 선거는 ‘일정한 조직이나 집단에 있어서 특정 지위에 취임할 사람을 그 조직이나 집단 구성원들이 집합적인 의사 표시를 통하여 선정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즉 다수인이 일정한 직에 취임할 사람을 선출하는 행위인 것이다. 따라서 선거는 반드시 국가 기관의 선임에만 한정된...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옛날부터 구비전승되어 오는 이야기. 설화는 보통 신화·전설·민담으로 구분되는데, 지역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은 전설이다. 전설은 화자나 청자가 이야기의 진실성을 믿고 있고, 이야기를 뒷받침하는 기념물이나 증거물이 있으며, 일정한 형식이 없다. 역사와 관련을 가지지만 신화적이고 정사(正史)에 오를 수 없는 이야기로 구전되어 왔고, 내용이 허구적이며...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동일한 인물을 시조로 하는 성들. 성(姓)은 삼국시대부터 지배층에서 사용되면서 부계혈통을 나타내어 혈연관계를 구분하고, 뒤에 이름을 붙여 개인을 다른 사회 구성원과 구별하게 하는 역할을 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부터 한 사람의 신분이나 호적에 변동이 생기더라도 부계혈통은 변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되어 왔으나, 최근에 호적법이 폐지되면서 변화가 일어나고...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이름은 처음에는 수레방(술래방)이었다. 성천 앞 도로에 큰 돌이 가로놓여 있어 인마가 이 돌을 빙 돌아가야 했으며, 이 돌에 가리워 인마가 보였다 사라졌다 하는 것이 마치 술래놀이를 하는 것 같아 그 바위를 술래바위라 하였다고 한다. 마을 이름은 이 술래바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믿기 어려운 유래도 있는데,...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이루어지는 세금을 매기고 거두어들이는 행정 사무. 조세는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사회 공공 질서의 유지나 국민 공공 복리의 증진 또는 사회·경제 등과 관련되는 제반 정책의 목적 실현을 위해 필요한 재정 수요를 국민에게 아무런 반대급부 없이 강제적으로 부과·징수하는 금전 또는 재물을 의미한다.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과징한다는 점에서 조합비, 회비...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조선시대 건립된 재실. 소경재는 죽림칠현 김칠득(金七得)과 증산(甑山) 박승장(朴承章)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재실이다. 소경재의 변천을 알 수 있는 「소경재기(紹景齋記)」와 「현효사이건기(賢孝祠移建記)」가 남아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소경재기」 “ 양산군 현효사는 김죽림(金竹林), 박증산(朴甑山)...
-
소노마을에 들어서면 두 개의 오래된 사당을 만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동래정씨 사당인 소노서원이다. 동래정씨가 이곳 소노마을에 정착하게 된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려 말 조선 초기로 보인다. 동래정씨의 가보를 보면 고려 초기에 그들의 조상이 경주에서 부산 동래로 들어왔고 이들 중 일부가 고려 말에 소노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동래정씨가 소노마...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석의 서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므로 소석리라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 양산군이 하북방(下北坊)과 상북방(上北坊)으로 나뉠 때 남양리는 상북방에 속하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양리 일부 즉, 계리와 늑동, 적임곡을 병합하여 소석리라 하여 상북면에 편입되었다. 1991년 소석리를 제리당과 늑동은 소석마을로,...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소주(召周)는 소남마을(원래 신기마을이었는데, 1959년 태풍 사라의 피해로 전체 마을이 유실되어 폐동됨으로써 1962년 마을 이름을 변경함) 서쪽에 있는 마을로서 윗소주·중소주[召中]·옻밭골로 형성되어 있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
-
경상남도 양산시 주민이 일상적으로 섭취하는 음식과 관련된 습관. 양산은 산채류·야채류·해산물·수산물·축산물 등이 논·밭·산·바다에서 다양하게 생산되는 지리학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 물금·원동 등 낙동강 주변의 내륙 평야 지역과 상북·하북 등 영남알프스 근교 지역인 산간 지역, 그리고 바다와 가까운 해안 지역이 있다. 낙동강 주변 지역은 농사를 주로 지었으므로...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수해로 마을이 유실된 후 새로 생긴 마을이어서 이름을 ‘신기(新基)’라 하였다. 신기1마을은 본래 지금의 삼성동 관할인 신기동의 본 마을이었다. 1957년 9월 2일 태풍 칼멘호로 신기동 하신기마을 앞 제방이 붕괴되면서 하천이 마을을 덮쳐 마을 전체가 침수되었다. 32명의 인명 피해는 물론, 가옥이 유실 또는 파괴되...
-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새로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에서 신기라 하였다. 본 마을은 신기동의 남쪽 아래라 하여 하신기 즉 아래새터라 이름하게 되었으며, 하신기의 중심 마을로서 1957년 9월 2일 칼멘호 태풍 때 마을 앞 제방이 붕괴되어 마을 전체가 침수 또는 파괴되자 인근 북부동 지역에 구획 정리를 하여 새로운 마을을 만들어 이주하게 되었다. 지역은...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경상남도 양산시 삼성동의 남쪽에 위치한 법정동으로서 교통의 요지이며 주거 지역으로서 발전되고 있는 지역이다. 새터 또는 신기라 하였다. 조선 숙종 때 마을 뒤에 여부사라는 사찰이 있어 그 명칭을 따서 여부라 칭한 때도 있었으나, 마을이 새롭게 확장됨에 따라 조선 후기에는 우(위)새터, 아래새터, 또는 이 둘을 합친...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들판 가운데 새로 만들어진 마을이므로 새터각단 또는 신전(新田)이라 하였다. 강기슭에 대를 모아 송죽을 심고 원효산의 높은 기상과 북천의 맑은 정기를 기리어 길손을 쉬게 하고 자손의 휴양지로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도륜대(道輪臺)로 불리다가 정착지인 용소골이 협소하여 황무지인 도륜대를 다시 개간하여 얻은 새밭이라는 뜻에서 신전이라...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1860년대 이후에 성립된 종교. 신종교는 기성 종교와 마찬가지로 일정 수준의 신도 수·교단 조직·교리 체계·제의 체계 등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성립 시기가 짧기 때문에 아직 사회적으로 완전하게 인정받지 못한 종교이다. 흔히 신종교는 교리혼합주의(敎理混合主義), 기존 질서에 대한 부정, 현실주의적 구원관, 임박한 종말론의 강조, 선민사상,...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용당리에 있는 신라시대 용신 사당. 양산의 자연 숭배는 대천 숭배와 고산 숭배가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대천 숭배는 용신 사상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용왕을 숭배하는 신앙이다. 용신, 용왕할머니, 수신이라고도 부르며, 비를 내리게 하는 민간신앙으로 자리 잡았다. 음력 6월 15일에 지내는 용신제나 용왕굿은 대표적인 민간신앙이다. 특히 강물...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신라시대 테뫼식 산성. 양산 북부동 산성의 축성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삼국사기』에는 463년(자비마립간 6)에 “왜인이 삽량성(歃良城)에 침입하였으나 이기지 못하고 돌아감에 왕이 그 연변(緣邊)에 두 성을 쌓았다”고 한 기록과 673년(문무왕 13)과 687년(신문왕 7)에 “삽량주(현 양산)에 축성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박창과 이공미의 효자비. 『신증동국여지승람』 권22, 양산군 효자조에 의하면 박창(朴暢)은 부모상을 당해 깊은 골짜기에 여막을 짓고 밤낮으로 애통해 하니 왜적도 감동하여 해치지 않아 무사히 3년상을 마쳤다. 이공미(李公美)는 어미의 무덤을 3년 동안 지켜 나라에서 정문(旌門)을 내리고 세금을 면제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지역 문화예술 진흥 기관. 양산문화원은 지역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지방문화원진흥법’에 의거한 문화 사업을 통하여 양산 지역의 향토 문화 발전에 기여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1985년 양산군수로 부임한 이두연이 문화예술 및 지방 유지들과 협의하여 문화원을 설립하고자 12명의 추진위원을 위촉함에 따라 같은 해 12월 2...
-
경상남도 남동부에 위치한 시. 양산시는 동경 128°52′18″~129°07′57″, 북위 35°16′16″~35°31′44″에 위치하며, 동쪽과 남쪽은 부산광역시, 서쪽은 밀양시와 김해시, 북쪽은 울산광역시와 접하고 있다. 1996년 3월 1일 도농 통합 형태의 시(市)로 승격되었다. 양산시는 ‘자손대대로 살고 싶은 양산’ 이라는 구호 아래 양산시의 미래상으...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양산시 체육회 산하 보디빌딩 단체. 양산시 보디빌딩협회는 보디빌딩 인구의 저변 확대를 통해 양산시민의 체력과 정신력을 증진시키고 우수 선수를 조기에 발굴, 육성하여 양산 지역 체육 발전에 기여하고자 창립되었다. 1989년 3월 발기인총회를 개최하여 양산군 보디빌딩지부를 결성하고 경상남도 보디빌딩협회에 가입 승인을 받았다. 초대 회...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산림 조합. 양산시 관할 산림 소유주와 산림 경영자로 구성된 양산시 산림조합은 구성원들의 사회·경제적 권익 보호와 지위 향상을 도모하고 산림 보호와 개발을 촉진하여 양산 지역 발전을 도모하고자 설립되었다. 1962년 ‘산림법’이 제정되어 계, 조합, 연합회 등의 조직이 강화됨에 따라 양산군에서도 같은 해 5월 3일 양산군 산림조합...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석산리에 있는 선거 관리 기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산하 단체로서 선거와 국민 투표의 공정한 관리, 정당 및 정치 자금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된 국가 기관으로 독립된 합의제 헌법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의 공정한 선거 관리 및 정당에 관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설치되었다. 1963년 2월 7일 경남 제1선거구,...
-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에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사무를 심의·의결하는 기구. 양산시 의회는 양산시민에 의해 선출된 의원을 구성원으로 하는 시민의 대표 기관으로 양산시의 의사를 결정하고 집행 기관을 감시하는 최고 의사 결정 기관이다. 1991년 3월 26일 12개 선거구에서 14명의 의원이 선출되고 같은 해 4월 15일 초대 양산군 의회가 개원하였다. 1995년 3...
-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에 있는 대한민국재향군인회의 양산 지역 지회. 양산시 재향군인회는 회원 상호간의 친목을 도모하고, 군인 정신의 앙양과 군사 능력의 증진을 통하여 조국의 독립과 자유 수호에 공헌하며, 국가 발전과 사회 공익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재향군인회는 1952년 2월 1일 비상시 병력 동원의 목적으로 정부가 창설하였고,...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양산시 체육회 산하 태권도 단체. 양산시 태권도협회는 태권도 인구의 저변 확대를 통해 양산시민의 체력과 정신력을 증진시키고 우수 선수를 조기에 발굴, 육성하여 양산 지역 체육 발전에 기여하고자 창립되었다. 1979년 5월 김정일을 중심으로 경상남도 태권도협회 양산군지회가 구성되었다. 1981년 10월 양산군 태권도협회가 결성되었고...
-
1998년 경상남도 양산시의 환경 단체들이 지역의 환경 보존을 위해 추진한 환경 선언문. 양산시는 경상남도 동부의 거점 도시로서 현대화가 빨리 찾아온 지역이며, 또한 영취산과 원효산 자락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양산천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고장이다. 그러나 물질적인 풍요와 편의만을 추구한 개발과 산업화는 자연을 훼손하여 양산의 맑은 공기, 깨끗한 물, 기름진 땅을 찾기...
-
경상남도 양산시 남부동에 있는 행정 및 민원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지방 행정 기관. 양산시를 대표하는 지방자치단체로서 양산시 의회에서 결정된 정책을 집행·관리하는 주체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지방 자치 행정의 민주성과 능률성을 도모하고 양산 지역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설치되었다. 1897년(고종 34) 전국을 13도로 하고 양산군은 양산면·동면·...
-
양산시의 도심부에 전혀 어울리지 않을 듯한 커다란 돌들이 너부러져 있다. 산에서 굴러온 돌들도 아니다. 어떤 돌들은 축대 속에 끼워져 있는가 하면, 또 어떤 곳의 돌은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다. 범상치 않은 돌들이 양산초등학교 주변에 모여 있다. 과거의 역사는 그냥 없어지지 않는다. 사료 속에만 남아 있지 않고 현재에 어떤 형태로든 흔적을 남기며 사람들과 함께 숨 쉬고 있...
-
해방 직후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결성된 좌파 계열의 주민자치단체. 양산인민위원회는 우익 인사 중심의 양산군 자치추진회에 맞서 좌익 인사들 중심으로 일제강점기의 잔재를 청산하고 노동자, 농민 중심의 인민 민주주의 정권을 수립하기 위해 설립되었다. 1945년 8월 18일 치안 유지와 지역의 정치적 방안 등을 해결하기 위해 좌우 연합적 성격의 자생적 조직인 양산건국준비위원회...
-
양산읍성은 우리의 기억 저편 속으로 사라져 버린 지 오래되었다. 하지만 양산읍성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려졌지만 우리의 역사 속에서는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다. 그중 아름다운 영남의 모습을 자라하던 8루 중의 하나인 쌍벽루가 양산읍성의 마을에 있었다. 쌍벽루(雙碧樓)는 양산읍성 내의 관청의 부속건물, 즉 객사의 서루이다. 객사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누각 아래에는...
-
조선 후기 경상남도 양산군에서 작성한 관내 1-2개 리의 전답 양안. 조선시대 각 군현은 관내의 토지를 면리 단위로 조사하여 양안이라는 토지대장을 작성하여 부세 업무와 토지소유권 확정의 기초 자료로 삼았다. 본 양안은 양산군이 관내 1-2개 리의 전답 등 토지를 조사하여 작성한 것이지만 불완전한 상태여서 어느 면의 토지인지 작성 시기가 언제인지 알 수 없다. 필사본 2책으로 구성되...
-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경상남도 양산시는 산과 들이 좋고 문화 유적이 많으며, 고대로부터 불교 포교지로서 그 명성이 높았고,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던 곳이다. 한반도의 동남부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쪽은 낙동강을 끼고 밀양시와 김해시, 동쪽과 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기장군과 금정구에 각각 접하고 있다. 경상남...
-
조선시대에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전통시대에 공공 업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전국에 역과 원이 설치되었다. 역(驛)은 정부의 명령과 공문서의 전달, 변방의 긴급한 군사 정보 및 외국 사신 왕래에 따른 영송(迎送)과 접대, 공공 물자의 운송 등을 위하여 설치되었다. 원(院)은 공무 여행자의 숙식 제공과 빈객을 접대하는 숙박 시설로 설치되었다. 우리나라 역참은 문헌...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비가올 ‘령’자와 무당 ‘자’자를 합친 ‘신령령(靈)’과 마을 앞에 내가 흐르고 있어 ‘내천(川)’을 합하여 ‘영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마을은 삼한시대 변진(弁辰)의 거칠산국(居柒山國)의 갑화양곡(甲火良谷), 즉 지금의 동래에 속했다가 97년 신라 석탈해왕 때 정복되어 거칠산군으로 변경되...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 있는 공립 초등학교. 스스로 공부하는 자주적인 어린이(자주인), 바른 생활을 실천하는 예절 바른 어린이(예절인), 탐구 생활을 하는 창의적인 어린이(창조인), 몸과 마음이 건강한 어린이(건강인) 육성을 교육목표로 하고 있다. 1923년 11월 영천공립보통학교로 설립을 인가 받아 학교 문을 연 뒤 1928년 2월 제1회 졸업식에서 28명의 졸...
-
양산읍성의 위치는 여러 고지도에 기재되어 있으나 읍성의 구조가 구체적으로 그려진 것은 「해동지도(海東地圖)」(18세기 중엽, 채색필사본, 47.0×30.5㎝, 규장각)이다. 양산의 묘사 내용을 보면 전체적으로 황산강을 끼고 있는 남쪽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산줄기가 고을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로 되어 있다. 동북쪽과 서남쪽으로 뻗어 있는 산맥의 모양이 아주 상세하게 그려져...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내석리 바깥쪽이 되므로 외석(外石)이라 하였다. 또한 서쪽에 내석천(內石川)이 흘러 옛날에는 석장(石庄)이라고도 하였다. 입향조로 류씨(柳氏)가 주류를 이루어 살았는데, 그 뒤 홍씨(洪氏) 등의 여러 성씨가 정착하게 되었다. 조선시대에 양산군이 하북방(下北坊)과 상북방(上北坊)으로 분리될 때 석장리는 하북방에 속하였다....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이라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896년 울산군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할 때 웅상면의 최북단 경계 지역으로서 양산군 웅상면에 편입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편들·당촌...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용소(龍沼)폭포와 그 아래 만들어진 소(沼)가 있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5세기경 현 한듬계곡 상류의 관천동에 정착하였다고 전해진다. 관천동에는 당시 순천후인(順天后人) 김기주(金基柱)라는 사람이 삼수당(三秀堂)이라는 초당을 짓고 기거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조선시대에 양산군이 하북방(下北坊)과 상북방(上北坊)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있는 농공 단지. 1987년 양산군은 ‘농어촌소득개발촉진법’에 의거, 농·어촌 유휴 인력 및 농·어촌의 경제 활성화와 경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웅상읍(현 덕계동)을 농공 단지로 지정하였다. 이에 따라 1988년 11월 20일 착공하여 1989년 12월 31일 웅상농공단지가 완공되었다. 사업비로 국비와 시비 등 약 38억 7894만 원이 소요되었...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경상남도 양산시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동면 소재지는 원리에 있다. 면조(面鳥)는 꿩, 면목(面木)은 느티나무, 면화(面花)는 배롱나무꽃(백일홍)이다. 삼국시대 용당리에는 신라에서 가락국으로 통하는 수로인 가야진나루가 있었다. 신라와 가락국이 밀양군과 양산군을 거쳐 가는 경계 지점에 작원관원문(鵲院關院門)이 있어 육로...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원리에 있는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상북면·원동면·하북면), 7개 동(삼성동·중앙동·강서동·소주동·평산동·서창동·덕계동) 중 원동면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
조선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설치된 교통 통신 기관. 조선시대의 역참은 고려의 제도를 부분적으로 개편하면서 재정비되어, 『경국대전』의 전국 역로망 체제로 확립되었다. 역의 수는 고려 때 520여 개 소였으나 『세종실록지리지』에는 540여 개 소로 기록되어 있고, 『경국대전』에는 540여 개 소로 시대에 따라 다소 변천이 있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한 도별 역수는 경...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소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밤마을를 한자로 옮기면 율리가 되므로 두 말이 혼용되어 현재의 이름으로 되었다. 율리마을은 삼한시대에 소도(蘇塗)로 불리어져 오다가, 약 500년 전 광주안씨가 율리마을에 정착하면서 소대로 개칭되었다. 그 뒤 양산군 전령문서에 소토반촌으로 기록되어 반촌이 반마을로 풀이 되어 반마을이라고도 하였고,...
-
고(故) 안종석 선생은 양산 향토문화 연구의 거목이었다. 성균관 부관장을 역임한 안종석가 1984년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뒤 미망인 김순덕에 의해 발간된 『석헌집(石軒集)』(1992)에 수록된 그의 약력을 간추려 적으면 다음과 같다. 고 안종석 선생은 광복 후 박제상을 기리는 사당을 거금의 사비로 세움으로써 민족정신을 바로잡고자 했다. 1949년에는 협소한 소토초등학교를 사비를...
-
경상남도 양산군수를 역임했던 행정가. 이계형(李啓亨)은 1924년 5월 30일 경상남도 밀양군 부북면 월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944년 3월 선린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1946년 8월부터 1951년 5월까지 경상남도 밀양 부북초등학교 교사를 지냈다. 이후 밀양군·양산군·동래군·창원군 등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하였으며 진주부시장과 마산부시장을 역임하였다. 197...
-
경상남도 양산시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 양산시 인구는 1949년 54,937명이었고, 이후 1950년대 전반까지 전반적으로 감소 추세를 보였다. 195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60년대 전반까지는 증가 추세를 보이다가, 1960년대 중반 이후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다시 감소 추세를 보였다. 1970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시의 동래군 전역이 양산군으로 편입되면...
-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지표와 연계되어 존재하거나 나타나는 인문적 사상(事象). 인문지리는 특정 지역의 지표와 연계되어 존재하거나 나타나는 기후, 생물, 자연, 도시, 교통, 주민, 산업 등의 여러 가지 사상(事象), 즉 사물과 현상 중 주로 인간 활동이나 삶과 관련된 여러 가지 양상들인 인문적 사상을 의미한다. 다른 사상들과 마찬가지로 인문적 사상도 다양한 측면이나 영역...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중심 마을로서 문화 및 생활 수준이 일등(一等)이라 하여 일동마을로 불리어져 왔으며, 그 뒤 행정구역 개편 때에도 일동마을로 그대로 칭하여 내려오고 있다. 본래 양산군 읍내면의 이동·삼동·서부동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양산읍내의 중앙에 있다하여 중부동으로 개칭되었고, 일동·삼동의 2개 마을로 되어 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옛날 장 터가 있었다고 하여 장동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본래 양산군 읍내면 지역이었으나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장동과 서부동·북안동의 일부를 병합하면서 북안과 서부의 이름을 따서 북부동이라 하였다. 1996년 3월 1일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하고 양산읍이 3개 동으로 분할되면서 장동은 북부동에 속하게 되었다....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혁이라는 별칭이 있다. 전병건은 엄주태 등과 함께 1919년 3월 27일 양산장날을 기해 일으킨 3·27양산의거를 주도하여 2년의 옥고를 치렀다. 1921년부터 양산청년회에 참여하기 시작하여 제6회 총회 때 집행위원으로 피선되면서 양산청년회를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1927년 결성된 양산청년동맹의 제2회 총회에서 집행위원장에...
-
조선 전기 양산군수를 지낸 문신. 전평원은 조선 전기인 1392년(태조 원년) 양산군수로 부임해 왔다. 이때 양산군의 읍성(邑城)은 고려 후기 1381년(우왕 14)에 있었던 왜구의 침입으로 말미암아 폐허가 되어 있었고, 속현인 동평현(東平縣)[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일대를 가르키는의 고려시대와 조선 전기의 이름]에서 양산군의 군정(郡政)을 보고 있었다. 전평...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시 출신의 종교인. 춘전(春田) 정준모는 두 살 때인 1862년 부모를 잃고 불우하게 성장했으나 한학에 전념하였고, 한때 불교에 귀의하여 양산 통도사, 청도의 운문사(雲門寺), 강원도 횡성의 구룡사(龜龍寺), 예천의 용문사(龍門寺) 등지로 전전하다 1882년에 양산으로 귀향하여 지물포를 경영하기도 했다. 24세가 되던 1884년 혼인하였고, 26세...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국가 권력의 획득·유지·행사를 둘러싸고 이루어지는 개인 또는 집단 간의 투쟁이나 조정 과정. 공동 생활을 영위하는 인간 사회에는 다양한 이해관계로 인하여 항상 희소 자원의 획득과 배분을 둘러싼 대립이나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이러한 대립이나 투쟁을 조정하여 통일적인 질서를 유지하는 주요 수단으로서 정치라는 현상이 필연적으로 발생하게 되는 것이며, 정치...
-
1392년(태조 1)부터 1910년(순종 4)까지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양산시는 1413년(태종 13)에 양산군(梁山郡)으로 개칭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동래부(東萊府)에 편입되었다가 1603년(선조 36)에 복구되었다. 1897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읍내(邑內)·동면(東面)·상서(上西)·하서(下西)·상북(上北)·하북(下北)·구포(龜浦)·대저(大猪)의 8개 면...
-
양산읍성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져서 여러 번의 재건축으로 모양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 정신은 그대로 이어져왔다. 이 읍성이 본격적으로 증축되었던 것은 조선시대 문종 원년(1451)과 성종 24년(1492)에 증축되기에 이르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읍성의 규모도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읍성은 석축이며 둘레가 3710척, 높이고 13척, 성 안에 우물 6개와 못 1...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이 삼리 왼쪽에 있다하여 좌삼리라고 하였다고 한다. 또는 마을에 삼림이 매우 울창하였으므로 ‘삼(森)’ 자를 붙여 지명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과거에는 횡당마을 혹은 사대마을로도 불리어졌다고 한다. 약 400년 전 달성서씨가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진다. 조선시대 양산군이 하북방(下北坊)과 상북방(上北坊)으로 행정구역이 분리될...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울산군 웅상면 지역으로 주남(周南)이라 하였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蔚山郡)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896년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할 때 울산군 웅상면 덕계리라 하고, 1906년 양산군...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아리 또는 주진이라 하였다. 주진마을의 지형이 배[船]형국이고, 땅에 나룻배의 닻을 맸다 하여 처음에는 선진(船津)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蔚山郡)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
-
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의 지형이 배[船] 형국이고, 옛날에 해일이 일면 나룻배를 매어 놓았다하여 처음에는 주진(舟津)이라고 표기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웃주진·아랫주진·굼바우를 병합하여 주진동[리]이라 하였다. 1991년 11월 20일 웅상면이 웅상읍으로 승격되었고, 1996년 3월 1일에는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되면서...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동. 양산시청이 소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양산시의 행정·경제·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의 중심지라 하여 중앙동이라 하게 되었다. 양산읍은 양산의 읍내이므로 읍내면(邑內面)이라 하였는 데, 1786년(정조 10)의 『양산군읍지』 방리조에 의하면 11개 리를 관할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다...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중앙동 관할 행정 기관. 경상남도 양산시를 구성하고 있는 1개 읍(물금읍), 4개 면(동면·상북면·원동면·하북면), 7개 동(삼성동·중앙동·강서동·소주동·평산동·서창동·덕계동) 중 중앙동의 행정 사무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중앙동의 행정, 민원 및 주민의 복리 증진과 관련된 업무를 총괄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속하는 법정리. 시루 모양으로 생긴 증산(甑山) 기슭에 취락이 형성되어 있어서 증산이라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양산군 산천조에는 양산군의 서남쪽 12리 큰들 가운데 있는 증산은 황산의 안산(案山)이며 이어진 산맥이 없어 그 형상이 ‘엎어 놓은 시루’ 같다고 약술하고 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증(甑)’ 자를 ‘증(...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의 명칭 유래에 대한 구전 혹은 문헌적 자료가 전하지 전하지 자세히 알 수 없다. 다만 ‘池內’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蓴池’의 안쪽에 있어서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이 아닌가 하고 추측하고 있다. 실제 지내마을의 옛이름은 ‘못안’ 또는 ‘모단’이었다. 본래 양산군 하북면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하북...
-
경상남도 양산시 주민이 정치·행정에 스스로 참여하여 지역 현안을 결정·운영하는 제도. 양산시의 지방자치는 크게 주민들에 의해 직접 선출되는 단체장과 기초 단체의 행정 사무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기초 의회로 구성된다. 양산시에 지방자치를 도입하고, 또 지난 4기 민선 시장이 선출됨에 따라 양산시의 운영은 시민들의 의사가 행정에 적극 반영되고 있다. 또한 양산시 의...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전해 내려오는 지방관의 애향심을 보여주는 지명 유래담. 1996년에 편찬된 『하북면지』에 채록되어 실려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의 지산리와 초산리 지역의 명칭이 불리게 된 유래를 설명하는 전설이다. 충정공 권발의 6대손인 권만은 1747년(영조 23)부터 1749년(영조 25)까지 양산군수로 재직하면서 양산군 내의 5개 봉산(封山:...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본래 지산골 또는 지산이라 하였는 데, 진시황 때 서불(徐巿)이 불로초를 구하러 동방으로 왔을 때 영지(靈芝)를 구한 지역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입향조는 현재 평산마을에 정착한 김해김씨였다고 한다. 지산당 앞에 있는 묘의 입석에 ‘장사랑김해김씨함풍십년(將仕郞金海金氏咸豊十年)’이라 쓰여 있어 정착 시기는 대략 1800년경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종교 중의 하나. 천부교는 1955년 평안남도 덕천 출신의 박태선(朴泰善)에 의해 창설된 종교이다. 박태선은 임박한 종말론을 주장하면서 구원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신앙촌에 입주를 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신앙촌은 천부교 교인들이 모여 사는 신앙인의 마을로 천부교인들의 성지이며 기업을 통한 경제적 자립과 올바른 신앙생활을 영위하려는 목적으...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초산(草山)이란 지명은 넓은 버덩(높고 평평하며 나무는 없이 잡풀이 무성한 들판)에 풀이 무성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초산 이전의 지명은 송계버등마을이라 했다. 송계란 좁은 개울이란 뜻의 사투리로서 현 통도사 관광호텔 앞의 양산천이 있는 주위가 다른 곳보다 아주 협소한 내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한...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초한전」을 내용으로 불리는 민요. 「초한전」은 보통 「초한가」라고 하는데, 서도 잡가의 하나로 황해도와 평안도 지방에서 불리는 노래이다. 「초한전」은 중국의 초나라와 한나라가 서로 싸워 이기고 졌던 역사적인 내용을 사설로 하여 「수심가」와 같은 간단한 가락에 촘촘히 엮어서 부른다. 1989년 2월 이소라가 경상남도 양산시 주남동에서 이...
-
조선 후기 김이만이 춘설루에서 휴식을 취하며 지은 오언율시의 한시. 춘설루(春雪樓)는 조선시대 양산군(梁山郡) 관사 서쪽에 있던 누각이다. 「춘설루 제영」은 양산군수였던 김이만(金履萬)[1683~1758]이 정무(政務)를 마치고 관사 서쪽에 있던 춘설루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지은 시이다. 오언율시의 한시로서, 1구와 2구는 정무 이후 한숨을 돌린 상황을 이야기하였고, 3구...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던 조선시대 누각 터. 경상남도 양산시에는 조선시대의 누각이 많이 있다. 이 가운데 춘설루에 대한 자료는 조선 후기에 양산군을 거쳐간 관리들의 시에서 그 모습을 추측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영조와 정조 때의 무신이었던 권만과 양산군수였던 이만도가 대표적이다. 그 가운데에 이만도의 글 일부를 인용해 본다. “의춘에 무엇이 있더냐? 대나무 사방...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에서 춤을 추거나 일을 하면서 부르는 민요. 「칭칭이 노래」는 교창식 모노래, 어산영 등과 함께 경상도를 본고장으로 하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칭칭이 민요는 벙개춤이라는 부정형의 춤을 추면서 부르는 소리로 여러 사람이 어울려 신명나게 놀 때 부른다. 뿐만 아니라 일의 마무리 단계에서 남녀노소의 군중이 일심동체가 되어 한바탕 신명을 내며 즐기는...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베를 짜면서 부르는 민요. 칭칭이는 교창식 모노래, 어산영 등과 함께 경상도를 본고장으로 하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장원질 소리로도 불리우나 굿거리 장단에 춤이 덩실덩실 나올 만큼 리듬감이 있어 파연곡(罷宴曲)으로 많이 쓰였다. 양산 지역에서는 칭칭이의 메김구로 서처자, 나물노래, 베틀가사, 시집살이, 회심곡, 젊어 놀자, 백발보고 웃지마라, 투전뒷풀이...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시집살이와 베틀질의 어려움을 노래한 민요. 칭칭이는 교창식 모노래, 어산영 등과 함께 경상도를 본고장으로 하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장원질 소리로도 불리나 굿거리장단에 춤이 덩실덩실 나올 만큼 리듬감이 있어 파연곡(罷宴曲)으로 많이 쓰인다. 양산 지역에서는 칭칭이의 메김구로 서처자, 나물노래, 베틀가사, 시집살이, 회심곡, 젊어 놀자, 백발보고 웃지마라...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장원질이나 벼 추수 후 귀가 시에 부르는 민요. 칭칭이는 교창식 모노래, 어산영 등과 함께 경상도를 본고장으로 하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굿거리장단으로 덩실덩실 춤을 추는 리듬감이 있어 한바탕 놀 때 주로 불린다. 장원질은 그 해의 마지막 논매기인 망사논매기를 하고, 장원지(수고했다고 장만해 놓은 음식)를 먹으러 가는 행사이다. 장월질 시에 길놀이나 뒷...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에서 춤을 출 때나 일을 마무리할 때 부르는 민요. 「쾌지랑칭칭나네」 등의 「칭칭이」는 교창식 모노래, 어산영 등과 함께 경상도를 본고장으로 하는 대표적인 민요이다. 이른 바 벙개춤이라는 부정형의 춤을 추면서 부르는 소리로, 주로 여러 사람이 어울려 신명나게 놀이를 할 때 가창된다. 뿐만 아니라 일의 마무리 단계에서 남녀노소의 군중이 일심...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에 있는 놀이 시설. 1991년 7월 (주)한일리조트는 양산군으로부터 통도환타지아 건축 허가를 승인받았다. 1993년 1월 건축 공사를 준공하였고, 같은 해 5월 1일 통도환타지아를 개장하였다. 2005년 6월 회사명이 (주)한일리조트에서 (주)동일리조트로 변경되었다. 2007년 7월 해안 경관과 물놀이 기구를 중심으로 통도아쿠아환타지아를 개...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평산마을의 인구 증가로 분동되어 평산2마을이 되었다. 1896년 울산군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할 때 웅상면이 양산군으로 편입되었고, 1917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산마을·내연마을·장흥마을을 병합하여 평산리라 하였다. 평산마을은 서쪽으로는 천성산과, 동쪽으로는 멀리 에이원CC골프장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이 지역의 지대가 매우 평평하여 평산(平山)이라 하였다. 아리골·아리곡이라고도 한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896년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할 때 울산군 웅상면...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양산의 읍치로부터 최북단에 있는 고을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665년(문무왕 5)에 신라가 상주와 하주를 개편해 양주(良州)를 신설하여 이에 속했다. 757년(경덕왕 16)에 고을 명을 양주(良州)로 개칭하고 헌양현(巘陽縣)[지금의 언양]을 영현으로 하였다. 940년(태조 23)에 양주(良州)는 양주(梁州)로 개칭되었...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한국4-H본부 산하의 양산 지부. 한국4-H본부 경상남도4-H본부 양산시지부는 양산 지역의 농촌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智: Head), 덕(德: Heart), 노(勞: Hands), 체(體 :Health)의 4-H 이념을 생활화하여 청소년들을 건전한 시민으로 육성하기 위해서 설립되었다. 한국4-H본부 경상남도4-H본부 양산시지...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이루어지는 공권력을 배경으로 공공 정책의 합리적인 형성과 집행을 구체화하는 과정. 과거와는 달리 현대의 행정은 국민 또는 주민의 일상 생활 전반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방향으로 그 역할과 범위가 크게 확대되었다. 예를 들어, 기존의 질서 유지 기능 외에도 수도·전기·교통·통신 등 사회 간접 시설의 제공, 학교·도서관·공원 등 문화 시설의 확충, 사회적...
-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에 있는 조선시대 지방 관립 교육 기관. 향교는 유교 문화 위에서 설립·운영된 교육 기관으로, 국가가 유교 문화 이념을 수용하기 위해 중앙의 성균관과 연계시키면서 지방에 세운 것이다. 교궁(校宮), 재궁(齋宮)이라는 명칭으로도 불리는 향교는 지방에 설치된 관학으로 중등 과정의 교육 기관이다. 향교는 고려시대부터 설치되었으나 그리 성행하지 못하였다. 조...
-
경상남도 양산시 삼성동에 속하는 법정동. 천성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계곡이 깊어 범[虎]이 자주 출몰하여 호계동(虎溪洞)이라 하였다고 하며, 범곡이라 할 때 ‘범(凡)’ 자의 한글 발음을 한자어인 범 ‘호(虎)’ 자로 고쳐 호계(虎溪)라고 했다고 한다. 예전에는 범골 또는 범곡이라 부를 때도 있었다. 고려 때 범곡부곡(凡谷部曲)이 있었던 지역으로 양산군 읍내...
-
삼국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 호포 일대에 설치되었던 숙박 시설. 원(院)은 각 지방 교통로에 설치된 민간 숙박 시설이다. 우리나라에 원이 언제부터 설치 운영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신라 소지왕 시대에 우역(郵驛)을 설치하고 운영했음을 생각해 볼 때 역이 생기고 역 근처에 여행객을 위한 원이 생겼을 것이란 추측이 가능하다. 『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