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개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두 개의 계곡이 합쳐 벌어진 마을이란 뜻에서 개곡이란 이름이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개곡마을의 형성 시기는 출토되는 유적·유물들을 보아 신라 말기나 고려 전기일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골에는 신라 말이나 고려 전기에 절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古)기왓장·주춧돌·구들장 등이 출토되었을 뿐 아니라, 대밭골에는...
-
신라시대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약했다고 추정되는 장군. 거도의 활약상은 『삼국사기』 거도열전에 잘 나타나 있으나, 가계와 성씨는 전하지 않는다. 탈해이사금(脫解尼師今) 때에 벼슬하여 간(干)이 되었다. 그때, 우시산국(于尸山國)과 거칠산국(居柒山國)이 국경의 이웃에 있어서 자못 나라의 걱정거리가 되었는데, 거도가 변경의 지방관이 되어 그 곳을 병합할 생각을 품었다. 매년...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에 있는 나주오씨의 제단(祭壇). 나주오씨의 제단으로 주위에는 나주오씨 조상묘가 있다. 이전에는 단의 이름을 치등제단(治登祭壇)이라고 하였다.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외석리는 나주오씨의 집성촌이다. 중시조인 진사공 오속규의 후손인 오손을 일대로 하여 8세 오명한이 울산에 입거하고 12세 오세윤에 이르러 양산에 이거하였다....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는 산등성이와 봉우리 사이의 낮은 부분. 재 또는 영(嶺)이라고도 한다. 영어로는 패스(pass)라고 하는 데, 그 어원은 패서블(passable), 즉 통과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었으며, 산등성이의 낮은 곳으로 길이 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산의 양쪽 사면에 계곡이 발달하여 양쪽으로부터 침식이 진전되면 등성이 부분이 낮아져서 안부를 형성한다....
-
선사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의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양산 지역은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하였으며, 삼한시대와 삼국시대 초기에는 가야의 영향을 받다가 5세기 이후 신라에 편입되었다. 삼국시대에는 삽량(歃良)으로 불리다가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양주로 개칭되었다. 양산 지역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인지 그 시기에 대해서 확실하게 단언할 수는 없다....
-
918년부터 1392년까지 경상남도 양산 지역의 역사. 양산의 고려시대 지명은 양주인데, 김인훈 등의 호족 세력이 태조의 후삼국 통일에 적극 동조한 이후 지역 행정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유지하였다. 아울러 양주에는 울주와 함께 방어사(防禦使)를 두었는데, 이는 양주가 군사적으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한 지역임을 말해준다. 일시적으로 동래현과 기장현을 속현으로 관할하기도 하고,...
-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에 있는 달성서씨 재실. 달성서씨 감찰공파(監察公派) 증산 문중(增山門中) 절충장군겸지중추부사(折衷將軍兼知中樞府事) 서두망(徐斗望)[1686~1746]을 기리기 위한 재사이다. 달성서씨는 입향조인 서몽호가 임진왜란 때에 창의하여 주부를 제수 받고 후에 증산사에 배향되었으며 이후 울산으로부터 와서 매곡에서 살았다. 이후 증산문중의...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국가의 감독 아래 공공 사무를 처리하는 기관. 일반적으로 공공기관은 기관이나 단체 중 공공 행정을 담당하는 기관이자 사행정, 사조직, 시민 사회 단체, 민간 단체, 기타 사설 기관 등과 구분되는 공조직으로 공공 서비스와 공공 재화를 생산한다. 따라서 공공기관은 관공서로 통칭하는 국가 행정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공법인으로 분류되는 정부 투자 기관이...
-
양산의 지도는 향토의 과거·현재·미래를 함께 볼 수 있는 도구이다. 이는 지도가 종합과학적인 성격을 지니고, 그 속에 담겨진 내용이 양산의 모든 것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그려진 양산의 고지도는 제작 당시의 위치 정보를 이미지로 전달하기 때문에 텍스트로 쓰인 지리서보다 위치 파악에 효율적이다. 따라서 양산의 고지도는 양산 지역의 향토 문화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
-
경상남도 양산시의 풍속(風俗)·풍광(風光)·사적(史蹟) 등을 둘러보는 유람 활동. 양산은 부산과 울산의 대도시적 배경과 김해 및 밀양의 촌락적 배경을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으므로 양산의 근원적 기능 뿐만 아니라 배후 지역의 수요에 대처하여 발전해야만 한다. 특히 양산은 주택 기능, 공업 기능, 도시민의 관광 휴양 기능 등을 고려하여 도시 기능을 선택하고 선택된...
-
경상남도 양산시 북부동에 있는 서예 관련 문화 예술 단체. 관설당(官設堂)은 신라의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호이다. 박제상은 신라 제19대 눌지왕 시절 왜국에 볼모로 잡혀 있던 눌지왕의 아우 미사흔(未斯欣)을 지략으로써 구하고 대신 붙잡혔다. 왜국의 왕은 박제상을 신하로 삼기 위해 온갖 감언이설과 협박으로 회유했으나, 박제상은 “차라리 신라의 개나 돼지가 될지...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주요 도로, 교통 수단 및 관련 시설. 양산시는 동남부에 위치한 내륙 도시로서 북쪽으로는 울산광역시와 인접하고 서쪽으로는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밀양시·김해시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동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와 인접한 지역이다. 1. 도로 교통 고속국도 1호선[경부고속국도], 고속국도 551호선(양산~구포 간)을 비롯하여 국도 7...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서 주남동 구간을 통과하는 일반 국도. 국도 7호선은 전국 30개 남북 노선 가운데 하나로, 부산광역시 중구에서 경상남도·경상북도, 강원도를 거쳐 함경북도 온성군 유덕면까지 이어지는 남북 방향의 도로로서 동해안의 저평지를 따라 개설되어 있다. 도로 연장은 총 513.4㎞이다. 국도 7호선은 군사분계선에 의해 통행은 불가능하지만 20...
-
경상남도 양산시 주남동에 있는 이겸수를 제향하던 서원 터. 학성이씨(鶴城李氏) 서면파 이겸수(李謙受)의 자는 자우(子虞), 호는 잠와(潛窩)이며, 수사(水使) 이종실(李宗實)의 5세손이요, 이종실의 여섯째 아들인 서면파 파조(派祖) 이직강(李直剛)의 후손이다. 1594년(선조 27) 왜장(倭將) 가등청정(加藤淸正)이 울산의 서생포(西生浦)에 진을 치고 화친을...
-
삼국시대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동한 승려. 양산 지역에서는 예부터 낭지선사(朗智禪師)와 관련한 전설이 다음과 같이 전하여지고 있다. 낭지선사는 일찍이 구름을 타고 중국 청량산(淸凉山)에 가서 강설을 듣고 잠깐에 돌아오곤 하였다고 전하여지며, 최소한 135세 이상을 살았다고 한다. 낭지선사가 머물던 암자를 혁목암(赫木庵)이라 하는데, 이는 먼 옛날 부처가 가섭불(迦葉佛)로...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내연’은 못을 메꾸어 이룬 마을이라는 뜻으로,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아릿내연, 위쪽에 있는 마을을 웃내연이라 부른다. 1917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산마을·내연(內淵)마을·장흥(長興)마을을 병합하여 평산리라 하였다. 1992년에 아파트가 건립되어 내연마을이 분리되어, 현재 내연[내인]·아릿내연(아릿내인)·웃내연(웃내인)이...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한 내연2마을은 3·4차 경보아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내연’은 못을 메꾸어 이룬 마을이라는 뜻으로,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아릿내연, 위쪽에 있는 마을을 웃내연이라 부른다. 1917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산마을·내연(內淵)마을·장흥(長興)마을을 병합하여 평산리라 하였다. 1992년에 아...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내연’은 못을 메꾸어 이룬 마을이라는 뜻으로, 아래쪽에 있는 마을을 아릿내연, 위쪽에 있는 마을을 웃내연이라 부른다. 1917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산마을·내연(內淵)마을·장흥(長興)마을을 병합하여 평산리라 하였다. 1992년에 아파트가 건립되어 내연마을이 분동되어, 현재 내연[내인]·아릿내연(아릿내인)·웃내연(웃내인)이...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토지를 이용하여 인간에게 유용한 동·식물을 길러 생산물을 얻어내는 경제 활동. 농업은 토지를 이용하여 작물을 재배하거나 가축을 사육하여 의식주에 필요한 자재를 생산하는 인간의 경제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는 1차 산업이다. 농업은 유기적인 생물을 생산하기 때문에 토지와 기후 등 자연 조건에 크게 좌우되며 그 방법과 내용은 시대와 지역에...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소재한 풍류를 즐기고 주변 경치를 감상하는 기능을 가진 다락식의 집 양산은 태백산맥에서 이어진 천성산(千聖山) 시발지에서 천태산과 대웅산으로 분리되었으나 천성산 말미에 와서는 금정산(金井山)이 이를 받쳐 주고 취서산에서 발원되는 물줄기가 양산천의 주류가 되어 내원계곡 오룡곡(五龍谷) 계곡으로부터 대석천은 천성산 흥룡폭포에서 발원되는 물이 양산...
-
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몽호를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시조 서진(徐晉)이 고려시대에 봉익대부(奉翊大夫)와 판도판서(版圖判書) 등에 오르면서 나라에 공을 세워 달성군(達城君)에 봉해지고 달성(達城)을 식읍으로 하사받아 세거하게 되었으며, 후손들이 달성(達城)을 본관으로 하여 세계(世系)를 계승하고 있다. 달성(達城)은 현재 대구광역시 일원의 옛...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서진을 시조로 하고 서몽호·서의손·서두조를 입향조로 하는 달성서씨 후손들이 모여 살고 있는 마을들. 서씨의 중심 본관은 이천서씨이며, 나머지는 모두 이천서씨에서 분파된 것이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와 『조선씨족통보』에는 이천서씨에서 달성·장성·연산·남평·평당·부여 등이 갈린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시조는 서진(徐晋)으로 고려 때 봉익대부판도판...
-
경상남도 양산시 용당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지금의 우불산(于佛山)이 ‘당(堂)갓’으로 불렸을 때 당갓 아래 마을이 형성됨에 따라 마을 이름을 ‘당촌’이라 불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786년(정조 10)부터 당촌마을이 속한 용당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다. 1786년 웅상읍이 웅촌면으로 개칭되고, 1896년(고종 33) 8월에 전국 8도(道)를 13도로 분할하면서 용...
-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건설 회사의 명칭을 따서 대동마을이라 칭하였다. 부산~울산 간 국도 7호선으로 웅상파머스마켓을 지나 소주 공단길에서 왼쪽으로 끝까지 들어가면 대동아파트가 있는데, 이 아파트 단지가 대동마을이다. 천성산 아래 조성되어 다른 지역에 비해 공기가 좋다. 인근에 보현사와 영험사 사찰이 있다. 2007년 12월 31일 현재...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아파트를 건립한 시공 회사의 명칭을 따라 대승마을로 이름을 지었다. 1917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덕계마을(구 덕계마을을 포함)·외산(外山)마을·조평(鳥坪)마을·월라(月羅)마을을 병합하여 덕계리라 하였다. 이후 외산마을과 조평마을이 분리되었고, 1986년에는 월라마을과 덕계마을이 분동되었다. 대승아파트가 건립되면서 1994...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아파트를 건립한 건설 회사의 명칭을 따라 대진마을로 이름을 정하였다. 대진마을은 동부마을에서 분동되어 나온 것이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982년에 삼여(三呂)·용암(龍岩)을 병합하여 북부마을로 하고, 당시 서창(西倉)을 서부마을과 동부마을로 분동하였다. 1992년 서부마을을 서부1리로 분동하고, 동부마을을 동부...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 속하는 덕계1마을은 덕계마을 아래쪽에 있다. 덕계1마을과 관계된 지명으로는 조평(鳥坪)·배나무골·범살미·몰강소·소심산·점비알·옹기점 등이 있다. 덕계마을은 『울산지명사』에 따르면 산 아래에 배나무가 만발하다 하여 이천(梨川)으로 불려오다가, 조선 말기에 이르러 덕계로 칭했을 것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덕계동에서 분동되어 덕계2마을이 되었다. 덕계2마을은 덕계리에 속해 있다가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분동됨에 따라 덕계리가 덕계동이 되었고, 본마을인 덕계마을의 인구 증가로 덕계2마을로 분동되었다. 2007년 12월 31일 현재 196가구에 393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경보아파트 건설 시 공사 명칭을 따서 덕계경보마을이라고 부른다. 덕계경보마을에는 2007년 12월 31일 현재 231세대에 712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경보1차아파트는 장흥마을에 속해 있다가 2008년 1월에 분동되었다. 아파트를 지은 지 17년 되었을 정도로 많이 노후되었다. 아파트 내의 상가 건물에는 슈퍼마켓을...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이자 행정동. 경상남도 양산시 동쪽 끝단에 위치하며, 신흥 주거 단지 및 공업 도시로서 발달하고 있는 지역이다. 산업 유통 및 교통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행정리인 덕계리의 이름을 따서 덕계동이라 하였다. 덕계마을은 두 갈래로 흐르는 강줄기 사이에 자리 잡은 ‘큰 시내 사이에 만들어진 마을’로서 큰 ‘덕(德)’ 자와 시내...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칭 유래는 정확하지 않지만, 조선 말기부터 덕계로 불렸을 것으로 추정된다. 덕계마을은 주위 인근 마을 가운데에서 가장 큰 마을이다. 『울산지명사』에 의하면 예전에는 강이 흐르고, 배나무가 만발하여 이천(梨川)으로 불렸다. 1917년 덕계마을은 법정리인 덕계리에 속했다가,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분동되면서 덕...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있 전통 재래 시장. 덕계장은 1964년 웅상면 덕계리에 거주하던 김수경(金水經)이 사유지 1,540㎡를 시장 부지로 희사함에 따라 일반 철골조 건물로 준공되었다. 당시 덕계장의 대지 면적은 1,606㎡, 건물 면적은 219㎡로, 15개의 점포가 문을 열었다. 1972년 웅상농공단지 조성 계획으로 입주 기업체와 거주 인구가 증가함에 따...
-
명동마을은 인접한 울산, 부산과의 교통이 좋기 때문에 도시에 사는 젊은 사람들이 이곳에 많이 살고 있다. 여기에 살면 도시와 가까우면서도 살기 좋은 환경이라서 젊은 사람들은 회사에 다니면서 부모님을 모실 수 있기 때문에 그러한 가정이 많다. 그래서 이 마을은 다른 마을보다 아이들도 많고, 아이들 대부분은 다들 집에서 학교를 다닌다. 명동마을 배복자 할머니께서는...
-
도시화되기 이전에 이곳 명동은 참 평화로운 마을이었다. 마을 가운데 회야강이 흐르고 대운산의 계곡에서는 맑은 물이 흐르면서 마을 앞으로는 넓다란 논밭이 펼쳐져 있다. 주민들은 참 살기 좋은 마을로 기억하고 있었다. 이장님의 말에 따르면, 이곳 명동은 눈도 많이 안 오고 비도 많이 안 오고 바람, 태풍의 피해도 거의 없다고 한다. 다음은 이장님의 말씀이다. “여기는 참 좋은 게 눈도...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 출신으로 일제에 저항한 인물들. 양산 지역에서의 본격적인 항일 독립 운동은 1919년 3·1운동 이후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다. 양산 지역에서는 인근의 밀양이나 울산 지역에서처럼 3·1운동을 주동적으로 이끈 비밀단체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나, 윤현태와 같은 선각자들이 조선국권회복단에서 활동한 만큼 윤현태의 영향을 받은 지인과 후배들의...
-
일제시기 대표적 독립운동가 윤현진(尹顯振)[1892~1921]은 부산을 빛낸 인물로 선정되어, 부산광역시에서 출판되는 각종 책에 소개되어 부산 출신으로 알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윤현진은 부산 출생이 아니라 1892년 양산군 상북면 소토리에서 출생하였다. 그의 할아버지 윤홍석[1843~1902] 동래부사와 사천군수를 지냈고, 아버지 윤필은은 동래부사, 경상우도 관찰사, 동래부...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82년 서창(西倉)마을이 2개 마을로 분동되었을 때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부마을로 불리게 되었다. 동부마을에서 동부1마을과 동부2마을이 분동되어 나오면서, ‘동부’의 이름을 따서 ‘동부2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1982년에 삼여(三呂)·용암(龍岩)을 병합하여 북부마을이 되었고, 당시 서창을 서부마을과 동부마을로 분...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82년 서창(西倉)마을이 2개 마을로 분동될 때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부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이후 동부마을이 다시 동부1마을과 동부2마을로 분동되어 지금의 동부2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1982년에 삼여(三呂)·용암(龍岩)을 병합하여 북부마을이 되었고, 당시 서창(西倉)을 서부마을과 동부마을로 분동하였다. 1992년...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82년에 서창(西倉)을 2개 마을로 분동하면서 동쪽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동부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1982년에 삼여(三呂)·용암(龍岩)을 병합하여 북부마을이 되었고, 당시 서창을 서부마을과 동부마을로 분동하였다. 1992년 서부마을에서 서부1리가 분동되었고, 동부마을에서 동부1마을이 분동하였다. 2007년 4월 1일자로...
-
경상남도 양산시 매곡동에 있는 골프장. 자연과 레저 활동을 함께 영위할 수 있는 체육 시설 및 휴양 시설의 건립을 통하여 양산 지역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고자 건립하였다. 1998년 1월 1일 개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체 27홀로 레이크 코스, 힐 코스, 밸리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의 지형 지세를 살린 인공 폭포와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전략적 플레이를...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동일마을은 동일스위트 2차 아파트 단지로 구성되어 있으며, 아파트 건설업체의 상호에서 명칭을 가져와 동일마을이라 칭하였다. 양산시 덕계동 지역은 인근 양산 삼호리 고분군과 명곡리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덕계동 지역에 정착민의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추론해 볼 수 있다. 931년(태조 1...
-
명동은 흥려박씨와 학성이씨가 어우러져 사는 집성촌이다. 명동마을의 이러한 내력을 보여주는 것이 흥려박씨 문중 사당인 귀후재이다. 이 사당의 구조는 콘크리트 목조건축 형식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의 겹처마로 이루어져 있다. 출입문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집을 거쳐서 들어가야만 대문이 나온다. 정문에는 신덕문(愼德門)이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신덕이...
-
용당마을 사람들은 몇 달 동안 자기 자식처럼 키운 딸기를 출하하기 위하여 하우스에 들어간다. 이들은 청과조합과 소매업자, 그리고 기업에 계약 출하하는 경우로 나누어서 작업을 한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의 판로에 따라 다양한 출하작업을 하고 있다. 중리 이장을 비롯한 많은 마을 사람들은 공판장에 경매로 넘겨서 딸기를 처분하고 있다. 중리마을 이장은 딸기 출하는 매일 오전 1...
-
용당들은 이곳 마을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다. 1,322,320㎡에 달하는 넓은 용당들에는 여러 가지 농산물이 자라나고 있다. 보통 농산물이라고 하면 벼나 보리를 연상하지만 용당들에서는 그러한 것을 거의 볼 수 없다. 이곳이 여름이면 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마을의 속담 가운데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시집가기 전까지 쌀 서 말을 먹지 못한다....
-
박극수(61). 시인이며 수필가인 그는 한마디로 명동의 정신을 기록을 통해 계승코자 하는 사람이다. 젊은 시절 그는 마을에서 제일 먼저 들에 나가고 밤늦게까지 일하면서도 돈이 아까워 새참도 먹지 않았다. 소출이 적어 경작하지 않는 산답(山畓)을 소작으로 얻어 밤을 지새우며 죽도록 일해도 동생들 학비며 기본 생활을 꾸려나가기에도 벅찼다. 빚은 자꾸 늘어만 가고, 모든 걸...
-
명동마을은 웅상농청장원놀이의 명성에 걸맞게 TV에도 여러 차례 방영될 만큼 유명한 마을이다. 전통놀이의 맥을 이어가는 마을로써 사람들에게 알려진 만큼 마을을 찾아가는 길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부산에서 방문할 때에는 7번 국도를 타고 울산 방향으로 가야 한다. 작은 마을이지만 두 개의 광역시를 사이에 둔 지역답게 도로변은 이미 도시화가 되었다. 아파트가 즐비하게 들어선 덕...
-
마을 할머니와 대화를 하다보면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주신다. 이름처럼 백수까지는 끄떡없으실 것 같은 너무나 정정하신 80대의 김백수 할머니는 마을에 대해 공부하러 왔다는 말에 할머니가 알고 계신 마을에 대한 비밀이야기를 해주시려는 듯 소곤소곤 마을에 대한 말씀을 꺼내신다. “여기 마을사람들은 살다가 부자가 되믄 마을 밖으로 나가야 된다고 칸다.” 할머니께서 던지신 말씀에 무...
-
용당들 앞에 유유히 흐르고 있는 낙동강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 용산이다. 이 산은 그리 크지는 않지만 마을사람들에게는 마을의 정기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는 곳이다. 그런데 2002년 1월 19일에 이 마을에 큰 일이 벌어졌다. 이 용산이 앞으로 갈라질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자연적으로 갈라져도 문제가 되는 것인데 인위적으로 사람이 갈라놓는다는 것이었다. 이곳에 건...
-
이조기(1887~1983, 명곡 출생)는 홈실댁으로 불리워졌다. 명동 본마을 이름이 홈실인 것처럼 그이 일생에는 홈실 마을 사람들의 옛 삶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다. ▶ 남편을 만나 가정을 꾸리며 홈실댁은 명곡에서 1887년에 출생하여 열다섯 살 되던 해 이웃한 백동마을의 26세의 늙은 총각(당시 평균 결혼연령 20세)에게 시집갔다. 그 시절 결혼은 당사자의 의사...
-
마을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직선으로 뻗어 있는 마을길이다. 본래는 모두 논과 밭이었던 곳이 도로와 주택으로 뒤집힌 후 마을의 모습은 많이 변화되었다. 그 중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마을에 아파트가 들어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증언은 농촌 마을이 주택지구가 되는 과정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시집왔을 때는 저 앞에 전부 다 노랬습니더. 장승나무 있는데 거기...
-
명동마을에는 총 세 그루의 당산나무가 이 마을을 지키는 든든한 수호신의 역할을 한다. 명동마을 초입부에서 산 길 쪽으로 가다 보면 명곡슈퍼 회관 앞에 외관부터 예사롭지 않은 나무가 보이는데, 이 나무가 바로 명동마을의 첫 번째 당산나무이다. 양산시에서 지정한 보호수로 나무의 나이가 자그마치 700년이나 되는 높이 19m, 둘레 5.3m인 느티나무이다. 마을 입구에 당당하...
-
너더댓 살 적 얘기니까 쉰 네 해를 산 강미애(54세) 씨 자신의 연륜을 놓고 볼 때 참으로 오래 전의 일이다. 어느 날 어머니께서 새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사 오셨다. 그런데 문제는 그 신발이 강씨의 발보다 작았다는 것이다. 어머니께서 다음 저자 날 바꿔다 주신다는 걸 행여 자기 것이 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어린 마음에 작지 않다고 우기고는 그걸 신고 종일 밖에 나가 자랑하며 놀...
-
우리나라의 특징은 각기 지역마다 독특한 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방언, 즉 사투리이다. 지역마다 문화적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우리나라의 지형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지형적 특성은 사람의 이동이나, 물자, 교통의 흐름을 원활하게 흐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로 작용했다. 명동마을도 지형적 이유와 역사적 이유로 독특한 문화를 가지...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명곡리 고분군은 명동 북서쪽 7번 도로 울산 방향의 오른쪽 낮은 독립 구릉에 위치한다. 유적의 인근에는 웅상초등학교가 있으며, 구릉 하단에는 웅상고철이라는 고철 수집소와 오뚜기 식품 공장이 있다. 유구의 양상은 지표 조사에서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산 사면에 흩어져 드러난 할석, 석곽의 흔적, 토층 단면...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명동은 가매소 북쪽에 있는 들을 칭하는데, 명곡마을이 처음 생긴 곳이다. 명곡마을에서 분리되면서 이름이 바뀌어 명동이 되었다. 삼한시대에 명동 지역은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다.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蔚山郡)으로 개명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西面)으로 명명...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명동에서 분동되어서 명동1마을이라 칭했다. 명동1마을 지역은 1896년 울산군 웅촌면이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될 때 양산군 웅상면으로 편입되었다. 1917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명곡(椧谷)마을·외홈마을·소정(蘇亭)마을·남천(南川)마을·교동(校洞)마을을 병합하여 명곡리라 하였다. 2005년 1월 1일 명...
-
경상남도 양산시 명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본래 명동이던 것이 명곡으로 개칭되었다가, 양산시 중앙동의 명곡동과 이름이 같아 다시 명동마을로 부르게 되었다. 1896년 울산군 웅촌면이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될 때 양산군 웅상면으로 편입되었고, 1917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명곡(椧谷)마을·외홈마을·소정(蘇亭)마을·남천(南川)마을·교동(校洞)마을을 병합하여 명곡리라 하...
-
효충마을에서 태어난 박제상은 금교부인(金校夫人)과 결혼하여 1남3녀를 낳았다. 그 가운데 외아들이 백결 선생 박문량이다. 그의 이름은 문량(文良) 또는 누랑(婁琅)이요 호는 백결(百結)이다. 5세 때 아버지 박제상은 왜국에서 충절을 지키다 순국하였고, 모친께서는 울산 치술령에 올라가 동해를 바라보면서 남편을 그리워하다 두 딸과 함께 순절하신 후 홀로 남은 둘째 누이 아영...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라디오나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음성이나 영상을 전파로 내보내는 일. 방송은 적절한 수신 장치를 갖춘 불특정 다수의 대중이 동시에 청취할 수 있도록 오락·정보·교육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보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에 따라 라디오 방송, 텔레비전 방송, 케이블 방송, 인터넷 방송, 위성 방송 등으로 나뉜다. 대한...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 교회가 설립되던 1959년 당시 경상남도 양산시 법기 지역에는 납석 광산이 있었고, 광산을 운영하던 부산 동광성결교회 소속의 김영서 집사가 광산 인부들에게 기독교를 소개하기 위해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신도들의 헌금과 부산 동광성결교회 김득현 집사, 그리고 부산에서 울산으로 왕래하던 팀(TEAM) 선교부...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 속하는 자연 마을. 부영벽산아파트가 입주하면서 형성된 마을이라서 벽산마을이라 부른다. 덕계마을이 위치한 웅상읍(熊上邑) 지역은 인근 삼호리와 명곡리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 곳에 정착민의 취락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고증해 주고 있다. 931년(태조 13) 2월 후백제의 격퇴에 공(功)을 세운 고을 사람 박윤웅(朴允雄)에게 관향(...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병든 사람을 진단하고 치료하거나 질병의 예방과 재활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관 및 시설. 의료 기관은 의료법상 규정된 종합 병원·병원·치과 병원·한방 병원·의원·치과 의원·한의원·조산소 등을 가리킨다. 이 중 종합 병원은 의사 및 치과 의사가 의료를 행하는 곳으로서 입원 환자 80명 이상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추고 진료 과목이 적어도 내과·일반외...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아파트 단지를 건설한 시공사의 회사 명칭을 따서 봉우아파트로 칭하고, 마을 이름도 봉우라 하였다. 봉우마을이 위치한 웅상읍(熊上邑)지역은 인근 삼호리(三湖里)와 명곡리(椧谷里)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곳에 정착민의 취락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고증해 주고 있다. 고려 태조 왕건(王建) 13년인 93...
-
양산신도시는 한국토지공사에서 추진하는 도시 광역화에 따른 생활 행정 실현 및 국토 건설 종합 계획의 구현과 지역 균형 개발의 촉진을 위해 부산권 개발 계획에 포함되는 양산물금지구 택지 개발 사업에 의해 조성되는 신시가지이다. 1994년 12월 개발 계획을 승인받아 조성 사업이 시작되었으나 1997년 외환 위기로 어려움을 겪다가 신도시 내 부산대학교 양산캠퍼스 건설 및 부...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북부마을에서 분동되었기 때문에 북부1마을이라고 한다. 북부1마을이 위치한 옛 웅상읍(熊上邑) 지역은 인근 삼호리(三湖里)와 명곡리(椧谷里)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곳에 정착민의 취락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31년(태조 13) 2월에 후백제 격퇴에 공을 세운 고을 사람 박윤웅(朴允雄)...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북부마을에서 분동되었기 때문에 북부2마을이라고 한다. 북부2마을이 위치한 옛 웅상읍(熊上邑) 지역은 인근 삼호리(三湖里)와 명곡리(椧谷里)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곳에 정착민의 취락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31년(태조 13) 2월에 후백제 격퇴에 공을 세운 고을 사람 박윤...
-
경상남도 양산시 서창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82년 행정구역 개편 때 북쪽에 위치한다 하여 북부마을로 이름을 붙였다. 북부마을이 위치한 웅상읍(熊上邑) 지역은 인근 삼호리(三湖里)와 명곡리(椧谷里)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곳에 정착민의 취락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고증해주고 있다. 고려 931년(태조 13) 2월에 후백제의 격퇴에 공(功)이 있는 고...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사송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사배마을은 금정산 줄기에 자리를 잡고 있어 목축업과 밭농사를 주업으로 하고 있다. 동면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어 사배와 내송을 통틀어 중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사배마을은 풍수지리학적으로 천옥같은 지대에 속한다고 하며, 이런 곳에서는 인물이 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임진왜란 때 충신 백수회, 국방부 장관...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 남쪽에서 부산으로 넘어가던 고개. 예로부터 사배치(沙背峙)에는 쇠가 많이 났으며, 서낭당이 있어 당고개라고도 하였다. 사배치 길가 모퉁이에는 전지바위, 정진암, 지경바위라고 부르던 바위가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무찌르고 이를 기념하기 위하여 그 공적을 새긴 바위이다. 현재는 도로를 확장하면서 대부분이 깨어지고 말았다. 사배치 인근...
-
경상남도 양산 시민들이 삶을 영위하는 공간적 단위. 사회는 일정하게 설정된 영역 내에서 종교·가치관·규범·언어·문화 등을 상호 공유함과 동시에 특정한 제도와 조직의 형성을 통하여 질서를 유지하면서 존속하는 인간 집단을 의미한다. 즉 사회는 문화와 제도 면에서 독창성을 지닌 공통의 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개인의 집합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회는 주로 민족, 국가, 문화, 지역...
-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는 주변 평지보다 높이 솟아 있는 지형. 양산의 산지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의 척량 산맥인 태백산맥의 말단에 해당되며, 이 말단부가 신생대 제3기 중신세부터 일어났던 북북동~남남서 방향의 축을 가진 양산단층·울산단층 등 일련의 단층 운동에 의해 포항 부근에서 두 갈래로 분기된다. 그러므로 남남서 방향으로 달리다가 양산 지방에 와서는 한 단...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동면의 상수원 보호 구역과 자연 공원 지역에서 친환경농법으로 생산되는 특산물. 삽량주는 신라시대 양산의 옛 지명으로 418년(신라 눌지왕 2)에 붙여진 이름이다. 삽량주 쌀은 ‘양산에서 생산되는 쌀’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된 양산 지역 브랜드 쌀이다. 양산 지방자치단체는 매년 쌀의 가격이 하락하여 벼농사 농가의 수입이 감...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물품 매매업. 상업은 넓은 의미로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재화의 사회적 유통 활동을 지칭한다. 따라서 사회적 유통 활동을 촉진·조성하는 금융업, 운송업, 보험업, 창고업 등도 넓은 의미로는 상업에 포함된다. 그러나 좁은 의미에서의 상업은 상인의 영리 목적에 의해서 행하여지는 재화의 매매 활동만을 지...
-
조선 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장. 서병희는 1907년 정미의병 당시 의병운동에 가담하기 시작하여 1909년에는 의병장이 되어 독자적인 부대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경상도 지방에서 일본군 수비대를 습격하고 교전하였으며 군자금을 모집하고 때로는 일본 상인을 사살하는 등 항일 의병 활동을 펼쳤다. 서병희는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한의업에 종사하다가 군대 해산...
-
경상남도 양산시의 용당동·삼호동·명동을 관할하는 행정동. 조선시대에 공물을 관리하는 창고가 있었기 때문에 서창(西倉)이라 한데서 지금의 이름이 유래되었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896년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있는 전통 재래 시장. 『웅상읍지』에 의하면 서창장은 1669년(현종 10) 울산부사 류지립(柳志立)이 건립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서창장이 공식적으로 개설된 것은 1919년 1월 1일이다. 1930년대 4대 웅상면장 김석기가 시전에서 전근대적인 상거래 시장으로 개설하였다. 1950년 10대 웅상면장 이성도가 목조 점포 건물을 건립하여...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석계리에 있는 전통 재래 시장. 석계장은 1964년 1월 1일 개설되었다. 양산과 통도사 사이에 위치하며 지역 특산물인 곡물류·산지 부산물·과일류 외에 향토 음식과 향토 토산물을 구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양산오일장·물금장·신평장 등의 시장과 같은 상권 규모를 형성하였다. 2005년 지상 1층의 일반 철골조 건물 2동이 신축되었다. 주요...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무신. 선극예는 임진왜란 당시 경상좌수사로 재임하다가 1598년(선조 31)에 순절하였다. 임진왜란 때의 전공으로 대호군(大護軍)이 되었으며,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1등에 녹훈되었고 옥배(玉杯)와 녹권(錄券)을 은사 받았다. 울산광역시 언양 지역 작괘천변의 선무원종공신비에 사적이 기록되었고, 울산 지역의 충의사(忠義祠)에...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교회파. 성결교회는 19세기 시작된 중생(重生), 성결(聖潔), 신유(神癒), 재림(再臨) 등 4중 복음을 강조하는 개신교 종파이다. 일본에서 미국 감리교 전도사로 활동하던 나가다 쥬지[中田重治]와 일본 선교를 지원하던 미국인 찰스 이 카우만(Charles E. Cowman)이 1901년 동경 간다[神田]에서 최초의 성결교회...
-
소노마을에 들어서면 두 개의 오래된 사당을 만나게 되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동래정씨 사당인 소노서원이다. 동래정씨가 이곳 소노마을에 정착하게 된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고려 말 조선 초기로 보인다. 동래정씨의 가보를 보면 고려 초기에 그들의 조상이 경주에서 부산 동래로 들어왔고 이들 중 일부가 고려 말에 소노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동래정씨가 소노마...
-
조선 말기부터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양산에서 활동한 주한 호주장로교 선교사. 손안로는 대영성서공회 소속 선교사로서 중국 북부지부에서 5년간 활동하다가, 그의 부인이 천연두와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영국으로 돌아갔다. 1889~1893년 영국장로교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893년 런던노회에서 설교할 수 있는 자격, 곧 강도사가 되었다. 그 후 한국선교사로 추천을 받고 호주...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에 있는 사설 공원 묘원. 솥발산 공원묘원은 1979년 10월 착공하여 1991년 조성이 완료되었다. 솥발산 공원묘원은 양산시 하북면 답곡리 일명 솥발산이라 불리는 정족산(鼎足山)[700m] 북서 사면에 조성되어 있다. 묘원 면적은 399,571㎡이고, 묘지 조성 면적은 299,460㎡이다. 묘지 조성 면적 중 묘기 면적...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숙박업을 영위하기 위한 관련 시설. 우리나라 숙박 시설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나타나 있다. 신라시대 487년(소지왕 9) ‘역관’을 세워 관리들이 지방 순찰 시 숙소로 이용하게 하였고, 통일신라시대 장보고가 세운 ‘신라방’은 당나라를 찾는 신라인의 여관이었다. 이후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역참제를 운영하여 역마를 두고 공무로 왕래하던...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재화와 용역이 거래되는 장소. 일반적으로 시장은 상설 시장과 정기 시장을 말한다. 상설 시장은 일정 지역 내 하나의 건물 안에서 영업자가 항시 물품의 매매 교환을 할 수 있는 시장을 말하며 정기 시장은 일정 구역 안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시장을 말한다. 즉 시장은 상품 교환의 발생 빈도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느냐 연속적으로 매일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
과거 황산강(黃山江)으로 불렸던 낙동강 언저리인 용당은 가야와 신라의 치열한 전투의 현장이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는 경주의 신라와 김해의 가야가 서로 치고 받던 초기의 전쟁터로서 황산진의 입구와 황산하(黃山河)를 기록하고 있다. 황산진이란 물금나루나 용당나루를 포함하는 지역으로, 이후 532년에 신라가 김해의 가야를 완전히 통합할 때까지 서로 밀고 밀리는 치열한 전투...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인근 신명마을에서 분동되어 신명1마을이라 이름하였다. 신명1마을은 원래는 평산리에 속해 있던 지역이었다. 주로 농경지로 구성되어 있던 이곳에 1962년 귀농 정착민이 이주해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신명마을이 형성되었고, 인구 증가로 평산마을에서 분동되었다. 이후 신명마을 남쪽 인접 지역에 동일스위트1차아파트 단지가 조성...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귀농 정착민이 이주하면서 마을 명칭을 ‘신명마을’이라 지었다. 1917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평산마을·내연마을·장흥마을을 병합하여 평산리라 하였다. 그 후 1962년 귀농 정착민이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 신명마을은 울산 방면으로 국도 7호선을 따라가면 된다. 영천초등학교에서 창기마을, 월평삼거리, 덕계 종합...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에 있는 전통 재래 시장. 신평장은 조선시대에 이미 밀양 지역 주민들이 한피기고개(929m)를 넘나들면서 이용할 정도로 넓은 상권이 형성되어 있었다. 1919년 3월 13일 신평장 터에서는 통도사 학림 학생들과 지방 학림 학생들이 주동이 된 독립 만세 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공식적으로 신평장은 1942년에 개설되었다. 2004년...
-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 이름과 관련된 구전 및 문헌자료가 전하지 않아 그 유래는 알 수 없다. 1962년 행정구역 조정에 의하여 소주마을에서 분동되었다. 1997년 신흥마을 내에 대동아파트가 건립되고 이어 1997년 6월부터 입주가 시작되자 인구가 증가하여 1998년 1월 1일 대동마을이 분리되었다. 천성산 아래 조성된 아파트 단지 마을로 지대...
-
조선 중기 임진왜란 때 경상남도 양산 출신으로 큰 공을 세운 무신. 본관은 광주(廣州). 조선 중종 때에 평산부사를 지낸 안우(安宇)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안근(安瑾)이며, 동생 안이명(安以命)과 사촌 안신명(安信命)이 있다. 안시명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에 아버지 안근, 동생 안이명, 그리고 사촌 안신명 등과 함께 창의하여 양산 고을로 넘어오는 왜적을...
-
경상남도 양산시 상북면 대석리에 있는 조선 중기 무신 안이명의 묘. 안이명은 임진왜란 때 양산에서 창의종군(倡義從軍)하다가 양산이 함락되자 밀양 청도, 울산, 대구 등지에서 싸웠는데, 안이명을 백호장군(白虎將軍)이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정유재란 때에는 이충무공 휘하에서 당포만호로 있다가 훈련원정(訓練院正)에 승진되고 다시 가리포 첨사에 올랐으며 선무원종공...
-
박제상의 충절을 기리는 효충사 주변에 대해 양산시는 지난 2003년 유적 정비사업을 추진하려 했다. 지금의 소토리 1173-2에 소재한 효충사를 포함한 1만㎡ 부지에 사당 정비는 물론 전시관, 편의시설, 휴식공간, 문화체험공간 등을 조성하는 역사공원화사업이었다. 하지만 효충마을 일부 주민들의 반대에 문화재 지정으로 인한 재산권이 침해된다면서 박제상 생가가 효충마을에 있었...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1838년(헌종 4) 경상도 감영에서 통도사에 잡역을 혁파해 준다고 발급한 문서. 조선시대 불교계는 정치적인 면에서의 배불(排佛) 정책으로 경제적인 부분을 포함하여 많은 부문에서 어려운 실정이었다. 특히 건국 초기에 조선 왕조에서 사회 경제적 기반을 확보하려고 사원 소유의 전지(田地)와 노비를 압수하면서,...
-
경상남도 양산시 주남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양산 삼호리 고분군은 우불산(于弗山) 남쪽의 남동향으로 돌출된 구릉에 위치한다. 울산 방향 7번 도로의 좌측에 위치한 구릉의 남서쪽 일부로 신원아파트 뒤편 구릉에 해당한다. 구릉 밑에는 서창가구마트가 있다. 고분의 구조는 발굴 조사가 정식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지표 조사에서 확인한 파괴된 유구...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 있던 농경지 개발과 수리 시설을 개선하기 위해 조직된 비영리 경제 단체. 양산은 신라시대 양주도독부 소재지로서 부산과 울산을 비롯한 경상도 일원의 광활한 지역을 관할하면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위상이 막강하였다. 그러나 고려 후기에서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농토는 통도사에서 양산천 변에 이르는 옥토와 늪지대인 양산 메기들, 대저면의 강...
-
경상남도 양산시 중부동에 있는 전통 재래 시장. 예로부터 양산은 부산과 낙동강에 인접하여 육로와 수로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로서 조선 후기부터 보부상들의 활동이 활발한 지역이었다. 이에 따라 양산오일장은 조선 후기에 개설되어 물금장(일명 황산장)과 함께 성행하였다. 당시 다른 장(場)의 경우 장세(場稅)를 매월 관아에 납부하였으나, 양산오일장은 구포장과 함께 장이 열릴...
-
경상남도 양산시 삼호동에 있는 신라시대 포곡식 산성. 건립경위는 알 수가 없지만 우불산성 내부에서 채집되는 토기편과 서남쪽의 주남리 고분군의 존재 등으로 미루어 신라시대에 처음 쌓은 것으로 여겨진다. 성의 폐기 시점은 임진왜란 당시 우불산성을 거점으로 왜군이 일시 주둔했었고, 양산 지역의 옛 기록에 근거하여 살펴보면 임진왜란 때였을 것이다. 그 후 전란 속에서 양산 지역...
-
경상남도 양산시 신기동에 있는 양산시 관할 우편·체신·금융 기관. 우체국은 국장의 지위에 따라서 4급(서기관국), 5급(사무관국), 6급(주사국), 7급(주사보국)으로 분류되거나 기능에 따라서 우정청, 우편집중국, 집배국, 무집배국으로도 분류된다. 또한 설립 주체에 따라 일반우체국, 별정우체국, 우편취급소 등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4급우체국과 5급우체국은 총괄국으로서 기...
-
이종관(77세, 전 양산문화원장)씨는 일본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기까지 일본에서 자랐다. 꽤나 큰 사업을 하던 아버지는 조총련의 핍박이 심해지자 하루아침에 사업을 정리하기가 쉽지 않아 우선 두 아들만이라도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하고자 고향 양산으로 돌려보냈다. 귀국 후 교원양성소에서 교원자격증을 딴 뒤 울산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61년에 고 안종석 씨가 향교...
-
경상남도 양산시에 있는 여덟 곳의 향토 명승지. 팔경(八景)은 향토 문화의 산물이고 향토의 경승지이다. 향토라 함은 지역 주민들이 산, 산봉우리, 강, 바다, 섬, 계곡, 절벽, 폭포, 계곡, 마을 뒷동산, 주위 산지의 기암괴석 등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면서 의미를 부여하는 정든 땅이자 고향의 맛과 멋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향토 경승지는 자연 관광 자원을 중심으로 형...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대리에 있는 스키장. 에덴 밸리 스키장은 영남의 알프스로 불리는 가지산, 천성산, 신불산 줄기 끝에 세워진 국내 최남단에 있는 스키장이자 영남 지방 최초의 스키장이다. 영남 지역의 겨울 레저 시설로서 2007년 12월 19일 개장하였다. 에덴 밸리 스키장의 면적은 22만 6420㎡이며, 총 7개의 슬로프[초급 2개, 중급 3개...
-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경상남도 양산시는 산과 들이 좋고 문화 유적이 많으며, 고대로부터 불교 포교지로서 그 명성이 높았고, 훌륭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었던 곳이다. 한반도의 동남부에 위치하며, 북으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쪽은 낙동강을 끼고 밀양시와 김해시, 동쪽과 남쪽으로는 부산광역시 기장군과 금정구에 각각 접하고 있다. 경상남...
-
고려시대에 경상남도 양산 지역을 관할하던 10도 중의 하나. 영남이란 죽령의 남쪽이라는 뜻으로 언양·울산·양산·동래·기장 등의 지역을 이르는 말이다. 983년(성종 2)에 실시한 지방제도로 지방에 12목인 광주(廣州)·양주(楊州)·충주(忠州)·청주(淸州)·공주(公州)·진주(晋州)·상주(尙州)·전주(全州)·나주(羅州)·승주(昇州)·황주(黃州)·해주(海州)를 두고 전국을 1...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여락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비가올 ‘령’자와 무당 ‘자’자를 합친 ‘신령령(靈)’과 마을 앞에 내가 흐르고 있어 ‘내천(川)’을 합하여 ‘영천’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마을은 삼한시대 변진(弁辰)의 거칠산국(居柒山國)의 갑화양곡(甲火良谷), 즉 지금의 동래에 속했다가 97년 신라 석탈해왕 때 정복되어 거칠산군으로 변경되...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재료·기교·양식 따위로 아름다움을 표현하려는 인간의 활동 및 결과물. 양산의 전통 문화는 불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특히 양산 지역의 전통 문화를 대표하는 통도사에서는 전통 춤 예술을 계승, 발전시켜 무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된 「양산사찰학춤」 또는 「양산학춤」을 완성하는 데 크나큰 공헌을 하였다. 이외에도 통도사의 범패, 「연등바라춤...
-
경상남도 양산시 호계동에 있는 장수황씨의 재실. 재실 이름을 오린재라고 한 이유는 후손들의 기록에 잘 드러난다. “장수황씨의 조상 중에 고려 후기, 조선 전기에 황희(黃喜)가 있었으니 곧 방촌 선생이다. 선생은 문장이 세상에 으뜸이요 정략의 도와 청렴 결백한 자질은 여항의 필부도 모르는 사람이 없었는데, 아흔의 노령에 이르도록 세종대왕을 보필하여 그 치적의 많음은 지필로...
-
현재 지산마을에는 70가구 정도가 모여 살며, 그 중 20가구 정도는 도시에서 외지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평산마을은 통계상으로 80여 세대이나 실제로는 40세대에 불과하다. 이는 통도사가 평산 소속으로 되어 있어서, 통도사 스님들이 개인이 하나의 세대주로 되기 때문에 세대 수가 많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마을을 구성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노년층들이다. 젊은 층들은 거의 남아 있지...
-
일제강점기에 경상남도 양산에서 포교 활동을 했던 독일 출신의 호주 선교사. 독일 위템베르크 출신인 왕길지는 독일의 경건주의적 환경에서 성장하였고, 1892년 6월 6일 바젤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인도 푸나 지방으로 파송되어 6년간 일했다. 그곳에서 일하는 동안 감리교선교부로 이적한 뒤 테일러고등학교 교장으로 봉사하였다. 푸나에서 호주 출신의 여성이자 호주감리교회 목사의 딸...
-
경상남도 양산시 덕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주민들의 구전에 따르면 인근 매곡마을이 위치한 곳이 내산이므로 그 산 밖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외산마을이라 하였다 한다. 마을에 사람이 거주한 시기에 대해서는 관련 구전이나 문헌 자료가 전하지 않아 알 수 없다. 다만, 매곡마을이 위치한 옛 웅상읍 지역에 인근 삼호리와 명곡리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에 이미 이곳에 취...
-
경상남도 양산시 서창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17년 6월 ‘면제 및 동시행규칙’이 공포됨에 따라 동년 10월 외흠마을은 웅상면 명곡리에 편입되었다. 1991년 웅상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웅상읍 명곡리에 속하게 되었다.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평산동·덕계동·소주동·서창동의 4개 동으로 분동됨에 따라 외흠마을은 서창동에 속하게 되었다. 외흠마을은 동쪽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 용당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1917년 편들, 당촌, 죽전, 생동마을을 병합하여 용당리라 하였다. 이는 현재 우불산(于佛山)이 당(堂)갓으로 불린 것과 용당마을 위쪽에 위치한 용강단소(龍岡壇所)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여진다. 용강단소는 용당마을에서 탑골저수지로 가는 길목에 위치하고 있다. 고려 태조가 후삼국을 통일할 당시 공이 많은 박윤웅(朴允雄...
-
위령제를 지내는 삼국시대나 기우제를 지내는 조선시대에도 각각 그 제사의 중요도가 인정되어 국가에서는 제문을 내려 백성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현재 전하는 문헌에 보이는 제문의 대표적인 것이 『세종실록』에 있는 것이다. 제문은 다음과 같다.(『세종실록』 권28, 세종 7년 6월 25일 계해)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 되고,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라, 심고 가꾸는 일은 정치의 먼저...
-
명동마을 앞을 유유히 흐르는 하천은 회야강이다. 회야강은 우리나라의 하천 중에 북쪽으로 흐르는 몇 안 되는 강이다. 물길은 사람의 마음을 잇는다 하였다. 이 강이 울산으로 유입되기 때문에 명동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울산 사람들과 같은 물을 먹는다는 동질적인 의식을 내재하도록 하는 데에 바탕이 되고 있었다. 이 강은 웅상읍의 주진리 원효산에서 출발하여 덕계천과 합류되어 울산...
-
신라시대 경상남도 양산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 원효의 집은 본래 율곡(栗谷)의 서남쪽에 있었다고 전하나, 어머니가 원효를 임신하고 이 골짜기를 지나다가 갑자기 산기가 있어 집에 들어갈 사이도 없이 밤나무 밑에서 출산을 하였다. 이 나무를 사라수(裟羅樹)라 불렀다고 전하며, 또 밤이 이상하게 커서 이를 사라밤[裟羅栗]이라고도 불렀다고 전한다. 지금도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
경상남도 양산시 유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由山이라는 이름은 과거 윤산(輪山)에서 유래가 되었다고 전한다. 이 윤산은 옛 유산역 동쪽에 있는 둥근 반월산(半月山)으로 가리키는 말인데, 흔히 윤달의 전달을 평달 혹은 온달, 윤달을 반달이라고 한다. 따라서 윤산은 반월산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생긴 이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윤산의 본래 뜻이 ‘반달’이다 보니, 부정적...
-
고(故) 안종석 선생은 양산 향토문화 연구의 거목이었다. 성균관 부관장을 역임한 안종석가 1984년에 불의의 사고로 타계한 뒤 미망인 김순덕에 의해 발간된 『석헌집(石軒集)』(1992)에 수록된 그의 약력을 간추려 적으면 다음과 같다. 고 안종석 선생은 광복 후 박제상을 기리는 사당을 거금의 사비로 세움으로써 민족정신을 바로잡고자 했다. 1949년에는 협소한 소토초등학교를 사비를...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양산(梁山). 이징석의 4대손이다. 처는 위원군수(渭源郡守) 김효량(金孝亮)의 딸이다. 이몽란은 임진왜란 전 왜구의 침입을 미리 탐지하고 밀양·청도 등지의 선비들과 함께 왜구 침략에 나름대로 대비하였다. 실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안근·이수생·최흥국 등과 참여하여 양산·울산·경주·팔공산 등지에서 싸우고 화왕산 전투에도 참전하여...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이원희(李元熙)는 1914년 아버지 이의문(李義文)과 어머니 류복금(柳福今)의 장남으로 경상남도 양산시 다방동에서 태어났다. 1929년 양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부산공립제2상업학교에 입학하였다. 1936년 서울의 대동상업학교(현 대동정보산업고등학교)에 편입하여 졸업한 후 1939년 조복조(趙福助)와 결혼하여 5남 1녀를 두...
-
경상남도 양산시 지역에서 자연 현상에 기인하여 생활 환경이 급작스럽게 변하거나 그 영향으로 인간의 생명과 재산에 피해를 주는 천재. 자연 재해를 일으키는 기상 현상은 대부분 이상 기상 현상이다. 자연재해 가운데 호우로 인한 것이 재해의 으뜸을 차지하고, 그 다음으로 폭풍·태풍·폭설·가뭄의 순이다. 1904년부터 1984년까지 80년 동안 집계된 중요 재해를 보면 호우 재...
-
경상남도 양산시 주민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지형·지질·기후·자연재해 등의 자연지리적 환경. 양산시의 위도 및 경도상의 위치는 동단이 동경 129° 13′, 서단은 동경 128° 52′, 남단은 북위 35° 16′, 북단은 북위 35° 32′이다. 수리적 위치에서도 알 수 있듯이, 양산은 중위도에다가 유라시아 대륙의 동안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기후대상 온대계...
-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아파트를 시공한 회사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동·옻밭골·소주·신기·소남을 병합하여 소주리라 하였다. 1917년 10월 10일부터 웅상면 소주리로 속해 있다가, 1996년 3월 1일 웅상면이 인구 증가로 웅상읍으로 승격되고,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동으로 분동됨에 따라 소주...
-
경상남도 양산시 소주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아파트를 시공한 회사의 이름을 따서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백동·옻밭골·소주·신기·소남리를 병합하여 소주리라 하였다. 1917년 10월 10일 웅상면 소주리로 속해 있다가, 1996년 3월 1일 웅상면이 웅상읍으로 승격되고, 2007년 4월 1일 웅상읍이 동으로 분동됨에 따라 소주동의 장백2마을...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는 장선마을과 태봉마을의 두 자연 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이 태봉이라는 말은 임금의 태가 묻혀 있는 봉우리를 뜻하므로 명당 자리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예로부터 미곡을 생산하고, 약초 채취로 부업을 하며 영세목축업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으나, 최근에는 과학적 영농 방식을...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전석준(全錫準)은 1919년 11월 백산 안희제의 주도하에 발족된 부산 기미육영회 평의원 감사역 등으로 활약하면서 후진 양성에 헌신하고 있었다. 이후 1920년 7월 15일 양산청년회 창립대회에서 의장을 맡아 회의를 주관하여 김철수를 회장으로 선출하는 등 양산청년회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1921년 4월 서울 종로 중앙기독교회관...
-
1392년(태조 1)부터 1910년(순종 4)까지 경상남도 양산의 역사. 양산시는 1413년(태종 13)에 양산군(梁山郡)으로 개칭되었다. 임진왜란 이후에 동래부(東萊府)에 편입되었다가 1603년(선조 36)에 복구되었다. 1897년 전국 행정구역 개편에 의하여 읍내(邑內)·동면(東面)·상서(上西)·하서(下西)·상북(上北)·하북(下北)·구포(龜浦)·대저(大猪)의 8개 면...
-
양산읍성은 신라시대에 만들어져서 여러 번의 재건축으로 모양은 조금씩 바뀌었지만 그 정신은 그대로 이어져왔다. 이 읍성이 본격적으로 증축되었던 것은 조선시대 문종 원년(1451)과 성종 24년(1492)에 증축되기에 이르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에는 읍성의 규모도 함께 기록되어 있는데, 읍성은 석축이며 둘레가 3710척, 높이고 13척, 성 안에 우물 6개와 못 1...
-
임진왜란의 격전지 가운데 하나가 낙동강 변에 있는 양산 일대이다. 왜군이 동래성을 함락하고 영남로를 따라 서울로 진격하기 위하여 거쳐야 할 곳이 바로 이곳 양산 일대였다. 조선의 밀양부사 박진은 왜군의 침입을 대비하여 삼랑진 부근에 방어선을 구축하였다. 이 지역에는 작원(鵲院)이 있었는데 이곳은 낙동강에서 육지로 올라오는 관문이었다. 물론 육지에서 낙동강을 따라 나가기...
-
경상남도 양산시 주남동에 있는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서재. 1910년 경술국치 후 양산·울산·부산 등지에서 거주하는 경주이씨 용재파 후손들이 선조를 기리고 학문을 강론하는 정사를 창건하기로 하고, 사림들이 회의를 거쳐 1920년에 주강정사(周岡精舍)라 현액하였다. 또한 고려시대에 벼슬을 한 익재 이제현과 조선시대에 문과와 무과에서 급제한 용재 이종준을 추모하는 단소(壇所)...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본래 울산군 웅상면 지역으로 주남(周南)이라 하였다. 삼한시대에는 우시산국(于尸山國)이었는데 신라시대에는 우풍현(虞風縣)으로, 고려시대에는 흥려부(興麗府)라고 하였다가 다시 울산군(蔚山郡)으로 개칭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울산군 서면으로 했다가 1896년 웅촌면을 웅하면과 웅상면으로 분할할 때 울산군 웅상면 덕계리라 하고, 1906년 양산군...
-
경상남도 양산시 주진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마을의 지형이 배[船] 형국이고, 옛날에 해일이 일면 나룻배를 매어 놓았다하여 처음에는 주진(舟津)이라고 표기하였다고 한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웃주진·아랫주진·굼바우를 병합하여 주진동[리]이라 하였다. 1991년 11월 20일 웅상면이 웅상읍으로 승격되었고, 1996년 3월 1일에는 양산군이 양산시로 승격되면서...
-
양산 소토리 효충마을은 신라의 충신 관설당(觀雪堂) 박제상(朴堤上)이 태어난 고향으로서 그 분에 관한 설화와 유적지가 찾아진다. 박제상이 만들었던 정자인 징심헌과 그의 저서인 『징심록(澄心錄)』이 그것이다. 먼저 징심헌은 현재 남아 있지 않으므로 전해오던 이야기와 문헌에 의해서 알아볼 수밖에 없다. 징심헌이 세워진 시기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박제상이...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가촌리에서 모를 다 쪄갈 무렵 부르는 노동요. 양산 지역의 모찌는 소리는 교창식의 긴 모찌는 소리와 잦은 모찌는 소리로 나눌 수 있는데, 잦은 모찌는 소리는 조루자 계열과 밀치라 계열이 대종을 이룬다. 잦은 모찌는 소리는 긴 모찌는 소리를 부르며 모를 쪄 나가다가 좀 지겨운 감이 있거나, 일을 더 재촉하여 마쳐야 할 경우, 또는 모를 다...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속하는 자연 마을. 천성마을이 위치한 웅상읍(熊上邑)지역은 인근 삼호리(三湖里)와 명곡리(椧谷里) 고분군 등을 고려할 때, 청동기시대부터 이미 정착민의 취락촌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931년(태조13) 2월에 후백제의 격퇴에 공(功)을 세운 고을사람 박윤웅(朴允雄)에게 관향(貫鄕)을 하사(下賜)하면서 양산시(梁山市) 웅상읍(...
-
조선 중기 경상남도 양산 출신의 의병. 본관은 경주(慶州). 호는 쌍벽당(雙碧堂). 고려의 문신 문정공 최승로(崔承老)의 후손이다. 최기는 양산품관 시절 울산의 서생포, 기장의 두모포 및 임랑포 왜성에 주둔하던 일본군의 정세를 탐지하여 보고한 바 있다. 그리고 조카 최흥국(崔興國)과 함께 흥해(興海)에서 양산으로 이주해 살았는데, 임진왜란 당시 최흥국과 더불어 의병을 일...
-
경상남도 양산시에서 가축을 사육하거나 그 생산물을 가공하는 산업 활동. 축산업은 고기소[肉牛]·젖소·말·돼지·산양·면양·토끼 등을 사육하여 고기·털·가죽 그리고 축력(畜力)을 생산하는 업종을 의미한다. 좁은 뜻의 축산업은 축산물을 생산하기까지를 말하고, 넓은 의미의 축산업은 생산물은 물론 축산물을 가공 처리하여 유통할 때까지의 전 과정을 말한다. 현재 경상남도 양산시의...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취서산에 있는 사당. 취서사는 김유신(金庾信)의 조부인 김무력(金武力)과 아버지인 김서현(金舒玄)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취서사의 내력을 알 수 있는 「취서사창건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취서사는 양산시 하북면 취서산(鷲棲山) 기슭에에 있다. 가락국 왕자 신라 각간 휘 무력공(武力公)의 무덤은 동원(東原)에...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서 전해 내려오는 화투 뒤풀이 노래. 1991년에 이소라가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서 김말수(여, 당시 74세)의 창을 채록하였다. 김말수 창자는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에서 출생하여, 17세에 현재의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 지역으로 출가하였다. 한 소절을 메기면 ‘치라(징,랑) 칭칭나네’로 받으면서 소리가 진행된다. 전반부는...
-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있는 1767년에 두훈 등이 제작한 석가여래 괘불. 통도사에 전해 내려오고 있는 두 점의 괘불 가운데 하나인 「통도사 석가여래괘불탱(通度寺 釋迦如來掛佛幀)」은 1767년에 제작되었다. 괘불은 불화 중에 가장 규모가 큰 그림으로 야외에서 법회를 열 때 걸어서 예배에 사용하는 의식용 불화이다. 평소에는 괘불함에 말...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에 있는 주거지·환호·무덤으로 구성된 취락 유적. 청동기인들은 하천과 평야가 내려다보이는 구릉 위에 터전을 잡고 농경과 목축을 하였다. 양산 지역에서는 생활용의 주거지와 방어 시설의 환호를 설치하여 취락 생활을 하였다. 평산리 유적은 해발 811.5m의 천성산(千聖山) 자락이 동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평탄 대지에 위치한다. 평산동의 북동쪽...
-
신라시대 양주에 속했던 옛 지명. 하곡현은 원래 굴아화촌이었는데, 후에 신라가 점령한 후에 굴아화현으로 바꾸었다. 이 지역은 신라 경주로 들어가는 동남쪽 관문의 역할을 하였기 때문에 외적으로부터 경주를 보호해야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신라가 전국을 9주로 재편하였을 때 굴아화현이 하곡현(河曲縣)으로 바뀌어 양주에 속했다. 하곡현은 태화강을 끼고 있어 붙인...
-
이예를 시조로 하고 이직강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학성(鶴城)은 울산(蔚山)의 옛 이름이다. 학성이씨의 시조는 세종 때 대마도 정벌에 공을 세워 절충장군용양위사상호군(折衝將軍龍驤衛司上護軍)에 올라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와 세자좌빈객(世子左賓客)을 역임한 이예(李藝)이다. 이예의 선대는 고려조의 명문으로 조선이 건국되자 충절을 지켜 울산...
-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 천성산에서 발원하여 덕계천과 합류하여 회야댐으로 흘러드는 강.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태어난 박이 밤에 이 강으로 떠돌아왔다는 설이 있고,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무찔러 크게 이긴 곳이기도 하다. 토박이 땅 이름으로는 ‘돌배미강’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일승강(一勝江)’이라고도 한다. 곡류천을 명명할 때에는 곡(曲)·회(回)·구비(仇非)·도...
-
박제상(朴堤上)은 4세기 말 5세기 초반에 활동한 신라 사람으로, 신라의 변경 지대인 양산 지방의 관리(혹은 세력가)로 있었다. 당시 신라는 고구려·왜·백제로부터 전방위 압박을 받고 있었고, 위기를 탈출하기 위해 왕자 두 명을 고구려와 왜에 각각 인질로 보내야 할 만큼 절박한 상황이었다. 두 아우를 구하고자 하는 눌지마립간의 명을 받들어 박제상은 목숨을 걸고 적국에 들어...
-
박윤웅을 시조로 하고 박유경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남도 양산시 세거 성씨. 흥려(興麗)는 울산의 옛 지명으로써 한자 뜻대로 고려를 일어나게 한 곳이라는 뜻이다. 흥려박씨 현재 명칭은 울산박씨(蔚山朴氏)이다. 시조 박윤웅(朴允雄)은 신라 경명왕의 막내아들인 국상공(國相公) 박교순(朴交舜)의 7세손이다. 울산박씨는 시조인 장무공(莊武公) 박윤웅에서 시작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