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리
-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이 흐르고 영남 알프스가 있는 양산, 그곳에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을 드라이브 코스가 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남양산IC에서 양산 시내를 거쳐 물금을 지나 원동역에 이르는 지방도 1022호선을 따라 들어가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마치 낙동강의 물길을 따라 달리는 듯 차창 밖으로 낙동강이 흘러가고, 지나가는 차 뒤로는 오봉산과 토곡산이 병...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가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가산마을은 삼한시대부터 사람이 산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나 정확한 근거는 없다. 본격적으로 주거가 형성된 시기는 지금부터 800여 년 전인 고려시대 말에서 조선시대 초기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복세부락 앞의 들과 초지는 약 500년 전에는 낙동강 유역으로 갈대와 모래밭이었다. 여기에도 1500년대 초부터 195...
-
이곳 용당은 낙동강을 경계로 김해와 접하고, 천태산을 사이에 두고 밀양 삼랑진과 경계한다. 마을의 사방이 강과 산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다른 마을로의 이동이 쉽지 않은 지역이다. 그렇기 때문에 행정적으로는 양산이지만 지리적으로 가까운 김해나 삼랑진 또는 구포로의 이동이 쉬웠다고 한다. 물론 대부분 배를 타고 수로를 이용하여 다녔기 때문에 그들의 생활에서 육로보다는 수로가 대단히...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속하는 동중마을은 범어택지지구에 조성되어 있는 마을이다. 동중이란 마을의 이름은 범어리에 속하는 동리와 중리를 1941년 통합하여 동리의 ‘동’ 자와 중리의 ‘중’ 자를 합하여 ‘동중’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동중마을에 제일 먼저 입촌한 성씨는 영동김씨·분성...
-
용당들은 이곳 마을 사람들의 삶의 기반이다. 1,322,320㎡에 달하는 넓은 용당들에는 여러 가지 농산물이 자라나고 있다. 보통 농산물이라고 하면 벼나 보리를 연상하지만 용당들에서는 그러한 것을 거의 볼 수 없다. 이곳이 여름이면 홍수로 많은 피해를 입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마을의 속담 가운데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것이 “시집가기 전까지 쌀 서 말을 먹지 못한다....
-
내리쬐는 햇빛 아래서 검게 그을린 얼굴에 맺힌 땀을 닦아가며 오늘도 용당 사람들은 자신이 키우는 작물에 애정을 쏟고 있다. 그들에게 딸기나 수박은 단순한 과일이 아닌 자식이요, 작품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한낮의 더운 햇빛도 견뎌가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아마 홍수가 아닐까 생각된다. 모종부터 시작해서 거름 주고 물주고 심지어...
-
경상남도 양산시 지역에서 자연발생적으로 발생하여 전해오는 민중의 노래. 민요의 분류에서는 하나의 기준만 있을 수 없으며, 일정한 기능을 가진 기능요와 그 기능이 일정치 않은 비기능요의 두 가지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양산 민요를 기능의 성격에 따라 분류하면 노동요·의식요·유희요로 나눌 수 있다. 노동요는 노동을 하면서 노동의 박자와 맞게 부르는 노래이다. 노동의 종류에...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에 속하는 법정리. 마을 앞 ‘메기들’은 신라시대로부터 1922년 양산천 개수 공사가 있기까지 긴 세월동안 낙동강의 하구이자 양산천의 하류 저습지로 실핏줄 같은 수로가 점점이 이어진 늪지 갈대밭이었다. 넓은 늪지 갈대밭 속에는 메기, 송어, 자라 등 보이는 곳마다 물고기 천지를 이루고 있었으리라 여겨진다. 그래서 마을 이름을 범어리라 하였을 것으로...
-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 법기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조상의 얼인 의(義)를 근본으로 여긴다는 뜻에서 생겨난 이름이다. 본법마을에 최초의 주민들이 주거를 시작한 시기를 대략 5세기경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인근에 위치한 법기리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 및 고분의 축조 형태에서 추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후 주거 상황 및 마을의 명칭에 대한 구전이나 문헌적 자료는...
-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서남은 경상남도 양산시 물금읍 범어리 지역 서쪽에 있는 행정리로, 기존에 불려오던 서리(西里)의 ‘서(西)’ 자와 남정리(南亭里)의 ‘남(南)’ 자를 합하여 서남(西南)으로 부르게 되었다. 범어리의 형성 시기는 삼국시대 초로, 서남마을 뒤 죽전등(竹田嶝) 아래를 중심으로 4~5세기부터 서남마을에 영...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선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원래는 북으로 장선리, 남으로는 대리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마을이라고 하여 중리(中里)라고 하였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전 마을이 소실되었다. 그 이후, 밀양 등지에서 이주해온 주민들이 다시 마을을 세웠고, 이것이 선리가 되었다고 한다. 선리(善里)라는 지명은 인근 장선리(長善里)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리 마...
-
원동리 마을의 가구 수는 당곡이 60여 호, 중리가 40여 호이다. 여느 농촌마을이 그렇듯이 면적에 비하여 인구는 계속 감소되고 있으며, 노령인구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이렇게 인구가 감소되는 이유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마을이 옛날에는 60가구 정도 됐는데 40호 정도로 팍 줄었다 아이가. 들(농사짓는 곳)에도 집이 있었는데 지금은 다 하우스밖에 없는 기라....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법정동. 경상남도 양산시 강서동의 중북부에 위치한 법정동으로서 양산의 도시화 및 산업화와 더불어 성장한 어곡지방산업단지가 소재한 공단 지역이고 양산시 지역 경제 개발에 일익을 담당하는 근거지이다. 어곡 또는 어실이라 하였다. 어곡(魚谷)은 물고기가 많은 골짜기란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속칭으로 임금이 거처한 곳이라는...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화제리에 속하는 자연 마을. 원동면 화제리 바깥쪽에 위치하여 외화(外花)라고 부른다. 1800년 초 화정 도덕골에 밀양손씨(密陽孫氏)가 입촌하였다 하고, 그보다 먼저 수산물에는 밀양박씨(密陽朴氏), 중리에는 안동김씨(安東金氏) 등이 들어와 살면서 마을을 형성하였다고 전해온다. 일제강점기에는 외화마을 하천 부지에 둑을 쌓아 갈목농장과 가등...
-
사면은 첩첩이 산들로 둘러싸여 있고, 열려있는 곳이라고는 동그란 하늘밖에 없는 강원도 양구군 양구면 운진리에서 태어난 박상권 씨는 1973년 소양댐이 건설되면서 그야말로 먹고 살기 위해 대처로 나왔다. 고향 양구를 떠나 처음 취업한 곳이 청평에 있는 제지공장이었다. 성실하게 일한 것이 사장의 눈에 띄어 1974년에 같은 계열의 이곳 ‘국일농원’으로 차출되어 오게 되었다. ▶ 농사를...
-
경상남도 양산시에 속하는 행정구역. 경상남도 양산시 서쪽 끝에 위치하고 있으며, 원동면 소재지는 원리에 있다. 면조(面鳥)는 꿩, 면목(面木)은 느티나무, 면화(面花)는 배롱나무꽃(백일홍)이다. 삼국시대 용당리에는 신라에서 가락국으로 통하는 수로인 가야진나루가 있었다. 신라와 가락국이 밀양군과 양산군을 거쳐 가는 경계 지점에 작원관원문(鵲院關院門)이 있어 육로...
-
옛날 용당리에는 논농사를 할 수 있는 지리적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아 마을사람들의 삶이 대단히 곤궁했었다. ‘처녀가 시집갈 때까지 쌀 서 말을 먹지 못한다.’라는 말은 바로 이러한 데서 나온 것이었다. 예전 이곳 용당리에는 논농사가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이곳이 홍수로 물난리가 많이 일어나는 곳이어서 예전부터 논농사를 피하고 다른 농작물을 심었기 때문이었다. 본래 용당리는...
-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에 속하는 법정리. 화제리 외화(外花)마을 입구에는 약 1,000평 정도의 소나무 군락지가 있었다. 이 형상이 마치 매화의 수꽃 형상을 하고, 맞은편의 명언(明彦)마을 뒤편 연화봉은 매화의 암꽃 형상을 하고 있어, 이 두 형상의 중간에 소하천이 흐르는 지형을 꽃으로 형상화하여 사람이 꽃을 건넌다는 뜻으로 ‘화제(花濟)’라 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