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이자 학자인 신천익이 저술한 시문집. 신천익(愼天翊)[1592~1661]의 본관은 거창, 자는 백거(伯擧), 호는 소은(素隱)이다. 1615년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를 거쳐 이조 참의(吏曺參議)가 되었으나 광해군(光海君)의 정치에 실망하여 전라남도 영암으로 낙향한 후 이우당(二友堂)에서 학문에 전념하였다. 1691년에 간행된 『소은 유고(素隱遺稿)』는...
-
영암에서 활동한 조선 후기 문신이자 학자인 조행립의 시문집. 조행립(曺行立)[1580~1663]의 본관은 창녕(昌寧)이며, 자는 백원(百源), 호는 태호(兌湖)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과 광해군(光海君)의 재위로 인해 정국이 혼란하자 회의를 느끼고 영암으로 낙향하였다. 1623년의 인조반정(仁祖反正) 이후에 잠깐 출사하였으나 이후 다시 영암으로 낙향하였다. 영암의 소화산(小華山)[...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인.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이헌(而獻), 호는 시서 거사(市西居士) 또는 지서자(之西子)이다. 아버지는 상호군(上護軍) 김부성(金富成)이며, 아들은 김시길(金時길[日+吉]), 김시간(金時暕)이다. 김선(金璇)[1568~1642]은 1606년(선조 39) 사마시에 합격하여 정계에 나아갔으나, 광해군의 정치에 실망하여 낙향한 뒤 지금의 영암군 덕진면...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도갑리에 있는 사찰. 도갑사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신라 말 도선 국사(道詵國師)가 머물렀다고 하는 연기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11세기 후반에 사세가 확대되기 시작하여 조선 세조 대에 수미 왕사(守眉王師)에 의해 크게 중창되었다. 1977년에 화재로 대웅보전이 소실된 것을 계기로 전반적인 발굴·보수 작업이 2013년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엄길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조선 후기 문신 박동열(朴東說)[1564~1622]의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열지(悅之), 호는 남곽(南郭)과 봉촌(鳳村)이다. 박조년(朴兆年)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사간 박소(朴紹)이고, 아버지는 대사헌 박응복(朴應福)이며, 어머니는 증 좌승지 임구령(林九齡)의 딸이다. 동생이 박동량(朴東亮)이다. 1608년(광해군...
-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시조로 하고 박동열(朴東說)을 입향조로 하는 전라남도 영암군의 세거 성씨. 반남 박씨는 영암군에 세거하는 성씨 중의 하나이며, 박응주를 중시조로 삼고 있다. 반남 박씨 현조(顯祖)로 황해도 관찰사를 역임한 남곽공 박동열(朴東說)[1564~1622]의 묘소가 서호면 엄길리에 있다. 반남은 지금의 전라남도 나주시 반남면의 옛 지명이다. 중시조 박응주는 반남에서 세...
-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이천(利川) 혹은 남평(南平), 자는 경립(景立), 호는 송와(松窩)이다. 판윤(判尹)을 지낸 서숙명(徐叔明)의 증손자이며, 아버지는 서홍필(徐弘弼)이다. 서희신(徐希信)[1542~?]은 1567년(선조 1)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41세 때인 1582년(선조 15)에 임오(壬午) 식년시(式年試) 병과(丙科) 16위로 문과에 급제하였다. 벼슬은 박...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금강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학자 김선의 영정을 모셔놓은 사당. 시서 영당(市西 影堂)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시서(市西) 김선(金璇)[1568~1642]의 영정을 봉안한 영당이다. 김선은 1605년(선조 38) 사마시에 급제하였다. 하지만 광해군의 어지러운 정치를 한탄하며 통문을 돌리고 이이첨을 탄핵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자 관료로 진출하지 않은 채 고향으로...
-
조선 후기 영암 출신의 문신. 본관은 거창(居昌), 자는 백거(伯擧), 호는 소은(素隱)이다. 참의 신희남(愼喜男)[1517~1591]의 증손자로, 할아버지는 신여경(愼餘慶)[1538~1592], 아버지는 신인(愼諲)이다. 어머니는 이용(李溶)의 딸이다. 신천익(愼天翊)[1592~1661]은 1612년(광해군 4)에 문과에 급제한 뒤 1615년(광해군 7) 홍문관 정자(弘文館正字)...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망호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사. 영암 부춘정(靈巖 富春亭)은 청암 강한종(姜漢宗)[1549~1622]이 교류 및 학문 연마를 위해 지은 정사(精舍)이다. 강한종은 무과에 급제한 후 평양 판관 겸 병마절제사를 지내고 임진왜란에도 참전하였다. 광해군 때에 난정에 상소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자 귀향하여 지금의 위치에 부춘정을 마련하고 학문의 장으로 삼았다. 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