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박래효(朴來孝)는 향리(鄕吏) 박재신(朴在新)의 아들로, 아버지가 병이 들자 때 아닌 물오리와 토끼 고기를 원하기에 백방으로 찾아 구해 드렸으며, 남제(南齊)의 효자 유검루(庾黔婁)처럼 병의 깊이를 알기 위해 변(便)을 맛보았다. 아버지의 상처에서 입으로 고름을 빨아내며 하늘에 빌기를 “저를 대신 아프게 해주옵소서”라고 하였더니,...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신이행(申以涬)은 아주 신씨(鵝洲申氏)로 회당(晦堂) 신원록(申元祿)의 5세손이다. 신이행은 효성이 지극하여 나이 겨우 9세에 혼정신성(昏精晨省)[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안부를 살피는 것]과 공양(供養)의 절도를 배우지 않고도 능하였다. 성장하여 어머니가 병이 들자 옷에는 띠를 풀지 않고 입에는 이를 드러내지 않았으며, 남...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정억(鄭嶷)의 본관은 영일(迎日). 고조는 장수도 찰방(長水道察訪) 정이휘(鄭以揮)이며, 증조는 직장(直長) 정차순(鄭次諄), 조부는 참봉(參奉) 정호(鄭灝)이다. 아버지 어모장군(禦侮將軍) 정경희(鄭景禧)이며, 어머니는 고령 김씨(高靈 金氏)로 김명견(金命堅)의 딸이다. 아우 정잠(鄭岑)도 지극한 효성으로 정려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