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씨
-
경상북도 영천시 화남면에 속하는 법정리. 대천리(大川里)는 초기에 정씨(丁氏) 조상이 중국 대천리에서 왔기 때문에 ‘대리(大里)’라 하였고, 또한 물이 맑고 차가웠기에 한내·생천(生川)이라고도 불렀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대리의 ‘대(大)’자와 생천의 ‘천(川)’을 따서 대천리라 칭하게 되었다. 대리는 정광성(丁光成)이란 선비가 16세기에...
-
정회문(鄭繪文)을 시조로 하고 정재달(鄭載達)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영천시의 세거 성씨. 서기 32년인 신라 유리왕(儒理王) 9년에 6부촌(六部村)의 진지촌장(珍支村長) 지백호(智伯虎)가 정씨(鄭氏)로 사성(賜姓)을 받아 경주에서 살게 되니 본관이 경주였는데, 그 뒤 동래(東萊)로 분적(分籍)되었다고 한다. 동래 정씨(東萊 鄭氏) 기세조(起世祖)...
-
경상북도 영천시 자양면 성곡리에 있는 정씨 사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하기 위해 건립한 서당. 사의당은 1732년(영조 8)에 정중호(鄭重鎬)·정중기(鄭重岐)·정중범(鄭重範)·정중락(鄭重洛) 사형제의 우의를 돈독히 하고 학문 연구와 인재 양성을 위해 삼귀리에 건립한 건물이다. 영천 시내 시청 오거리에서 포항·안강 방면 25번 국도를 타고 조교 삼거리까지...
-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에 속하는 법정리. 삼매리(三梅里) 마을의 풍수를 보면, 마을 뒷산은 매화 가지가 뻗어 있는 형상이고, 앞산은 매화꽃을 향하여 날아드는 형상이라 매곡(梅谷)이라 칭하다가, 3개 이(里)가 합쳐서 삼매(三梅)라는 지명이 생겼다. 삼매리의 매곡마을은 조선 영조 때 형조 참의를 지낸 정중기(鄭重器)가 개척한 마을로, 270여 년 동안...
-
경상북도 영천시 화북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송리(上松里)는 주위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소나무가 특히 많다고 하여 1914년 행정구역 개편 시 소나무 ‘송(松)’을 써서, 윗동네는 상송(上松), 아랫동네는 하송(下松)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상송리는 저잣거리·상송과 아칠·아차(牙次)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저잣거리·상송은 420여 년 전에 정씨(...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흥해 사인 정사익(鄭四益)의 딸이며, 본군의 사인 이우협(李虞莢)의 아내이다. 열녀 정씨(鄭氏)는 적들이 집에 들어와 장차 남편이 될 이우협을 해치려 하자 팔을 벌려 막으면서 말하기를 “남편이 무슨 죄가 있는가? 차라리 나를 죽여라”라 하여 대신 창칼을 받아 죽어 이우협을 살렸다. 1704년(숙종 30)에 이 사실이 알려져 정려되었...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효자. 영일 정씨(迎日鄭氏)[오천 정씨]는 고려 한림학사(翰林學士)이며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 정습명(鄭襲明)을 시조로 하고 있다. 영천 전촌(錢村)에 옮겨 살게 된 것은 문과 급제 후 봉익대부행전공판서(奉翊大夫行典工判書)인 정인언(鄭仁彦)과 그의 아들 가선대부(嘉善大夫) 공조판서(工曹判書) 정광후(鄭光厚) 때부터이다. 정수...
-
조선 중기 경상북도 영천 지역의 열녀. 열녀 정씨(鄭氏)는 의흥 사인 홍성영(洪聖瀛)의 아내이다. 혼례 후에 남편 홍성영을 따라 경상북도 영천군의 서북쪽 북습리에서 우거하였다. 남편이 병으로 일찍 죽으니, 정씨는 곡을 하고 가슴을 치면서 애통해 하며 곡기를 끊었다. 주위에서 안타깝게 여겨 입안에 물을 떠 넣어주어도 삼키지 않고 9일 만에 드디어 스스로 목매어 죽었다. 1676년(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