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7400324
한자 殷豊縣
영어공식명칭 Eunpung-hyeon
이칭/별칭 은정현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위은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1450년 - 기천현과 은풍현을 통합해 풍기군으로 개정·승격
관할 지역 은풍현 -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은풍면

[정의]

고려시대부터 조선 전기까지 영주 지역에 내속되었던 지방행정구역.

[개설]

은풍현(殷豐縣)은 고려 초기에 설치되어 1450년(문종 즉위년)까지 지금의 예천군 효자면과 은풍면 일대에 존재했던 지방행정구역이다.

[제정 경위 및 목적]

고려는 후삼국 통일 직후 지방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해 호족 세력의 공과(功過)를 감안하여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은풍현이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 권57 지리지2 안동부 은풍현조에는 “은풍현(殷豊縣)은 원래 신라의 적아현(赤牙縣)인데 경덕왕이 은정(殷正)으로 고쳐서 예천군 관할의 현으로 만들었다. 고려 초에 지금 명칭으로 고쳤으며 현종 9년(1018) 본부에 소속시켰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편,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150 지리지 경상도 기천현(基川縣)조에는 “고려 때에 기주(基州)로 일컫고 … 공양왕 경오년(1390)에 다시 감무를 두고, 안동 임내 은풍현을 이에 붙였다. 본조 태종 계사년(1413)의 예에 의하여 기천현감(基川縣監)으로 고쳤다.”라고 하였다.

『문종실록(文宗實錄)』 권2 즉위년 7월 26일 기사에서는 “의정부(議政府)에서 이조(吏曹)의 정문(呈文)에 의거하여 아뢰기를 ‘경상도 기천 관할 안의 은풍현은 태(胎)를 안치한 곳이니, 청컨대 곤양군(昆陽郡)의 예에 의하여 군(郡)으로 승격시키고, 기천현을 합속시켜 풍기군(豐基郡)으로 이름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라고 하였다.

[내용]

은풍현은 신라 때 은정현이었는데, 고려 초기 은풍현으로 개정되었으며 예천군의 속현으로 두어졌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후삼국 통일 직후인 940년(태조 23) 무렵 전국적인 지방행정구역 개편이 진행될 때 함께 개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변천]

속현이었던 은풍현은 설치 이후 몇 차례 이속이 이루어졌다. 처음 예천군의 속현이었지만 1018년(현종 9) 안동부[당시 길주]의 속현으로 이속되었으며, 1390년(공양왕 2)에는 기주의 속현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에 행정구역 개편을 단행하면서 기주기천현으로 개정되었으며, 종6품의 현감이 파견되기 시작하였다. 1450년 기천현풍기군(豊基郡)으로 승격되었다. 1450년 왕으로 즉위한 문종의 태가 은풍현에 안치되어 있었기 때문에 고을의 읍격을 현에서 군으로 승격시켰다. ‘풍기’라는 새로운 고을 명칭은 은풍현의 ‘풍’과 기천현의 ‘기’를 조합한 것인데, 비록 은풍현이 속현이었지만 태가 안치된 고을이어서 읍명 조합 당시 ‘풍’자가 앞에 두어졌다.

[의의와 평가]

전통시대 지방행정구역이 호구·전결 및 산천의 경계를 바탕으로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지만, 해당 고을의 인적 연고나 이해관계에 따라 읍격 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속현이었던 은풍현풍기군으로 승격된 사례도 여기에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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