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블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78
영어공식명칭 Daveluy Marie Antoine Nicolas
이칭/별칭 안돈이(安敦伊),안비리(安斐理)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유병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18년 3월 16일연표보기 - 다블뤼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841년 12월 18일 - 다블뤼 사제 서품
활동 시기/일시 1843년 10월 4일 - 다블뤼 파리 외방전교회 입회
몰년 시기/일시 1866년 3월 30일연표보기 - 다블뤼 사망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4년 5월 6일 - 다블뤼 시성[성인품]에 오름.
출생지 아미앵 - 프랑스 피카르디주 솜 데빠르뜨망
학교|수학지 파리 생 쉴피스 신학교 - 프랑스 파리
활동지 조선교구 - 한반도 전역
성격 선교사
성별
대표 경력 제5대 조선교구장

[정의]

1866년 충청남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의 천주교 선교사.

[개설]

다블뤼(Daveluy Marie Antoine Nicolas)[1818~1866]는 프랑스 아미앵(Amiens) 태생의 천주교 사제로, 세례명은 안토니오이다. 다블뤼는 선교사를 희망하여 1843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1845년 조선에 입국하여 1866년 충청남도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0여 년간 조선에서 선교사로 활약하였으며, 제5대 조선교구장을 지냈다.

[활동 사항]

다블뤼는 1818년 3월 16일 프랑스 아미앵에서 태어나 잇시(Issy) 신학교, 생 쉴피스(Saint Sulpice) 신학교를 졸업하고, 1841년 12월 18일 사제로 서품되었다.

다블뤼는 선교사가 되기 위해 1843년 10월 4일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다. 파리 외방전교회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두고 아시아 지역에 선교사를 파견하는 선교단체로, 교황의 요청으로 조선교구의 선교를 맡게 되었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의 선교사들은 1836년부터 조선에 입국하여 선교 활동을 펼쳤다.

다블뤼는 1845년 10월에 제3대 조선교구장인 페레올(J. Ferreol) 주교, 한국인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金大建)[1821~1846] 신부와 함께 중국 상하이[上海]를 출발하여 충청남도 강경 부근의 황산포(黃山浦)를 통하여 입국하였다. 조선인 신자들을 찾아 순회 선교 활동을 벌이던 중 천주교인에 대한 박해가 점점 심해지면서 1846년 김대건 신부는 체포되어 새남터에서 순교하였고,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도 큰 고초를 겪었다.

1857년에는 제4대 조선교구장인 베르뇌 주교의 보좌 주교로 임명되었으며,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 베르뇌 주교가 새남터에서 순교함에 따라 1866년 3월 7일 교구장직을 승계하여 제5대 조선교구장이 되었다. 그러나 교구장직을 승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1866년 3월 11일 체포되어 위앵(Luc Huin)[1836~1866], 오메트르(Aumaitre)[1837~1866] 신부와 함께 1866년 3월 30일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사상과 저술]

다블뤼는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 중에서 저술 역량이 가장 높은 선교사로 평가된다. 선교 활동을 하면서도 틈틈이 조선인 신자들을 위한 교리서를 저술하고, 조선의 천주교회사 및 순교자와 관련된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였다. 저서로는 고해성사 준비를 위한 성찰서인 『성찰기략(省察記略)』, 묵상서(默想書)인 『신명초행(神命初行)』, 영세 준비서인 『영세대의(領洗大義)』, 『회죄직지(悔罪直指)』를 저술하였고, 번역서로는 상장례 예식서인 『천주성교예규(天主聖敎禮規)』, 『천당직로(天堂直路)』를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하였다.

1874년 간행된 『한국 천주교회사』는 일명 ‘다블뤼 비망기’라 불리는 책으로, 다블뤼 신부가 수집하여 프랑스 파리로 보낸 조선 교회사 및 조선 순교자 자료를 토대로 저술되었다.

[묘소]

다블뤼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순교 기념관 지하 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다블뤼는 1968년 10월 6일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르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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