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800680
영어공식명칭 Martin Luc Huin
이칭/별칭 민(閔) 신부,민(閔) 마르티노 루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유병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36년 10월 20일연표보기 - 위앵 출생
출가|서품 시기/일시 1861년 6월 29일 - 위앵, 사제 서품
활동 시기/일시 1865년 - 위앵 조선 입국
몰년 시기/일시 1866년 3월 30일연표보기 - 위앵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4년 5월 6일 - 위앵 성인품 시성
출생지 기용벨 - 프랑스
학교|수학지 랑그르신학교 - 프랑스
활동지 조선교구 - 조선
성격 선교사
성별
대표 경력 신부

[정의]

1866년 충청남도 보령 갈매못에서 순교한 프랑스 출신의 선교사.

[개설]

위앵(Martin Luc Huin)[1836~1866]은 프랑스 기용벨 태생의 천주교 사제로, 세례명은 마르티노 루가, 한국명은 민(閔) 마르티노 루가이다. 위앵은 1861년에 사제 서품을 받고, 1865년 조선에 입국하여 전교 활동을 벌이다가 1866년에 체포되어 다블뤼(Marie Nicolas Antoine Daveluy)[安敦伊, 18118~1866] 주교, 오메트르(Pierre Aumaître)[1837~1866] 신부와 함께 충청남도 보령의 갈매못에서 순교하였다.

[활동 사항]

위앵은 1861년에 프랑스의 랑그르교구 소속 대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로 서품되어 믈레성당, 부아제 성당에서 2년 동안 보좌 신부로 재임하였다. 1863년 파리 외방전교회에 입회하였고, 1864년 조선 선교사로 임명되어 도리(Pierre Henri Dorie)[1839~1866] 신부, 볼리외(Bernard-Louis Beau1ieu)[1840~1866] 신부와 함께 프랑스 마르세유 항을 출발하여 중국을 거쳐 1865년 5월 충청도 내포 지방으로 입국하였다. 위앵은 지금의 당진 일대에서 다블뤼 주교에게 조선어를 배우면서 선교하던 중 병인박해가 일어나 1866년 3월 11일 다블뤼 주교가 체포되자 다음날인 3월 12일 자수하였다. 위앵은 함께 체포된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와 함께 서울로 압송되어 군문효수형 선고를 받고, 1866년 3월 30일 처형장인 보령의 갈매못에서 30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사상과 저술]

위앵은 프랑스의 시골 마을인 기용벨의 독신한 천주교 집안에서 태아나 죽음에 임하는 순간까지 신앙을 지키며 순교하였다. 위앵은 조선에 입국한 지 10개월 만에 순교하였지만 자신의 죽음보다는 사랑하는 조선 사람을 더 구원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겼다고 한다. 또 보령 갈매못에서 처형을 당하던 중 망나니가 다블뤼 주교의 목을 반쯤 자르고 판관과 돈 흥정을 하자 망나니를 크게 꾸짖으며 칼날 앞에서도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을 보였다고도 한다.

[묘소]

위앵의 묘소는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절두산 순교 기념관 지하성당에 안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968년 10월 6일 로마 베드로 대성당에서 교황 바오로 6세에 의해 복자품에 오르고, 1984년 5월 6일 서울 여의도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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