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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0020
영어공식명칭 A Tale of Baekje Revival Movement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양기석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에서 전하는 백제 멸망기 백제인의 저항 의식을 담은 구비 문학.

[개설]

패망한 백제를 다시 부흥시키려는 유형의 설화는 두 가지로 분류된다. 한 가지는 백제 패망의 과정에서 외적의 침입에 대비하거나 방어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내용의 설화이다. 백제 수호 세력과 외세의 대결 구도를 중심으로 하여 전승하는 이야기이다. 또 한 가지는 백제 유민의 저항 정신을 계승하는 내용의 설화이다. 백제 패망 당시나 패망 후의 백제 유민들의 울분과 항거를 구조화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백제 패망의 한이 서린 백마강]

금강의 중류인 백마강(白馬江)은 백제의 두 도읍지인 공주와 부여를 끼고 흐르는 강이다. 두 도읍지 중 부여는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로서 백제 멸망과 관련된 전설들이 많이 남아 있다. 백제 멸망과 관련한 전설을 살펴보면, 망국을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중심이 되어 부여 지역의 자연물이나 건축물 및 지명 등을 증거물로 하여 계승되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한 전설은 당대의 인물과 사건이 만들어 낸 이야기인 동시에 후대 사람들의 전승 의식이 보태져 현재까지도 문화적 모태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부여 지역에서 백제의 패망을 강조한 유형의 설화는 주로 의자왕(義慈王)과 관련된 이야기이다. 의자왕과 관련한 이야기는 위정자에 대한 원망과 비판을 주요 서사로 구성된다. 국가 망조에 관한 예조담(豫兆譚)은 국가가 멸망하기 전에 나타난 기이한 현상 등을 중심으로 서사가 전개되는 설화인데,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같은 역사책에 전하고 있다. 이상 현상과 징후에도 지배층은 향락에 빠져 예조를 알아채지 못하고 결국 패망에 이른다는 내용이다.

의자왕 관련 전설의 전개는 백마강이나 주변에 집중되어 있다. 백마강의 수로를 이용하여 임금이 왕래하거나 일정한 행차가 이루어졌던 역사적 사실에 근거를 둔 문화적 재창조에 의한 변이이다. 관련 전설로는 「대왕포 전설」, 「희어대 전설」, 「천정대와 임금바위 신하바위」, 「낚시바위와 궁골」, 「황화산과 황화대」, 「화산리 꽃미」, 「야화리 들꽃미」 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 임금이 환락에 빠져 타락한 내용으로 귀착한다. 역사 사실을 차용한 전승 속 변이는 백제 패망에 관한 부정적 인식에 기반한 양상을 띤다.

[백제인의 저항 의식을 담은 전설]

백제 유민이 신라와 당(唐) 세력에 항거한 설화의 전승은 부여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여러 유형으로 분포되어 있다. 백제 유민의 저항 의식을 담은 설화는 객관적인 사실 그대로를 담지 않고 문학적으로 재생산된다. 사실보다는 사실을 겪은 사람의 감정과 의식에 초점을 맞춘다. 설화 속 인물의 저항 정신에 초점을 맞춘 이야기 구조는 정신적 승리를 염원하며 다양하게 확대되어 전승된다. 목숨을 걸고 전쟁에 참여하였던 장수 이야기, 억울한 백제 장수를 달래는 이야기, 나라를 망하게 한 적장을 처단한 이야기, 남편을 전장에 내보낸 부녀자의 저항 이야기, 지역을 지킨 유민 이야기가 다양하게 전한다. 등장 인물 또한 다양하다. 다양한 등장인물의 설정은 모두 백제 유민의 정신적 승리의 염원을 담고 있다. 백제 유민의 정신적 승리는 단지 설화로의 전승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민간신앙으로까지 확대되어 전승된다.

[「조룡대」 전설에 나타난 수호신과 적장의 대결]

설화 전승 집단은 백제 패망을 백제 세력과 외세의 대결 구도로 설정하고, 대결 구도 속 백제 세력의 저항 정신을 계승하고자 하였다. 대표적인 예가 「조룡대(釣龍臺)」 전설이다. 백제 수호신인 용의 죽음을 담은 비극미를 대결 모티브로 한 다양한 각편이 전승된다. 이외에 「석련지와 백제탑」, 「맹괭이 방죽」, 「군장동」, 「문동교」 등에서 백제 수호 세력과 외세의 대결 구도 속 저항 정신을 찾을 수 있다. 백제가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멸망한 것은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나 설화 전승자는 외세와의 대결 구도를 선명하게 설정하기 위하여 인물 설정 또한 상징 기법을 차용한다. 외세를 대표하는 인물은 당나라 장군 소정방(蘇定方)[592~667]이다.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키는 데 큰 공을 세운 장군으로서의 소정방의 면모는 다양한 전승의 모티프가 되었다.

백제와 소정방과의 대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설화가 「조룡대」 전설이다. 「조룡대」는 『삼국유사』,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을 비롯하여 현지에서 채록한 여러 이야기에 전하여 오고 있다. 유형별로 보면 엄숙한 수호신을 비극미로 표현한 유형, 외세인 소정방의 영웅적 면모를 강조한 유형, 백제 멸망 후 저항 의식을 담은 유형 등이 있다. 조룡대라는 역사적 증거물에 빗대어 외세에 대한 다양한 평가를 표현한 전승 양상을 보여 주고 있다.

「조룡대」에 대한 가장 오랜 기록은 『삼국유사』이다. 사비하(泗沘河)[백마강] 강변에 있는 바위인 용암(龍岩)에 얽힌 설화를 소개하고 있다. 소정방이 바위 위에 앉아서 물고기와 용을 낚았기 때문에 바위 위에 꿇어앉은 자국이 있다고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소정방이 마침 백제를 공격하려고 강을 건너려 할 때 갑자기 비바람이 크게 일어나자 흰말로 미끼를 만들어 용을 낚아 도성에 진입하였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로 인하여 소정방이 건넌 강을 백마강이라 하였고, 용을 낚은 바위는 조룡대(釣龍臺)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제의 생명력의 원천인 사비강을 배경으로 하고, 백제 수호신인 수중 용과 외세인 소정방으로 상징화하여 이야기를 다층적으로 전승한 것이다. 승자와 패자의 구도 속에서 용의 죽음은 백제의 패배를 확실하게 보여 주는 대결 구도 속에서 마무리되기도 한다. 「조룡대」 전설은 여러 형태의 변이형이 존재하는데, 변이 유형에 따라 의미상 다소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백제의 저항이 강력하였음을 보여 준다.

[충절을 지킨 백제 장수들의 저항 의식]

백제 장수 중 장엄함과 비극미를 대표하는 인물은 계백(階伯)이다. 계백이 황산벌 전투에서 신라군과 싸우다가 순절한 이야기가 『삼국사기』 계백 조에 전한다. 백제의 충절한 장군으로 최후를 맞은 계백에 관한 전설은 장군으로서의 계백의 모습을 비장미로 표현하여 다양하게 전승되고 있다. 신이한 출생을 담은 이야기, 특출한 능력을 기르는 성장 이야기, 영웅의 면모를 보여 주는 치적 이야기, 억울한 죽음을 맞은 최후 이야기까지 전승 양상이 활발하고 다양하다. 광포 전설인 신물 교접 출생 설화, 아기장수 설화, 축성 설화 등의 모티프를 차용하여 전승되고 있다.

부여군에서 계백과 관련한 설화는 부여군 충화면 등에 구전으로 많이 전승되고 있다. 그중 「표뜸과 계백 장군」은 호랑이의 젖과 생고기를 먹이며 키울 정도로 용맹성과 신이성을 강조한다. 충화면「말티의 유래」, 구룡면「망신산의 말무덤」도 영웅으로서의 계백의 모습을 보여 준다.

계백 이외에도 백제 장군의 비극미를 서사화한 이야기는 다양한 각편으로 전승된다. 백제를 지킨 다섯 장수에 관한 「천등산 다섯 장수」에 등장하는 장수는 북문을 부순 계백, 품석의 목을 벤 상갈, 화차로 성문을 부순 진연, 성벽을 뛰어넘은 속성, 지렛대로 성을 부순 사해이다. 다섯 장수는 모두 황산벌 전투에서 전사한다.

「성흥산성과 7왕자」는 백제와 신라의 대야성(大耶城) 전투에서 공을 세운 성흥산성의 성주 윤충(允忠)윤충의 밑에서 무예를 닦던 일곱 왕자의 항전 내용이다. 의자왕과 왕자 풍(豊)의 어리석음과 국운을 생각하고 참전하였다가 죽은 왕자들의 의지를 보여 주는 이야기이다. 윤충이 백제의 국난을 위하여 싸우다 제대로 항전하지도 못한 채 의자왕의 어리석음 탓에 죽은 것을 애통해하고, 장수들의 권력 싸움과 배신 등으로 전쟁에서 끝내 패배하였다는 역사에 대한 평가를 보여 주고 있다. 설화 전승자는 흑치상지(黑齒常之)[630~689]의 배신을 용납하지 못하고 부정적 인물로 이야기를 전승하고 있다. 나아가 백제 유민의 분통함은 세 그루의 나무로 표현된다. 분통함은 나무로 생명을 얻는다. 장수의 원통한 죽음과 저항 정신은 세 그루의 나무로 표상되어 계승된다.

[부흥 운동을 전개한 백제 장수의 위령제인 은산별신제]

마을 수호신으로서의 제의적 확산과 전승으로는 은산별신제(恩山別神祭)의 유래담이 있다. 백제 장수의 억울함을 풀기 위한 위령제는 은산면의 별신굿이 대표적이다. 별신굿의 배경 설화는 네 단계의 변화를 거치는데, 1935년 기록에서 백제와의 연관성을 보이다가, 1960년대를 중심으로 구체화되었다. 은산별신제의 유래담에서는 백제의 복권을 위하여 저항한 복신(福信)토진(土進)을 제향한 연유를 전한다. 백제를 되찾고자 외세에 대항하는 복신토진을 주인공으로 하여 전승자인 은산 사람까지 참여한 공동 의식의 발로이다. 마지막까지 백제의 부흥을 꿈꾸었지만 나라를 되찾지 못한 사실을 극복하기 위하여 설화 전승자는 설화와 의례의 습합을 도모한다. 복신토진의 저항 정신을 이어받는 동시에, 백제 저항군의 패배 원인을 사실보다는 신라 측의 모략으로 돌리는 왜곡적인 표현을 한다.

민속 신앙이 동제로 신격화한 제의적 전승으로 습합되면서 가정 신앙까지 확산되며 다양화된다. 가정 수호신이 된 유형으로는 임천면「문단바위」가 있다. 「문단바위」는 전쟁에서 진 장수가 자신과 부하들의 유골을 거두어 제사를 지내 달라고 하고, 보은으로 자손을 정승이 되게 하여 주었다는 내용인데, 백제 장수에 대한 전승자의 의식을 보여 준다.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백제 장군의 억울함을 담은 비장미가 후대에 전승되면서 민간신앙으로 확대되어 동신(洞神)의 유래담과 가신(家神)의 유래담으로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백제부흥운동에 나선 백제 유민들]

백제 장수의 저항 이외에 백제 유민의 저항 의식을 담은 설화도 다양하게 분포한다. 백제 유민의 정신적 승리의 염원을 담은 설화 전승은 역사적 사실과 다르게 패국의 슬픔과 울분을 잊는 동시에 저항 의식 또한 표현한 것이다. 「석련지와 백제탑」이 그렇다. 백제를 망하게 한 소정방이 ‘대당평제국비명(大唐平百濟國碑銘)’을 석련지에 새기게 하자 석공이 거절하고, 다시 백제탑에 새기게 하자 석공이 탑 앞에서 죽었다는 내용이다. 역사적 패배 사실을 거부하고 정신적 승리를 염원하는 문학적 표현이다.

단순 거부와 저항이 아니라 배신자를 응징하고 적장을 처단하는 유형까지 다양하다. 부여읍에서 전승되는 「맹괭이 방죽」이 대표적이다. 「맹괭이 방죽」은 백제를 배신한 배신자의 처절한 죽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사실과는 상관없이 백제를 배신한 인물을 주인공으로 삼아 처절한 결말을 보여 주며 마음의 위안을 삼는다. 육신과 달리 정신적 배신에 대한 응징은 사후에도 지속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배신자는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도 희화적인 표현, 즉 맹꽁이 소리를 차용하여 비웃음을 당한다.

남편을 전장에 보낸 아녀자의 저항 또한 빠질 수 없다. 백제 여인들의 항거에 관한 전설은 다양하게 전승된다. 부여군에서도 「각시바위」, 「가음산 궁녀바위」, 「낙화암 전설」, 「마가산 선녀」, 「연화지의 두 도령」 등이 있다. 전장에 참여한 남편 대신 혹은 전장에서 죽은 남편과 아들 대신 남겨진 부녀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저항 행동을 증거물에 담는다. 백제의 저항 정신을 표상한 부녀자의 항거에 초점이 맞추어져 서사가 단순하다.

백제 유민의 저항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 전설은 옛 사비 지역인 부여군 곳곳에서 전승되고 있다. 백제 패망 후 항거한 행적과 정신에 편중된 양상으로 설화가 계승된다. 현실을 극복하고자 한 설화 전승 집단의 태도와 의식 속에서 사비 도읍기 백제의 정신이 현대까지 살아남아 문화적 모태가 될 수 있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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