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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호방직 노동쟁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4194
한자 三護紡織 勞動爭議
영어공식명칭 Samho Textile Labor Dispute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노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64년 1월 14일연표보기 - 삼호방직 노동쟁의 발생
발단 시기/일시 1964년 11월 20일 - 삼호방직 노동자 110명 집단 해고
종결 시기/일시 1968년 7월 1일연표보기 - 삼호방직 노동쟁의 종결
성격 노동운동

[정의]

1964년 대구광역시에 있는 삼호방직 노동조합이 집단해고에 반발하여 일으킨 노동쟁의.

[개설]

1964년 11월 20일에 삼호방직은 노후 시설 폐쇄를 이유로 노동자 110명을 집단 해고하였다. 1965년 1월 7일에 해고 노동자에게 1개월분의 위로금을 지급하자 노동자들이 심한 반발하였고, 1965년 1월 14일에 삼호방직 노동자 1,759명 전원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쟁의를 벌였다.

[경과]

1967년 4월 3일에도 삼호방직 대구노조는 총파업에 돌입하였다. 삼호방직 대구공장 종업원 2,047명은 임금 3600여만 원 체불에 항의하기 위하여 오후 2시 30분을 기하여 전면 파업에 돌입하였다. 4월 3일에 종업원 전원은 대구공장 뜰에 모여 “배고파 못살겠다. 밀린 품삯 빨리 내라”, “횡포 심해 못 살겠다. 삼호방직 각성하라”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종업원들은 지난 10년 동안 임금을 한 번도 제때 받아 본 일이 없었고, 준다던 상여금도 준 일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체불 노임이 전액 지급될 때까지 계속 투쟁하겠다고 외쳤다. 1967년 1월부터 3월까지의 3개월분 임금 3600여만 원이 한 푼도 지급되지 않아 자취하는 여직원들 가운데는 하루 한 끼의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국수로 끼니를 이어 가는가 하면 외상 거래처마저 끊겨 결식 상태에 놓여 있다고 주장하였다.

[결과]

1968년 4월 30일에 삼호방직 노동자들은 계속된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를 노동청에 고발하고, 이어서 6월 21일에는 단체협약 체결 쟁의에, 그리고 7월 1일에는 임금인상 쟁의에 돌입하여 관철하였다.

[의의와 평가]

1960년대는 경제성장 제일주의에 입각하여 노사관계 본연의 성격인 대등한 지위에서의 대립과 협력 관계를 무시하고 성장이라는 공동 목표를 위한 협력만을 강조하는 일원적인 노사관계를 위하여 단체교섭을 제한하였다. 삼호방직 노동쟁의는 정부의 보호를 받는 사업주가 노동자의 생존권을 무시하고 벌이는 일방적인 해고에 대하여 노동자들이 조직적·집단적 자구책의 일환으로 노동쟁의을 일으켰으며, 노동자의 생존권을 무시한 사업주의 횡포에 경종을 울린 사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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