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도봉구문화대전 > 도봉구향토문화백과 > 삶의 주체(성씨·인물) > 근현대 인물 > 관료
-
일제 강점기 양주 군수와 노해면장을 역임한 친일 관료. 강원달(康元達)은 1875년 평안남도 순천에서 태어나 1907년 평안남도 순천 사립 시무 학교(時務學校) 교원, 1908년 경기도 광주군 광흥 학교(廣興學校) 교원, 기호 흥학회(畿湖興學會) 광주군 지부 교육부장 등 교육계에 몸담았다. 일제가 한국을 강제 병탄한 1910년 8월부터 평안남도 덕천 군수에 임용되었고, 이후 친일...
-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에 있는 덕성 여자 대학교 총장을 지낸 관료. 부인은 조송자(趙松子)이며 아들은 김환석, 김환주이다. 김용래(金庸來)는 1934년 3월 15일 충청남도 아산에서 출생하여 경기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서울 대학교에서 법학 석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1956년 제7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1962년~1963년 내무부 지방국 기획 감사과장을 시작으로 공직에 발을 디뎠...
-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이 속한 양주 군수를 지낸 관료. 김정제(金正濟)는 1913년 4월 충청남도 보령군 주산면 금암동에서 김상억의 아들로 태어났다. 광주 소학교와 광주 고등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931년 4월 경성 제국 대학 예과 문과에 입학하였다. 1933년 4월 경성 제국 대학 법문학부 법학과에 입학해 1936년 3월 졸업하였다. 1937년부터 1942년 6월까...
-
개항기 현재의 도봉구 지역을 다스렸던 양주 목사. 이유인(李裕寅)은 1888년(고종 25) 파주 목사 재임 시 전무위원(電務委員)이 되어 기해 전선(畿海電線) 가설에 공을 세웠다. 1890년에 양주 목사가 되었으며, 양주 목사 재임 시절 조 대비(趙大妃)의 능묘 공사를 끝낸 공으로 경기 감사와 함께 품계가 승격되었다. 1891년 12월 한성부 판윤으로 부임하였고, 1894년 함경남...
-
서울특별시 도봉구청장을 지낸 관료. 이재환(李在煥)은 충청남도 부여 출신이다. 부인은 변순옥으로, 슬하에 2남 1녀를 두었다. 이재환은 1957년 서울시 공무원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주택 행정과장, 중앙 공무원 교육원 교수부장, 지하철 운영 사업소장 등을 지냈다. 1985년 제11대 도봉구청장에 임명되어 4년간 구청장을 지냈다. 1986년 당시 도봉구는 인구는 서울특별...
-
1898년 1월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에서 발생한 구 소사의 치사 사건을 1차 조사한 양주 군수. 1898년 1월 경기도 양주군 해등촌면 영국리에서 김복이(金福伊)가 구(具) 소사(召史)[소사는 양민의 아내나 과부를 이르는 말]를 구타하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선 시대에 인명 사건이 발생할 경우 해당 지역의 수령이 1차로 조사하고, 이후 인근 지역 수령이 2차로 조...
-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지역의 면장을 지낸 친일 관료. 조선 총독부는 강점 초기부터 지역의 명망가들을 면장으로 끌어들여서 지방 지배를 효율적으로 실시하려고 하였다. 하지만 식민 지배에 대한 조선인들의 거부감, 면장의 제한된 권한 등으로 인하여 면장 자리는 주로 하급 계층에서 충원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면 제도가 확립되어가고 면에서 처리해야 할 사무도 증가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