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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봉동 서봉마을 당산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60004355
한자 西峰洞西峰-堂山祭
이칭/별칭 서봉동 서봉마을 동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부유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40년대 일제강점기 말 - 서봉동 서봉마을 당산제 중단
의례 장소 할아버지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서봉마을 중앙지도보기
의례 장소 할머니당산 -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서봉마을 입구지도보기
성격 마을 공동 제사
의례 시기/일시 정월 열나흗날
신당/신체 할아버지당산[느티나무]|할머니당산[느티나무]

[정의]

광주광역시 광산구 서봉동 서봉마을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을 기원하기 위해 정월 열나흗날 밤에 지내는 마을 공동 제사.

[개설]

서봉동 서봉마을 당산제는 정월 열나흗날 밤에 서봉마을의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농를 기원하며 마을 공동으로 지내는 제사이다.

[연원 및 변천]

서봉마을은 봉황새가 사는 곳이라 하여 '누봉리'라 하였다가, 뒤에 서봉사란 절이 있어 '서봉'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마을은 조선 중기 창녕조씨(昌寧曺氏)의 이주와 정착으로 형성되었다. 당산제는 마을 형성 때부터 지낸 것으로 보이며,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인들에 의해 당산나무가 벌목된 후부터 중단되어, 현재까지 전승이 되지 않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서봉마을의 당산은 할아버지당산과 할머니당산 2곳이다. 할아버지당산은 마을 중앙에 있는 느티나무였고, 할머니당산은 마을 입구 우산각 부근에 있는 느티나무였는데 마을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인들이 당산나무를 벌목한 후부터 제를 모시지 않게 되었다.

[절차]

서봉동 서봉마을 당산제는 정월 초에 마을회의를 열어 생기복덕(生氣福德)[생기법으로 본 길일과 사람이 태어난 생년월일의 간지를 팔괘로 나누어 가린, 길한 일진의 날]을 보아 유사 1명, 축관 1명, 헌관 1명 등 3명의 제관(祭官)을 뽑고 도와줄 사람 2명을 정한다. 유사는 선정된 날부터 상가 등 궂은 곳을 출입해서는 안 되며, 제사가 끝날 때까지 부부가 함께 잠자리에 들어서도 안 된다. 또한 제사가 끝날 때까지 소변을 보면 세수를 해야 하고, 대변을 보면 목욕 후 옷을 갈아 입어야 한다. 제물(祭物)은 정월 12~13일 사이에 송정장에서 구입한다. 장을 보기 앞서 유사는 마을 앞 황룡강에서 목욕재계를 해야 한다. 유사와 유사를 돕는 2명이 함께 장을 보는데, 이때 값을 흥정해서는 안 된다. 당산제에 쓰이는 제기(祭器)는 매년 새것으로 구입하고, 제가 끝나면 유사가 사용한다. 유사의 수고에 답례하는 의미이다. 정월 4~5일 사이에 마을 입구, 당산 주변, 유사집 앞에 금줄을 쳐 부정의 출입을 막는다. 금토는 제일(祭日) 아침 일찍 금줄을 친 주변에 뿌린다. 제수는 유사집에서 준비하며, 음식은 고춧가루나 마늘 등은 넣지 않고 간단히 소금 간만 한다.

정월 열나흗날이 되면 오후부터 굿을 치기 시작해 제일임을 마을 사람들에게 알린다. 저녁에는 당산 주변과 동네 곳곳을 돌며 굿을 친다. 저녁 9시가 되면 유사집으로 가서 간단하게 굿을 치는데 유사와 제관들이 제물을 들고 나와 할아버지당산에 진설할 때까지 계속된다. 진설이 끝나면 먼저 유사가 절을 하고 제관들이 절을 한다. 이때 여성들은 집 밖으로 나와서는 안 된다. 소지는 마을 소지를 올린 후 각자의 소원성취를 기원하며 개인 소지를 한다. 소지까지 끝나면 제관들만 간단히 음복을 한 후, 차린 음식을 흰 종이에 조금씩 싸서 당산나무 옆에 묻어 헌식을 한다. 할아버지당산에서의 제가 끝나면 다시 유사집으로 가서 제물을 가지고 할머니당산으로 간다. 제차(祭次)는 할아버지당산에서와 같은 순으로 진행한다. 제사는 자정에 이르면 끝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다.

[축문]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내용의 축문을 읊었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확인하기 어렵다.

[부대 행사]

당산제가 끝나고 정월 대보름날부터 그믐날까지 마당밟이가 진행된다. 각 가정을 돌면서 음식을 대접 받고 약간의 찬조금을 통해 마을 자금을 마련하기도 하였다. 음력 2월 1일에는 이장집에서 마을회의를 열어 당산제와 마당밟이 결산 보고를 하고 새로운 이장을 선출한다. 이후 한해 품삯을 결정하는 등 마을 운영 전반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진다.

[현황]

서봉동 서봉마을 당산제는 일제강점기 말에 일본인들에 의해 당산나무가 벌목된 후부터 중단되어 현재까지 전승이 되지 않고 있다. 일부에서 당산제를 부활하자는 이야기도 있었으나 이농현상으로 젊은이들과 굿치는 사람이 없고 또 마을 사람들의 인식도 변화하여 실현을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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