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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석리 동제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1161
한자 峽石里洞祭
영어공식명칭 Village ritual in Hyeopseok-ri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중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60년대 - 협석리 동제 중단
의례 장소 동산바우 -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 지도보기
성격 동제
의례 시기/일시 정월대보름 오후 11시
신당/신체 동산바우|팽나무

[정의]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협석리에서 마을의 안녕을 위해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협석리 동제경산시 남천면 협석리 주민들이 정월대보름 자시에 마을에 위치한 동신바위와 당나무에게 지내는 동제이다.

[연원 및 변천]

협석리에서 언제부터 동제를 지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마을의 초계 정씨 입향조가 당나무로 사용되는 팽나무를 심었다는 믿음이 있는 것으로 보아 비교적 오래전부터 동제를 지내온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협석리 동제를 지내는 신당은 마을 어귀에 있는 동산바우라 불리는 두꺼비 형태의 바위와 그 위쪽에 있었다고 알려진 초계 정씨 입향조가 심었다고 여겨지는 팽나무였다. 1960년대 당시의 면장이 동제가 미신이라 하여 팽나무를 베었고, 그 나무로 면장이 농민학교의 책걸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동산바우도 없애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후 면장은 사상범으로 몰려 옥살이를 했으며, 동산바우를 보호하는데 주된 역할을 했던 주민은 점차 살림이 나아졌는데, 주민들은 이에 대해 동제를 없애려 한 사건의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 해석하였다.

[절차]

과거 협석리에서는 정월 5일날 풍물패가 집집을 돌고, 마을 남자들에게 대내림을 받게 하여 제관을 뽑았다. 대내림은 깨끗하고 정직한 사람, 자신은 물론 식구에게도 부정이 타지 않은 사람에게 내렸다고 한다. 제관으로 선정된 사람은 매일 밤 찬물에 목욕을 하고 담배나 술, 비린 것 등을 입에 대지 않았다. 제관의 집 주위에는 황토 흙을 뿌렸다. 동제를 지내고 난 이후에도 일년간 초상집에 들리거나, 초상집 음식을 먹지 않았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큰벌을 받는다고 믿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관으로 선정되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았다.

제비는 동네에서 각출하였으나 살림규모에 따라 각기 다르게 지불하였다. 제물을 준비하기 위한 장은 제관이 직접 간다. 이 과정에서 말을 하지 않고, 흥정을 하지 않는 등의 금기가 요구된다. 제물은 제관의 집에서 만들며 정결해야 하는 것은 제관이, 허드렛일은 제관의 부인이 하였다. 제물로는 닭, 편, 자반, 조기, 배, 감, 고등어, 밤, 대추, 문어 등이다. 술은 제관의 집에서 직접 담아 사용하였다고 한다.

동제 전날이 되면 제관은 축관으로 뽑힌 사람과 함께 목욕을 한다. 축관은 보통 동장이 맡는다. 14일이 되면 동장이 마을을 돌아다니며 동제를 치른다는 것을 알린다. 이에 각 집에서는 대문에 금줄을 치고 그 앞에는 황토를 뿌린다.

자시가 되면 제관과 축관이 동제당으로 올라가 촛불을 킨다. 촛불이 꺼져서는 안 되기에 조심스레 신경을 쓴다. 제사 절차는 참신, 강신, 축 순으로 행한다. 다음 절을 하고 잔을 치며 다시한번 절을 한 뒤 축문과 소지를 올린다. 집집마다의 가구주 이름을 쓴 소지를 한 장 씩 올리며 안택을 빌어준다. 끝으로 동네의 평안을 빈 뒤 제사를 마무리한다. 그 다음날 아침 10시 경에는 동네 어귀 송정숲에서 동회를 열어 경비를 결산하고 마을 일을 논하였다고 한다.

[현황]

협석리 동제는 1960년대 경 마을 사람들이 미신이라 하여 중단되었다. 이 당시 당나무인 팽나무를 잘라 책걸상을 만들었으며, 동산바우도 없애버릴 뻔 했으나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어 그대로 두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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