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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700682
한자 孫基郁
영어공식명칭 Son Gi Wook
이칭/별칭 손기성(孫基聖)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남도 밀양시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노규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12월 8일연표보기 - 손기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4일 - 손기욱 태룡리 장터 만세 운동 참가
활동 시기/일시 1920년 11월 - 손기욱 흥업단에 가입
활동 시기/일시 1921년 - 손기욱 일제 경찰에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71년 12월 26일연표보기 - 손기욱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19년연표보기 - 손기욱 건국포장 추서
출생지 안법리 -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안법리 지도보기
활동지 밀양 - 경상남도 밀양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밀양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손기욱(孫基郁)[1892~1971]의 본관은 일직(一直)이고, 이명은 손기성(孫基聖)이다. 1892년 12월 8일 지금의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안법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손기욱은 1919년 4월 4일 밀양 단장면 태룡리 장터 만세 운동[용회동 장터 만세 운동]에 참가하여 태룡리 헌병주재소(憲兵駐在所) 건물을 부수고 헌병군조를 때려 눕혔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3개월 취조를 받다가 풀려났으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았다.

1920년 11월 군자금 모금을 위하여 국내에 잠입한 길림성 군정서(軍政署) 부속 흥업단(興業團) 단원 이만준(李萬俊)의 권유로 흥업단에 가입하였다. 손기욱은 백부 손종헌(孫琮憲)을 흥업단에 가입시키고 군자금 모금 활동을 하다가 1921년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제령(制令) 제7호 위반’으로 기소되었다가, 1921년 11월 8일 마산지방법원 밀양지청에서 기소중지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1922년 12월경 이만준 등이 경상북도경찰부(慶尙北道警察部)에 검거되고 손기욱도 함께 체포된 것으로 보인다. ‘1919년 제령 제7호 위반’ 및 ‘강도, 상해죄’로 기소되었다가, 1923년 8월 21일 대구지방법원(大邱地方法院) 검사국(檢事局)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석방되었다.

손기욱은 1971년 12월 26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손기욱에게는 2019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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