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한문 교육의 요람, 태동고전연구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015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기획)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비룡로973번길 80-1[지둔리 11-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신진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태동고전연구소 -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비룡로973번길 80-1[지둔리 11-1]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에 있는 한문 교육기관.

[개설]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지둔리에 있는 태동고전연구소청명(靑溟) 임창순(任昌淳)이 설립한 한문 교육 기관이다. 한국 동양 고전의 강독과 번역 능력 배양에 역점을 두고 있으며, 지곡서당이라고도 한다. 설립 초반에는 일반 수강생을 대상으로 한학 교육을 하다가, 1976년부터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지원을 받아 5년 과정의 장학생을 선발하여 교육하였다. 1982년부터는 3년 과정의 기숙사 체제로 전환하여 임창순이 독자적으로 운영하였고, 1985년 8월, 임창순과 한림대학교 일송학원 윤덕선 이사장의 약정에 의하여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로 전환되었다. 2013년 한림대학교에서 재정난을 이유로 인재 양성 사업을 중단하게 되자, 현재까지 연구 사업을 중심으로 연구소가 유지되고 있다. 교육 및 인재 양성 사업은 2015년부터 청명문화재단 부설연구소에서 졸업생들의 모금을 통해 일정 기간 운영되었다.

[임창순의 생애와 태동고전연구소 설립]

태동고전연구소의 설립자인 임창순은 1914년 충청북도 옥천군 청산면에서 아버지 임원재(任元宰)와 어머니 김영례(金永禮)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4세 때 할아버지 임경호(任敬鎬)로부터 천자문을 배웠고, 14세 때 충남 보은의 서당 관선정(觀善亭)에 들어가 성리학자 겸산(兼山) 홍치유(洪致裕)에게 6년간 수학하였다. 이후 대구에서 막노동을 하다가 1945년에 이르러 독학으로 ‘중등교원 자격시험’에 응시하였고 국어과는 차석, 국사과는 수석으로 합격하였다. 1945년 경북중학교 교사로 발령을 받았다. 교사로 재직하던 중 문교부 교수 자격을 취득하고 1946년부터 대구사범학교에서 역사를 가르쳤지만, 친일파 학장과의 대립으로 사직했다. 1952년 동양의약대학 교수를 거쳐, 1954년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부임해 1962년까지 후학 양성에 힘썼다. 1956년 『당시정해(唐詩精解)』를 저술하여 학우사(學友社)에서 출판했고, 1959년에는 『단권신역 옥루몽(單卷新譯玉樓夢)』을 저술하여 근우사(槿友社)에서 출판했다.

성균관대학교 재직 중 4·19혁명이 일어나자 ‘4·25교수시위’를 주도하면서 성명서에 “대통령은 책임지고 물러나라”는 문구를 넣자고 제안하고 이승만 대통령 하야를 강력히 주장하였다. 교수 시위를 주도하면서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래카드의 글씨를 직접 쓰기도 했다. 교수단 시위에 이어 1961년 진보적인 통일운동단체인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 결성 준비위원회에서 통일방안심의위원으로 참가했다. 당시의 통일운동 때문에 군사정권에 의해 1962년 성균관대학교 교수직에서 해직되었고, 1964년에는 인민혁명당사건으로 구속되어 옥고를 치렀다.

1963년 11월 3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수표동에 한문 교육 기관인 ‘태동고전연구소’를 창설하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문강좌를 개설하였다. 1974년, 경기도 남양주[당시 양주군]에 지곡정사(芝谷精舍)를 세우고, 1976년 청류헌을 두고 전문가 연수 과정을 시작하였으며 1977년에 관어정을 짓고 기숙사 용도의 지곡서당을 두고, 이후 연못과 연못 주변의 열경루와 문장각도 세웠다. 서울과 멀지 않은 지역에서 기숙 과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기 위해 남양주를 선택한 것이다.

1979년 11월, ‘지곡서당’ 건물 신축 상량문에, “남북의 젊은이들이 모여 민족의 장래를 의논하는 그런 전당이 되는 것이 이 서당의 기본정신이다.”라고 썼는데 이를 통해 임창순의 교육목표를 잘 알 수 있다. 1979년 연구소를 서울에서 지금의 남양주시 수동면 지곡서당으로 옮기고 일반인 대상 한문강좌를 폐지하였는데, 당시까지 약 5,000여 명이 청명 임창순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청류헌과 서당채 사이 잔디밭에는 김구한 도예가가 제작한 임창순 선생 추모비가 있다. 앞면엔 직접 지은 지곡정사 상량문이 여초 김응현의 글씨로 상감되어 있는데, “다만 바라는 바는 이 집에서 영원하도록 글 읽는 소리 그침이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라는 내용으로 마무리된다.

1976년부터 한국고등교육재단의 지원을 받아 5년 과정의 장학생을 10명씩 선발하고 교육하였고, 1982년부터는 3년 과정의 기숙사 체제로 전환하여 임창순이 독자적으로 운영하였다. 이 시기부터 태동고전연구소는 연구자를 양성하는 기관으로 변모하였다. 1985년 8월, 임창순과 한림대학교 일송학원 윤덕선 이사장의 약정에 의하여 태동고전연구소 부지와 서적 등 일체를 한림대학교에 기증하고, 연구소의 운영을 학교에 맡겼다. 이로써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로 발족하고, 임창순은 1999년 4월 12일 작고할 때까지 연구소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많은 연구 인재를 배출하였다. 2016년까지 약 25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하였으며, 수료생은 대부분 인문학 연구자로서 국내 주요 대학, 연구소, 박물관, 미술관, 국가기관 등 곳곳에 포진하여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이들을 이른바 ‘태동학맥(泰東學脈)’ 혹은 ‘지곡서당파(芝谷書堂派)’라 부르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이광호[1기, 국제퇴계학회 명예회장, 전 연세대 철학과 교수], 성태용[1기, 청명문화재단 이사장, 전 건국대 철학과 교수], 유초하[2기, 전 충북대 철학과 교수], 김만일[5기, 청명문화재단 상임이사, 전 한림대 태동고전연구소 교수], 하영휘[5기, 가회고문서연구소 소장, 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교수]와 같은 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태동고전연구소의 한학 연수 제도는 기숙사 체제를 기본으로 하여, 연수생이 함께 숙식하면서 한학 연수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특성화되었다. 한국 및 동양 고전 강독 및 번역 능력 배양에 역점을 둔 연구 인력 양성 사업은 한국 학계는 물론 동아시아에도 유례없는 인재 양성 사업으로 평가받는다. 중국의 국가중점대학인 중국인민대학은 2005년부터 5년 과정의 ‘국학원(國學院)’ 설립을 준비하였는데, 2007년에 부교장 일행이 연구소를 방문하여 태동고전연구소의 고유 교육 방식, 교과과정 등을 조사하였다. 당시 부교장 일행은 20분 정도 방문할 계획이었지만, 두 시간 가까이 연수생들의 학습 장면을 지켜보며 경탄했다고 전해진다. 일행이 중국으로 귀국하고 지곡서당의 모습이 중국 신문에 소개되었고, 지곡서당의 교육체계는 중국인민대학 국학원 체제에 반영되었다.

[태동고전연구소의 교육과정]

태동고전연구소는 한국 및 동양의 고전 문헌을 연구, 개발, 보급하는 동시에 한문 고전을 연구하는 전문 인력을 양성함으로써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창립되었다. 대학을 졸업한 인재를 선발하여, 인문학의 근간이 되는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기본 과목으로 하여 한국 및 동양 고전을 심도 있게 교육했던 바 있다. 태동고전연구소는 1976년 제1기 한문연수원을 선발한 이래 매년 10명의 인재를 선발하여 3년간 한문 교육을 실시하였다. 신입생은 서류 심사, 영어와 한문 필기시험, 면접을 통해 선발하였다. 선발된 연구생은 3년간 수업료를 전액 면제받았으며, 매달 일정액의 장학금을 지급받았다.

1학년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2학년은 시경, 서경, 3학년은 주역과 번역연습 수업을 필수과목으로 수강하여 사서삼경을 완독하였다. 그 외에도 선택과목으로 초서, 초서간문, 춘추좌전, 예기, 사기, 제자선독, 고문선독, 한국문집, 한시특강 등을 수강할 수 있었다. 이 가운데 1학년 때 수강하는 사서[논어, 맹자, 대학, 중용]는 배송(背誦)으로 완전히 암송해야 했으며, 2~3학년 때 수강하는 삼경[시경, 서경, 주역]은 완독해야 했다. 연구생이 암송 과목[4서]이나 완독 과목[3경]을 통과하지 못하면 학업을 진행할 수 없는 것이 원칙이었다.

[태동고전연구소의 현재]

1985년 임창순은 교육 사업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태동고전연구소 부지와 서적 등 일체를 한림대학교에 기증하고 연구소 운영을 한림대학교에 맡겼지만, 2014년 11월, 한림대학교 측에서는 재정상의 문제를 이유로 교육 사업 지원을 중단하였다. 태동고전연구소 졸업생들은 청명 임창순의 유지를 이어 가기 위해 십시일반 모금을 통해 기금을 마련하여 인재 양성 사업의 면모를 잇기 위해 노력하였다. 2015년부터 청명문화재단 부설연구소로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오피스텔을 빌려 교육 사업을 유지하였지만, 이전 남양주에서의 기숙사 체제 교육과정과는 달리 등하교 형식으로 교육하였고, 이마저도 재정적 어려움으로 인해 중단되었다.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림대학교 부설 태동고전연구소는 학술 연구 사업을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진행되는 연구 사업은 다음과 같다. 1984년 12월, 연구소 논문집 『태동고전연구(泰東古典硏究)』 창간호를 발간하였고 현재까지 발간되고 있다. 2009년 12월 한국연구재단 등재후보 학술지로, 2013년 12월 한국연구재단 등재 학술지로 선정되었다. 또한 2007년부터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지원을 받아 옛 편지 낱말사전 편찬 사업을 진행하였고, 2011년 12월, 『옛 편지 낱말사전-선인들의 간찰 읽기』를 간행하였다. 그리고 한국국고전번역원의 2010년 거점 연구소 협동 번역 사업 공모에서, 중부권 거점 기관으로 선정되었다. 2010년부터 매년 2억 5000만 원의 연구비를 지속적으로 지원받아 한말 위정척사의 대표격이자 화서학파(華西學派)의 일원인 성재 유중교[1832~1893]의 『성재집』과 강재 송치규[1759~1838]의 『강재집』을 번역하였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명곡 최석정[1646~1715]의 『명곡집』을 번역하였다.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2011년도 한국학 분야 토대 기초 연구 지원 사업 공모에서, 『성호전서 정본화사업』이라는 과제명으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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