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접·진건면 부역혐의 희생 사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428
한자 榛接·眞乾面 附逆嫌疑 犧牲 事件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금보운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단 시기/일시 1950년 9월 28일연표보기 - 진접·진건면 부역혐의 희생 사건 서울 수복 후 인민위원회 치하 주민 대상 검속 및 학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50년 10월 초 - 진접·진건면 부역혐의 희생 사건 경찰과 치안대가 부역 혐의자 등 200여 명 연행 살해
종결 시기/일시 1950년 12월 19일연표보기 - 진접·진건면 부역혐의 희생 사건 경찰과 향토방위대에 의해 주민 229명 사살
발생|시작 장소 진접면사무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68-39 진접오남행정복지센터지도보기
발생|시작 장소 진건면사무소 - 경기도 남양주시 퇴계원읍 퇴계원리 221-3 퇴계원읍종합행정타운지도보기
종결 장소 장현국민학교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장현리 383 장현초등학교지도보기
종결 장소 진건국민학교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용정리 780-1 진건초등학교지도보기
성격 사건·사고
관련 인물/단체 양주경찰서 경찰|경기도 양주군 진접면·진건면 치안대

[정의]

6·25전쟁 기간 경기도 남양주 지역에서 발생한 국가 권력에 의한 민간인 학살 사건.

[개설]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과 양주군 진건면[현 남양주시 진건읍] 주민에 대한 학살은 1950년 9월 28일 서울 수복 이후 수도권 방어선 및 북진을 진행하는 가운데 1950년 10월 초부터 12월까지 전개되었다. 양주경찰서와 그 지휘 하에 운영되었던 치안대, 향토방위대의 주도로 주민들에게 부역 혐의가 부여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총 460명 이상이 사살되었다.

[역사적 배경]

6·25전쟁 기간 북한 및 남한은 전선이 이동하는 가운데 지역을 점령할 때마다 민간인을 대상으로 각자의 이념을 바탕으로 정책을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전선 및 점령 주체가 변화함에 따라 해당 지역 주민들에 대한 부역 혐의 부여 및 이를 기반으로 한 국가 권력의 보복으로 이어졌다.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진건읍 일대에서의 부역 혐의 희생 사건도 이와 같은 역사적 배경 속에서 발생하였다.

[경과]

1950년 10월 초 한국군의 현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 수복 이후 경기도 양주군 진접면·진건면의 경찰과 치안대는 지역 주민 중 부역 혐의가 있는 주민들, 혐의를 받고 행방불명된 자, 도피한 자의 가족 등을 연행하고 살해하였다. 이후 1·4후퇴 직전인 1950년 12월 15일 경기도 경찰국의 소개 명령으로 주민들이 다시 연행되었고, 1950년 12월 19일 229명이 총살당하였다.

[결과]

1950년 10월 초부터 1951년 1월 4일, 이른바 1·4후퇴 직전까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진접읍 주민 460명 이상이 사살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진건읍 일대에서의 부역 혐의 희생 사건은 전시 계엄하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제한되는 시기였다고 하더라도 경찰과 그 지휘를 받던 치안대 및 향토방위대가 미성년자를 포함한 민간인을 의심이나 추측만으로 살해한 행위로서 정부가 국민의 생명권을 침해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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