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431
한자 加雲洞支石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6244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이종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0년 9월 6일연표보기 - 가운동 지석묘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0호 지정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6년 - 가운동 지석묘 세종대학교 박물관에서 지표 조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가운동 지석묘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지정 번호 삭제
소재지 가운동 지석묘 -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6244 지도보기
성격 무덤
양식 기반식|개석식
크기(높이,지름) 310㎝[덮개돌 길이]|148㎝[덮개돌 너비]|70㎝[덮개돌 두께]|200㎝[뚜껑돌 길이]|400㎝[뚜껑돌 너비]|50㎝[뚜껑돌 두께]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에 있는 청동기 시대 돌무덤.

[개설]

가운동 지석묘(加雲洞支石墓)는 경기도 남양주시 가운동 조운마을 과수원에 있는 고인돌이다. 가운동은 2017년 다산동으로 통합되었다. 고인돌이 있는 곳을 ‘괸돌마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본래 여러 기의 고인돌이 있었던 것으로 전하지만 민가 건립 때 구들장 등의 용도로 사용되어 대부분 소실되었다. 가운동 지석묘는 총 2건이 있는데, 하나는 1977년 발간된 『문화유적총람』에서 소개된 고인돌로 미금면 가운리 186번지에 있었다. 형식은 무지석식[개석식]으로 평지에 있었다고 전하는데, 현재는 자세한 구조나 위치를 알 수 없다. 다른 하나는 한강에서 약간 높은 구릉의 정상부에 있다. 가운리에 있는 고인돌과 동일한 고인돌인지는 불분명하다. 덮개돌 하단에는 석재가 깔려 있지만 자세한 구조는 확인되지 않는다. 덮개돌은 긴 쪽의 방향이 남쪽에서 북쪽을 향하여 인근의 한강이 흐르는 방향과 대체로 일치하며, 일부 파손되어 본래보다 크기가 작아졌다고 한다. 가운동 지석묘는 1990년 9월 6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80호로 지정되었으나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위치]

가운동 지석묘경기도 남양주시 다산동 6244번지 해발 80m의 낮은 구릉 경사면에 있다. 왕숙천한강으로 합류하는 지점에서 동쪽에 있다. 한강에 인접한 오른쪽으로는 수석동 백제 토성이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가운동 지석묘는 체계적인 보존 및 관리를 위하여 남양주시가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의뢰하여 지표 조사가 실시되었다. 이후 세종대학교 박물관은 2006년 5월부터 9월까지 해당 유적과 주변 지역에 대한 지표 조사를 실시하였으며 유적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고 주변의 유물산포지에서 토기편 등을 수습하였다.

[형태]

가운동 지석묘는 덮개돌만 지상에 노출되어 있으며 평면 형태는 사다리꼴 모양이다. 덮개돌 아래에 일부 작은 고임돌이 보여 기반식으로 추정되지만,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확한 하부 구조는 분명하지 않다. 덮개돌은 길이 310㎝, 너비 148㎝, 두께 70㎝이다. 뚜껑돌은 길이 200㎝, 너비 400㎝, 두께 50㎝이다.

[출토 유물]

『남양주문화유적』에 따르면 주변에서 돌화살촉이 수습되었다고 전한다. 이후 2006년의 지표 조사에 따르면 고인돌의 주변에 있는 능선의 서쪽과 남쪽 사면부를 따라 형성된 밭에서 유물 산포지를 확인하였다. 민무늬토기 조각이 발견되었으며, 와질토기 및 경질토기의 파편이 수습되었다. 또 고인돌 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능선의 동쪽 사면과 아래의 밭에서도 경질토기의 파편과 백자, 기와 조각이 수습되었다. 유물의 존재와 입지 조건을 고려하여 선사시대의 집터나 역사시대의 무덤 유적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의의와 평가]

가운동 지석묘는 주변 지역의 여러 고인돌 유적과 더불어 한강 유역의 청동기 시대 문화상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특히 가운동 지석묘의 경우는 덮개돌은 길이가 3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다. 고인돌이 구릉의 사면에 있는 점을 감안하면 돌을 운반하기 위하여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였을 것으로 예상되어 고인돌을 축조한 지역 주민들은 상당한 노동력을 동원할 수 있는 규모의 거주지를 형성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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