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456
한자 三旌閣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양정로219번길 33-3[이패동 342-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정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803년연표보기 - 삼정각 건립
현 소재지 삼정각 - 경기도 남양주시 양정로219번길 33-3[이패동 342-1]지도보기
성격 정각
양식 맞배지붕
관련 인물 박영신|광주 이씨|박지병|박지원|박지번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에 있는 박영신 일가를 기리기 위한 조선 후기 정각.

[개설]

삼정각(三旌閣)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 마산마을에 있는 정자각이다. 조선 후기 무신 박영신(朴榮臣)[1578~1624]과 부인 광주 이씨, 그리고 아들 박지병(朴之屛)[1601~1684]의 충심과 효행을 표창하기 위하여 박영신의 충효정문과 부인 광주 이씨의 정문, 아들 박지병의 효자정문이 있다.

[건립 경위]

박영신의 본관은 밀양(密陽)이고, 아버지는 병조참의 박종남(朴宗男)[?~1601]이다. 박영신은 1605년(선조 38) 무과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치다가 인조반정 이후 풍천부사에 부임하였다. 이괄의 난 때 반군에 협력하지 않다가 희생당하자 나라에서는 박영신을 포상하고 증직하였다. 1653년(효종 4) 정표하고 1717년(숙종 43) 증직되어 병조참판에 추증되고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박영신의 아들 박지병은 죽은 아버지의 머리를 상대편에게 보내어 사기를 잃게 하자는 계책을 낸 이수백을 동생 박지원, 박지번과 함께 죽이고, 대궐 문에 나가 용서를 빌었다. 박지병은 충신의 아들이지만 국가에서 죄를 용서한 이수백을 죽인 죄로 창평에 유배되었다. 박영신의 부인 이씨는 박영신이 죽자 걸어서 난리 속에 나가 시신을 헤쳐 보고 떠메어 돌아왔는데, 원수를 갚지 못한 것을 분하게 여겨 합장하지 말고 아들들로 하여금 아버지 원수를 갚도록 일깨웠다. 부인 이씨의 열행과 아들들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1803년(순조 3) 12월 18일 순조는 이들을 정려하라고 명을 내렸다.

[위치]

삼정각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 342-1번지에 있다. 주변은 민가와 비닐하우스로 둘러싸여 있다.

[형태]

삼정각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 형태이다. 박영신의 충신정문 왼쪽에는 부인 광주 이씨의 정문이 있고, 오른쪽에는 아들 박지병의 효자정문이 있다.

[현황]

삼정각 현판은 새로 단 것으로 보이며, 전체적으로 새로 보수한 흔적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삼정각은 사적인 복수를 금지하기 위하여 당대에는 처벌하였던 박지병에 대하여 후대에 효행을 강조하기 위하여 효자정문을 세운 사연을 담고 있다. 그러므로 조선 조정의 양가적인 모습을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 조선왕조실록(http://sillok.history.go.kr)
  • 두산백과(https://www.doop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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