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524
한자 高靈 申氏
영어공식명칭 Goryeong Sin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고령 - 경상북도 고령군
입향지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묘소|세장지 고령 신씨 봉재공파 묘역 -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산12-1 지도보기
성씨 시조 신성용
입향 시조 신해

[정의]

신성용을 시조로 하고 봉재공 신해를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세거성씨.

[개설]

고령 신씨(高靈 申氏)는 경상북도 고령을 본관으로 하고, 고려의 문신 신성용(申成用)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경기도 남양주시에 세거하는 고령 신씨는 시조 신성용의 9세손이자 조선 세종 시기의 문신인 신장(申檣)의 손자, 봉재공 신해(申海)를 입향조로 한다.

[연원]

고령 신씨의 시조 신성용은 고려 시대 호장 집안에서 태어나 고려 고종 대에 과거에 급제하였고, 검교군기감을 역임하였다. 신성용이 경상북도 고령 지역에 터를 내리면서, 후손들은 고령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이후 5세손인 순은공 신덕린(申德隣)은 고려 충목왕 대에 문과에 급제하여 예조판서와 공조판서를 역임하였고, 덕과 학문이 높아 포은 정몽주·목은 이색·야은 길재 등과 육은(六隱)으로 추앙받았다. 신덕린의 아들인 6세조 호촌공 신포시(申包翅)도 고려 말에 문과에 급제하였다. 그러나 곧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세워짐에 따라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아버지와 함께 두문동에서 항거하였고, 세종 대에 이르러서야 공조참의를 지냈다.

고려에 이어 조선에서도 고령 신씨는 재상 3명, 대제학 3명, 공신 7명, 문과 급제자 89명을 배출할 정도로 명문 가문이었다. 대표적으로 신포시의 첫째 아들인 암헌공(巖獻公) 신장(申檣)은 공조좌참판 및 집현전 제학을, 둘째인 정은공(靜隱公) 신평(申枰)은 사간원정언을, 셋째인 감찰공(監察公) 신제(申梯)는 사헌부감찰을 역임했다. 특히 신숙주를 포함한 신장의 다섯 아들들은 모두 과거에 급제하였고 신숙주는 공신의 반열에 오르고 영의정부사를 역임하였다. 이후 신장의 다섯 아들을 중심으로 지파가 형성되어 다수의 관직자와 문과 급제자를 배출하였다.

한편 고령 신씨는 신포시의 세 아들을 중심으로 7세조에서 분파가 이루어져 신장의 암헌공파(巖獻公派), 신평의 정은공파(靜隱公派), 신제의 감찰공파(監察公派)로 분관되었고, 다시 7세조의 아들을 중심으로 8세조에서는 12개의 종파가 형성되었다. 이후 9세조에는 8세조의 아들들을 중심으로 전국 여러 지방에 무수히 많은 지파가 형성되었다.

경기도 남양주시의 고령 신씨는 8세조 신중주(申仲舟)의 3남인 9세조 봉재공 신해를 시조로 하는 지파인 봉재공파라 할 수 있다.

[입향 경위]

경기도 남양주 지역 고령 신씨의 입향조는 신장의 손자인 봉재공 신해이다. 신해는 사마시를 거쳐 진사가 되었으나 벼슬에 나가지 않았다. 신해는 경기도 양주의 금촌(金村), 현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봉두산 아래에 정착하여 학문에 힘썼는데, 그로 인하여 후손들은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을 중심으로 거처하고 있다. 봉재공파는 15세기부터 2023년 현재까지 ‘봉두마을’이라 불리는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 지역에 세거하며, 봉두산에 조상 묘를 조성하고 제를 올렸다.

[현황]

1977년 간행된 『양주군지』에 따르면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 신씨는 총 150여 호로 대부분 경기도 양주구 별내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별내면]·수동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미금면[현 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 도농동, 호평동, 평내동, 일패동, 이패동, 삼패동]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었다. 2015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고령 신씨는 모두 1,760명이다.

[관련 유적]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에는 고령 신씨 봉재공파의 묘역이 조성되어 있다. 봉재공파가 경기도 남양주시 일패동에 세거하기 시작한 시기부터 한 자리에 묘역이 조성된 곳으로 신집(申潗), 신경광(申慶洸), 신범우(申範雨), 신흥구(申興求)의 묘가 있다. 입향조인 봉재공 신해의 묘는 1900년 고종 황제의 능침인 홍릉경기도 남양주시 금곡동에 조성되면서 주변 묘가 이전됨에 따라 강원도 홍천군 서면 반곡리 태행산으로 이장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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