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녕 현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530
한자 川寧 玄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사항 시기/일시 1383년 - 천녕 현씨 시조 현맹인 문과급제
입향조 생년 시기/일시 1513년 - 천녕 현씨 입향조 현수겸 출생
입향조 몰년 시기/일시 1585년 - 천녕 현씨 입향조 현수겸 사망
본관 천녕 - 경기도 여주시
입향지 별내동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천녕 현씨 묘역 -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성씨 시조 현맹인(玄孟仁)
입향 시조 현수겸(玄壽謙)

[정의]

현맹인을 시조로 하고 현수겸을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세거성씨.

[개설]

천녕 현씨(川寧 玄氏)는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인 현맹인(玄孟仁)을 시조로 한다. 조선 전기에 현수겸(玄壽謙)[1513~1585]이 경기도 양주군 화접리[현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로 이거하면서 후손들이 경기도 남양주시에 세거하였다. 천녕 현씨는 역관을 비롯하여 다수의 기술관을 배출한 대표적인 가계이다.

[연원]

‘천녕’은 경기도 여주시에 속해 있던 옛 지명으로 고구려의 술천현(述川縣), 통일 신라의 기천군(沂川郡)이었다가 고려 초에 천녕현(川寧縣)으로 개칭되었다. 이후 조선 태종 때에는 현감을 두었고, 예종 때에 여주에 병합되었다.

현맹인은 1383년(우왕 9)에 문과에 급제하고, 조선 초에 삼군부도사(三軍府都事), 사간(司諫), 안동대도호부사를 역임하였다. 그러나 시조인 현맹인 이후로의 계보는 불분명하여 자세한 가계의 연원을 파악하기 어렵다.

다만 『역과방목(譯科榜目)』에 따르면 1595년(선조 28)부터 1609년(광해군 1)에 실시한 역과와 의과, 취재에서 천녕 현씨현수겸의 증손 6인이 급제한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통해 천녕 현씨는 중인(中人) 가계로 다수의 기술관을 배출했던 것을 추정할 수 있다.

[입향 경위]

경기도 남양주시에 세거하는 천녕 현씨현수겸이 지금의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일대에 거처하면서 비롯되었다. 현수겸이 거처한 때부터 개항기까지 경기도 남양주시의 천녕 현씨에서는 다수의 중인 역관(譯官)[통역관]과 의관(醫官) 등 중인 계층의 기술관들이 배출되었다. 현수겸의 손주 대부터 역관 등이 배출되었는데, 증손주 현한일(玄漢一)은 한학 역관을, 현한일의 두 아들인 현덕윤(玄德潤)과 현덕연(玄德淵)은 모두 왜학 역관으로 활동하였다. 조선 후기에도 경기도 남양주의 천녕 현씨는 여러 기술관을 배출하였는데, 대표적으로 현일(玄鎰)은 19세기 중엽 잡과에 장원하여 한학 기술자가 되었고, 교수(敎授)와 연천현감(漣川縣監)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현황]

천녕 현씨과 관련한 기록은 불분명하여 경기도 남양주 내 인구 수를 확인하기 어렵다. 다만 2000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천녕 현씨는 전국적으로 모두 78가구에 총 240명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경기도 남양주에 거주하는 천녕 현씨 또한 소수일 것으로 추정된다.

[관련 유적]

경기도 남양주시 별내동 샛말에는 천녕 현씨의 묘역이 다수 존재한다. 입향조 현수겸의 묘가 가운데에 있고, 현수겸의 아들로 가선대부를 증직받은 현룡(玄龍)과 원종공신으로 가선대부를 받은 현무(玄武)의 묘, 한성판윤을 증직받은 현인상(玄仁祥), 부호군을 역임한 현욱(玄頊)의 묘 등 총 12개의 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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