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양 조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532
한자 豊壤 趙氏
영어공식명칭 Poongyang Cho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권기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풍양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지도보기|진접읍지도보기|오남읍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송능리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조맹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3-4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조임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조맹(趙孟)
입향 시조 조맹(趙孟)

[정의]

조맹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경기도 남양주시의 세거성씨.

[개설]

풍양 조씨(豊壤 趙氏)는 풍양현(豐壤縣)[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진접읍·오남읍 일대]에서 태어나 고려조에 문하시랑평장사를 역임하였던 조맹(趙孟)을 시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시조인 조맹이 출생하였던 풍양을 본관으로 하며, 금주공(錦州公) 조임(趙袵)을 파조로 하는 금주공파가 경기도 남양주시에 주로 세거하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에는 시조 조맹의 묘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에는 조임의 묘가 있다.

[연원]

풍양 조씨의 시조 조맹의 본명은 조암(趙岩)이었다. 조맹은 통일 신라 말엽 풍양현[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 태어나 농사를 지으며 학문과 수양에 정진하였다. 후삼국 시대 고려의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는 과정에서 영해(寧海)[현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지방에서 크게 패하여 철수하는 도중 풍양 지역을 지났다. 이때 막하의 여러 장수들의 추천으로 왕건이 직접 찾아가 풍양현에 은거하였던 조암을 등용하였고, 조암은 삼국을 통일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고려 개국 후 조암은 문하시랑평장사에 올랐고, 태조 왕건으로부터 ‘맹(孟)’의 이름을 하사 받아 풍양 조씨의 시조가 되었다. 지금도 천마산에는 왕건이 조맹을 만났다는 암굴이 있으며,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에는 조맹의 묘가 있다.

한편 시조 조맹 이후 6세의 세계는 전해지지 않고 있다. 다만 천화사전직(天和寺展直)을 역임한 조지린(趙之藺)의 경우 세계가 확인됨에 따라, 조지린을 중조로 하는 전직공파(殿直公派)가 형성되었다. 이후 조지린의 5대손인 대언공 조염휘(趙炎暉)의 아들 대에서 1남인 호군공 조사충(趙思忠)을 파시조로 하는 호군공파, 3남 회양공 조신(趙愼)을 파시조로 하는 회양공파, 4남 금주공 조임(趙袵)을 파시조로 하는 금주공파가 나뉘었다. 또한 전직공파와 별도로 고려조 평장사(平章事)를 역임한 조신혁(趙臣赫)을 중조로 하는 평장공파(平章公派)가 있으며, 평장공파는 조신혁의 3대손인 조계팽(趙季砰)의 남원공파로 이어졌다. 이처럼 풍양 조씨는 호군공파, 회양공파, 금주공파, 평장공파 등 모두 4개의 공파로 이루어져 있다. 이 외에도 세계는 확인할 수 없으나 고려조에서 상장군과 추밀원사를 역임한 조보(趙寶)를 파조로 하는 상장군공파도 존재한다. 상장군공파는 전라남도 강진군에 세거하는데, 본래 강진을 본관으로 써오다가 조선 중기 이후 환속되었다.

풍양 조씨는 조선 숙종 대 이후 세도가가 되어 재상 7명, 대제학 4명, 공신 4명, 장신(將臣)[군영의 지휘관] 7명을 비롯해 판서급 관직 30여 명을 배출하였다. 4개의 조씨공파 중 특히 회양공파에서 다수의 관직자가 배출되었는데, 이 파는 당색(黨色)에 따라 노론의 한평군파와 소론의 청교파로 나뉘었다. 이 중 한평군파는 조선 영조 대에는 국내로 고구마 종자를 가지고 들어온 조엄(趙曮)을 중심으로 조선 헌종조의 세도정치를 펼쳤다. 특히 조엄의 손자 조만영(趙萬永)은 헌종의 외조부가 되어 외척으로서 정국을 주도하였다.

[입향 경위]

시조 조맹의 묘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지역에 조성된 이후 조맹의 후손들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을 중심으로 세거했다. 특히 대언공 조염휘의 4남인 금주공(錦州公) 조임(趙袵)을 파시조로 하는 금주공파는 다른 공파와는 달리 시조묘와 멀지 않은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의 전도촌(傳道村)이라는 곳에 여러 후손들의 세장지(世葬地)를 이루고 있다. 또한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능리·송능리에도 풍양 조씨의 묘역이 형성되어 있어, 풍양 조씨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지역을 중심으로 세거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현황]

1992년 편찬된 『양주군지』에 따르면 1977년 기준 경기도 남양주에 거주하는 풍양 조씨는 모두 65가구이며, 1985년 인구 조사 결과 191가구가 거주하였던 것으로 확인된다. 2015년 실시한 인구 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남양주시에 거주하는 풍양 조씨는 모두 1,972명이다.

[관련 유적]

경기도 남양주시에는 풍양 조씨와 관련하여 시조 조맹의 묘와 파시조인 금주공 조임의 묘가 있다. 시조 조맹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송능리 산53-4에 있다. 봉분과 둘레돌은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이후 세워졌고, 묘표는 1651년과 1904년(고종 8)에 각각 세워졌다. 묘역 아래에는 신도비가 있는데 본래 1632년에 세워졌으나, 1905년(고종 9)에 재건한 것으로 조병필(趙秉弼)이 지었다.

금주공 조임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에 있으며, 그 아래로 여러 대의 세장지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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