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900547
한자 李惟命
영어공식명칭 Yi Yumyung
이칭/별칭 치순(穉順),동포(東圃),완원군(完原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한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67년연표보기 - 이유명 출생
활동 시기/일시 1801년 - 이유명 증광시 병과 23위로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02년 - 이유명 성균관전적 역임
활동 시기/일시 1811년 - 이유명 관서감진사 역임
몰년 시기/일시 1817년연표보기 - 이유명 사망
묘소|단소 이유명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산8-9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전주

[정의]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에 묘소가 있는 조선 후기의 문신.

[가계]

이유명(李惟命)[1767~1817]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치순(穉順), 호는 동포(東圃)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함릉군(咸陵君) 이직(李稷)이고, 할아버지는 공조정랑 이정황(李廷惶)이다. 아버지는 공조좌랑 이담(李埮)이며, 어머니는 예문관제학 원경하(元景夏)의 딸 원주 원씨(原州 元氏)이다. 부인은 김두칠(金斗七)의 딸 광산 김씨(光山 金氏)이며, 아들은 이관수(李觀洙)·이겸수(李謙洙)·이승수(李升洙)이다.

[활동 사항]

이유명은 1767년(영조 43)에 태어나 문음(門蔭)으로 원릉참봉이 되었다. 1801년(순조 1)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정자에 임명되었고, 1802년에는 전적이 되었다. 이후 부수찬을 거쳐 우부승지를 역임하였다. 1811년(순조 11)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자 관서감진사(關西監賑使)에 임명되어 민심을 수습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후 좌부승지·좌승지·성균관대사성·병조참판·예조참판·동지의금부사 등을 역임하고 1817년에 사망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유명의 저술로는 문집인 『동포재초(東圃齋草)』 필사본 1책이 전한다. 『동포재초』에는 각체의 시 340여 수가 창작 연대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그 내용은 주로 반송(盤松)·학(鶴)·강상(江上)·영설(詠雪)·매하소작(梅下小酌) 등 자연을 읊은 서경시가 많다. 그 외에 「북곡월야(北谷月夜)」·「미인사삼첩우증가랑(美人詞三疊又贈佳郎)」 등의 서정적인 시와 「혜경궁만장(惠慶宮挽章)」과 같은 시도 있다.

[묘소]

이유명의 묘소는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 산8-9에 있다. 묘소 앞에는 오희상(吳熙常)이 비문을 짓고 서능보(徐能輔)가 글씨를 써서 1820년에 세운 묘비가 있다.

[상훈과 추모]

이유명은 관직에 있을 때 완원군(完原君)에 책봉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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