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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401159
한자 倫洞-
이칭/별칭 장동,죽백촌,수륜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곽명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집성촌

[정의]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에 있는 순천 박씨·의성 김씨 집성촌.

[개설]

윤동 마을은 예로부터 우리 조상들이 취락 입지로 선호하던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에 형성된 마을이며, 처음에는 순천 박씨(順川朴氏)의 세거지였으나, 지금은 의성 김씨(義城金氏)가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명칭 유래]

『성주 마을지』에는 “‘수륜(垂綸)’으로 표기하던 것을 1500년대에 ‘수륜(修倫)’으로 고쳤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1832년(순조 32)쯤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성주목읍지(星州牧邑誌)』에 수륜(垂綸)으로 표기된 것으로 미루어 계속 수륜(垂綸)으로 써 온 것으로 보인다. ‘륜(綸)’은 고기를 잡을 때 쓰던 도구를 의미하므로 수륜(垂綸)은 곧 ‘낚시터’를 말한다. 이는 마을이 생기게 된 계기를 추정할 수 있는 글자이다. 또 ‘윤동’이 ‘윤동(綸洞)→윤동(倫洞)’으로 바뀌긴 하였지만, 원래의 글자인 ‘윤(綸)’에서 추정할 수 있듯이 윤동대가천(大伽川)에서의 고기잡이와 관련한 입지(立地) 지명으로 추정된다.

[형성 및 변천]

윤동 마을은 고려 전기에는 장동(長洞), 고려 후기에는 죽백촌(竹栢村)이라 불렀고, 조선 시대에는 수륜동(垂綸洞), 1500년대에는 수륜동(修倫洞)으로 썼다. 고려 후기 개성판윤을 지낸 박가권(朴可權)이 이성계(李成桂)의 세력에 불복하여 윤동 마을로 낙향하면서 순천 박씨의 세거지가 되었으나, 조선 중종(中宗) 때 의성 김씨사우당(四友堂) 김관석(金關石)[1505~1542]이 입향하면서 점점 의성 김씨 집성촌으로 변모하였다.

[자연환경]

윤동 마을수륜면 소재지의 동남부에 완만하게 굽어 도는 대가천 변 까치산[鵲山][572m] 자락에 동서로 800m가량 길게 형성된 마을이다. 전형적인 배산임수를 갖추어 취락 환경이 빼어난데, 임진왜란 때 조선을 도와주러 온 이여송(李如松)의 부관 두사충(杜師忠)이 성주의 다섯 명당(明堂) 가운데 하나로 선정하였을 정도로 사람이 살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갖추었다.

[현황]

윤동 마을은 ‘농촌 체험 마을’로 지정되어 농촌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활동지로 각광받고 있다. 또한 성주 사우당(星州四友堂), 성주 죽백 고택(星州竹栢古宅), 충신문(忠臣門) 등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외에도 유구한 전통의 집성촌답게 오래된 한옥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다. 성주 죽백 고택충신문은 원래 윤동 마을순천 박씨 세거지였음을 증명하여 준다. 2021년 12월 기준 윤동 마을에는 순천 박씨 두어 집이 살고 있으며 윤동 마을 맞은편의 대가천 건너 마산[午山] 마을에는 순천 박씨가 여럿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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