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316
한자 高麗時代
영어공식명칭 The Goryeo Dynasty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배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018년 - 예주에 방어사 설치
특기 사항 시기/일시 1310년 - 덕원소도호부 영해부로 개편

[정의]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918년부터 1392년까지의 역사.

[개설]

고려 시대 영덕 지역은 크게 영덕군(盈德郡)과 예주(禮州) 지역으로 구분된다. 영덕군은 지금의 영덕읍·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 일대, 예주는 지금의 영해면·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에 각각 해당한다.

[행정 구역 개편]

고려 초 영덕 지역은 야성군(野城郡)유린군(有隣郡)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고려 초 각각 영덕군과 예주로 개편되었다. 1018년(현종 9)에는 예주에 방어사(防禦使)를 두어 왜구의 침입에 대비하는 한편, 우산도를 편입시켜 그곳 주민들의 호적을 편입하였다. 또한, 현종 연간에는 야성군예주에 예속되었다.

영덕군은 이후 감무(監務)가 설치되어 독립하였고, 고려 후기 이후에는 현령(縣令)이 파견되면서 영덕현(盈德縣)으로 읍격 조정이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예주는 1259년(고종 46) 군리(郡吏) 출신의 박송비(朴松庇)가 김준(金俊)·유경(柳璥) 등과 함께 최의(崔竩)를 제거하고 최씨 무인 정권을 타도하였다. 그 공으로 박송비는 위사공신(衛社功臣)에 피봉되었으며, 내향(內鄕)인 예주덕원소도호부(德原小都護府)로 승격하였다. 1310년(충선왕 2) 정부에서 여러 목(牧)을 정리하는 가운데 덕원소도호부영해부(寧海府)로 개편되었다.

한편, 고려 말에는 왜구가 준동하여 영덕 지역에 군사 시설이 새롭게 개수되었다. 당시 영덕 지역 상황에 대해 권근(權近)은 「영해부서문루기(寧海府西門樓記)」에서 "성과 읍이 폐허가 되고 민가는 모두 불에 타서 재가 되었다. 여러 해 버려져 적굴이 되니 관리들은 다른 고을에서 정사를 보고 범과 산돼지가 옛 마을에 뛰놀았다"라고 하였다. 그런 가운데 왜구를 방비하고자 읍성(邑城)을 수축하고 축산성(丑山城)을 쌓았다.

[고려 시대 영덕의 인물]

권근은 고려 후기 영덕 지역에 대해 "산이 막히고 바다에 맞닿아 땅은 궁벽(窮僻)하며, 깊숙이 자리해 여름에는 서늘한 바람이 많고, 겨울에는 그리 춥지 않다"라고 평가하였다. 또한 "물고기·자라·전복·조개 등 해산물이 풍부"한 고장이라고 하였다. 농업과 더불어 바다를 무대로 다양한 수산물을 확보할 수 있는 고을이었다. 이렇듯 영덕 지역은 물산이 풍부하여 일찍이 저명한 인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고려 시대 영덕 지역의 토착 세력은 토성(土姓)의 존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조선 초기 편찬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에 따르면 영덕현의 토성은 이(李)·김(金)·조(曺), 촌성은 윤(尹)·조(趙)·정(鄭)·주(朱), 내성은 박(朴)으로 나타나며,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는 토성만 박(朴)·김(金)·황(黃)·이(李)·임(林)·신(申)으로 확인된다. 이 가운데 영덕현에서는 김·정·박, 영해도호부는 박·이·김씨 가문이 고려 시대를 거치는 동안 관인을 배출하였다. 이들의 성장은 당시 혼인 관행인 남귀여가혼(男歸女家婚)을 매개로 타 지역 출신 성관(姓貫)의 영덕 이주를 촉진하였다. 그 결과 고려 중기 이래 토성 및 이주 성관 출신 인사들의 활동이 두드러진다.

먼저 영덕군에서 호장직(戶長職)을 세습하던 김씨들이 상경종사하여 유력한 가문과 혼인하였는데, 고려 예종 때 국자좨주(國子祭酒)에 등용된 권적(權適)도 김씨와 혼인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영해박씨(寧海朴氏) 가문에서 현달한 인사가 많이 배출되었다. 우선 박송비가 공신으로 책봉되어 예주덕원소도호부로 승격되었다. 박세통(朴世通)과 아들 박홍무(朴洪茂), 손자 박감(朴瑊)이 모두 고위직에 올랐던 인물이다. 그 외 평산신씨(平山申氏)[영해신씨(寧海申氏)] 신현(申賢)·신용희(申用羲)·신득청(申得淸)도 현달하였다. 이주 성관 출신인 대흥백씨(大興白氏) 백문보(白文寶)는 충숙왕 및 충혜왕 대에 간관(諫官)으로 활동한 인물이다. 고려 말에는 이곡(李穀)영해부 지역에 우거하였는데, 그 아들이 이색(李穡)이다.

[주요 유적]

고려 시대 영덕 지역은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대표적인 사찰로는 유금사(有金寺)장육사(莊陸寺)를 비롯해 옥천사(玉川寺)·사자갑사(獅子岬寺)·용천사(龍泉寺) 등이 있었다. 그 외에도 달산면 용평리, 남정면 남호리 등에 이름이 전하지 않는 절터가 남아 있다. 이 중에서도 장육사에는 고려 말 고승 나옹(懶翁)과 관련된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유물 산포지 중에서는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삼사리, 남정면 도천리회리 유적 등을 통해 고려 시대 영덕 사람들의 생활 모습을 추적할 수 있다. 또한,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 요지에서는 다수의 가마벽체가 확인되어 청자를 비롯한 여러 수공업품이 생산되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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