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1019
한자 莊陸寺
영어공식명칭 Jangyuksa Temple
이칭/별칭 장륙사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172[갈천리 120]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박병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355년연표보기 - 장육사 건립
중수|중창 시기/일시 1677년 - 장육사 재창(再創)
중수|중창 시기/일시 1900년 - 장육사 중수(重修)
최초 건립지 장육사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172[갈천리 120]
현 소재지 장육사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172[갈천리 120]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나옹
전화 054-732-6289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갈천리에 있는 사찰.

[개설]

장육사(莊陸寺)는 1355년(공민왕 4)에 나옹선사(懶翁禪師)[1320~1376]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고찰(古刹)로서, 현재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佛國寺)의 말사(末寺)이다.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盈德莊陸寺乾漆觀音菩薩坐像)’, ‘장육사 대웅전(莊陸寺大雄殿)’, '「영덕 장육사 영산회상도(盈德藏陸寺靈山會上圖)」', '「영덕 장육사 지장보살도(盈德藏陸寺地藏菩薩圖)」’ 등의 문화유산이 남아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장육사’라는 사찰 이름은 주변의 산세가 발이 여섯 개인 거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것이다. ‘장(莊)’은 한길 장으로 새길 때는 여섯 갈래의 큰 거리를 뜻하게 된다. ‘륙(陸)’ 자 또한 여섯 육으로 새길 때는 숫자 육(六)의 대용으로 쓰이기 때문에 두 글자 모두 6을 상징한다. 이와 같은 지세의 덕으로 나옹이 이곳에서 태어났고 나옹의 고향에 세운 절이라 하여, 나옹이 정기를 받은 발 여섯 개의 거북을 닮은 산을 상징해 이름을 장육사로 지었다고 한다.

장육사는 1355년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고 하나, 조선 초기의 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기록이 없다. 18세기 중엽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비로소 “장육사는 영해부 서쪽 가을면산(加乙面山)에 있다.”고 하였으며, 18세기 말의 『범우고(梵宇攷)』에는 “장육사는 영해부 서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19세기 전반의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에 “장육사는 영해부 서쪽 가을면산에 있다”고 하였으며, 19세기 후반의 『영남읍지(嶺南邑誌)』에는 “장육사는 영해부 서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다. 또한 일제강점기의 『교남지(嶠南誌)』에는 “장육사는 운루산(雲樓山)에 있는데 홍련암(紅蓮庵)이 있다.”고 하였다. 이를 종합해 볼 때 장육사는 고려 말에 창건되었다가, 조선 초 세종 무렵 산불로 소실된 것을 중건하였으며, 임진왜란으로 폐사되었다가 1677년(숙종 3)에 중수하면서 재창한 것으로 추정된다. 1900년(광무 4)에 운서(雲棲) 이현규(李鉉圭)가 중수하였으며, 2001년에 범종각을 세우고, 2005년에는 산령각을 해체·보수하였으며, 홍련암 단청도 하였다. 2007년에 관음전을 신축하여 대웅전에 있던 건칠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였다. 2009년에는 일주문을 건립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활동 사항]

장육사는 템플스테이로 유명한 사찰로 알려져 있다. 한국불교문화사업단에서 ‘2019 템플스테이 우수 운영 사찰’로 선정되기도 하였다. 장육사는 지역의 독거노인들과 불국사 노인요양시설인 성림원에 쌀을 기부하기도 하고, 매년 불우한 이웃과 저소득 계층을 위한 기부 활동도 하고 있다. 또 2015년에는 영덕군 전통음식 발전과 건강한 먹거리 대안으로서 사찰음식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사찰음식 체험마당을 진행하였고, 2017년에는 고려 말 선교 양종[선종(禪宗)과 교종(敎宗)] 통합을 통한 불교 혁신과 중흥에 앞장섰던 나옹선사의 뜻을 기리기 위한 나옹문화제와 산사음악회를 개최하였으며, 2019년 태풍 피해로 지친 지역민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 위로와 희망을 전하기 위해 산사음악회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장육사 전각은 불전인 대웅전(大雄殿)과 관음전(觀音殿), 출입문 격인 흥원루(興遠樓), 요사채인 육화당(六和堂)과 심진당(心眞堂), 산령각·범종각·공양간 그리고 산내 암자인 홍련암과 미유암(瀰瑜庵)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장육사의 대웅전은 조선 중기 때의 건물로 추정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기와지붕 양식으로 벽면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373호]인 「영덕 장육사 영산회상도」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374호]인 「영덕 장육사 지장보살도」가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지붕 양식이다. 보물[제993호]인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을 봉안하고 있다.

장육사의 출입문 격인 흥원루는 목조로 된 2층 누각으로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기와지붕 양식이며, 1층 중앙 출입문 좌우로 운서산방과 종무소가 있다. 흥원루를 들어서면 좌우에 각각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기와지붕 양식의 템플스테이 공간인 육화당[이화, 계화, 의화, 구화, 신화]과 심진당[지공, 나옹, 무학, 임제, 평산]이 있다. 산령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기와지붕 양식으로 산신탱을 봉안하고 있다.

홍련암은 나옹선사가 처음 수행을 시작한 곳이라 알려진 곳으로 고려 말, 조선 초 3대 화상인 지공대사, 나옹선사, 무학대사(無學大師)[1327~1405]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관련 문화재]

장육사에는 보물 1점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3점 등 지정문화재 4점을 보유하고 있다. 관음전에 봉안된 보물[제993호]인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은 높이 86㎝로 원문(願文)과 개금묵서명(改金墨書銘)을 통해 1395년(태조 4)에 조성되었으며, 1407년(태종 7)에 개금(改金)하였다. 영덕 장륙사 건칠관음보살좌상 신체의 굴곡은 그다지 심하지 않으나, 옷깃과 소매, 배, 다리까지 장신구를 둔 것은 조선 초 관음보살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138호]인 ‘장육사 대웅전’은 조선 초 건립되었으며 당대의 특이한 기교를 잘 지니고 있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기와지붕 양식이다. 대웅전 내부는 공간 활용을 위해 우물마루를 깐 통칸으로 처리하고 불단과 불상을 안치하고 불단 위에는 보개천정(寶蓋天井)을 두었다. 가구나 보아지[공포를 구성하는 부재 가운데 대들보와 종보를 떠받치는 받침]의 형상, 천장 등에서 임진왜란 이전의 고식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화려한 금단청, 빗천장의 주악비천상, 좌우 벽체의 보살상 벽화는 독특한 필법으로 예술적 가치가 높은 수준이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373호]인 「영덕 장육사 영산회상도」는 대웅전 삼존불상 뒤편에 설치된 후불탱화로 정상계주(頂上髻珠)와 중앙계주(中央髻珠)가 뚜렷하고 악귀를 누르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 모양을 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수많은 권속(眷屬)들, 문수·보현 등의 8대 보살, 제석, 범천, 십대제자, 사천왕, 팔부중, 용왕, 용녀 등을 잘 묘사하고 있다. 각 상의 균형 잡힌 상태, 광배를 장식하고 있는 섬세하고 아름다운 보상화 문양, 채색 기법 등에서 18세기 중엽[1764년(영조 40)에 조성] 불화의 특징을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며, 불상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제374호]인 ‘「영덕 장육사 지장보살도」는 대웅전 우측 벽면에 설치된 탱화로 중앙의 주존인 지장보살은 비구(比丘) 형상으로 삭발을 하고 있고, 손에는 석장(錫杖)과 투명한 보주(寶珠)를 지니고, 천의(天衣) 대신 가사(袈裟)를 입고 있으며 결가부좌(結跏趺坐)를 하고 있다.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명부시왕과 판관, 녹사 등의 권속을 표현하였으며, 상단에는 이부동자와 보살을 묘사하고 있다. 강조된 본존 주위를 조그맣게 묘사된 많은 권속들이 둥글게 에워싼 구도를 취하고 있으며, 장식 문양과 화사한 채색, 여러 곳에 금채(金彩)를 사용하는 등 장식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1764년(영조 40)에 조성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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