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승』 「영덕현·영해부 지도」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500535
한자 地乘盈德縣寧海府地圖
영어공식명칭 『Jiseung Map』 「Yeongdeok-hyun·Yeonghae-bu Map」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경상북도 영덕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감병훈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청구기호 - 奎15423-v.1-6
현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소유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관리자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정의]

조선 후기에 제작된 전국 군현지도인 『지승』에 실린 영덕현·영해부의 지도.

[개설]

『지승(地乘)』은 조선의 군사 관방처(關防處)와 전국 군현을 그린 지도책으로 총6책으로 편성되어 있다. 지도의 전반적인 형태와 구성 및 내용이 『해동지도(海東地圖)』, 『광여도(廣輿圖)』, 『여지도(與地圖)』, 『안동도회(安東都會)』와 비슷하기 때문에 동일 필사본 계통으로 분류된다.

[형태 및 구성]

『지승』은 채색 필사본 회화식(繪畫式) 지도로 가로 19㎝, 세로 27㎝이며, 총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덕현·영해부」 지도는 3책인 경상도편에 실려 있다. 영덕은 조선시대에 영덕현영해부의 군현으로 존재했기에 이들 고을은 각각의 지도로 그려져 있다.

「영덕현」의 면리(面里)는 분홍색 바탕의 적색 직사각형 기호로 표현되어 있으며, 지도에는 동면(東面)·서면(西面)·중남면(中南面)·외남면(外南面)·북면(北面)이 있다. 산맥은 녹색 바탕의 ‘∧’형 모양이 연접한 회화로 그려졌고 남쪽에 자리한 산의 이름은 생략되었다. 북쪽에는 임울현(林㭗峴)·변현(弁峴)이 청송부(靑松府)와 진보현(眞寶縣)과 경계를 삼고 있다. 동쪽은 백운산(白雲山)·오보산(烏保山)이 영해부(寧海府)와 접하고 있고, 서쪽으로 자리한 대둔산(大芚山)팔각산(八角山), 소지산(所之山)이 경주와 인접하고 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물줄기가 각 산에서 발원하여 용추(龍湫)를 지나 오십천(五十川)으로 모여든 후 읍성을 지나 동해로 빠져 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영해부」의 방리(坊里)는 분홍색 바탕으로 된 적색 직사각형의 기호가 사용되었으며, 남면과 북면 및 석보면(石保面)·오어면(烏於面)이 기입되어 있다. 산맥은 녹색으로 된 ‘∧’형 모양을 사용하여 연결했으나 자세하게 맥세(脈勢)를 표현하지는 않았다. 영해부에 자리한 산은 읍치를 기준으로 남쪽에는 경악산(鯨岳山)과 백운산(白雲山)이 영덕현과 접하고 있으며, 북쪽의 덕현산(德峴山)과 천마암(天摩巖)이 영양군(英陽郡)과의 경계를 구분 짓고 있다. 동쪽으로는 망일봉(望日峯)과 대소산(大所山)이 바다와 인접하며, 서쪽은 광산(廣山)이 진보현(眞寶縣)과 경계를 나누고 있다. 하천은 청색 바탕의 실선이 각 산에서 발원하여 읍성을 지나 동해로 흘러나가는 모습을 형상화했는데 각 하천의 이름은 생략되어 있다.

[특징]

「영덕현 지도」에서 읍내는 성첩(城堞)이 달린 읍성 안에 있으며, 이 성안에 동헌(東軒)과 객사(客舍)·아사(衙舍)·군기(軍器) 등의 주요 관청이 집 형태의 그림으로 묘사되었고 특히 객사는 솟을문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동문(東門)과 남문(南門)은 문루로 표현된 반면에 서문(西門)은 청심루(淸心樓)와 후락당(後樂堂)이 성루(城樓)로 그려졌다. 도로는 적색 실선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남문 앞에 자리한 홍문(紅門)을 기준삼아 각 사방으로 뻗어 나가고 있다. 학교인 향교와 서원 및 지품원(知品院)이 맞배지붕 형태의 범례로 표시됐고, 형승으로 호호대(浩浩臺)가 기암절벽의 그림으로 나타나 있다. 각 포구는 하저포(下渚浦)·강구진(江口津)이라는 글자로만 표기되었고, 봉대는 불을 형상화한 범례를 사용하였다. 영덕현에 소재하던 각 역은 적색 바탕의 직사각형 범례로 표시되었는데, 주등역(酒登驛)과 남역(南驛)이 표기되었다. 뒷장에는 영덕현의 주기(註記)가 나열되어 있다. 제일 먼저 영덕현과 서울과의 거리가 기록되어 있고, 그 뒤로 호구수(戶口數)·전세(田稅)·군액(軍額)·성곽 및 인근 군현과의 거리 내용이 실려 있다.

「영해부 지도」에서 읍치는 성첩이 그려진 원형의 성곽이 사용되었고 그 안으로 주요 관청이 자리하고 있다. 객사는 솟을문 형태의 범례로 묘사됐고, 동헌과 아사 및 군기와 창고는 맞배지붕 기호로 표현하였다. 성문으로 남문과 서문이 그려져 있는데, 남문은 방어시설인 옹성(甕城)이 표시되어 있으며 성안에는 해안루(海晏樓)라는 이층 누정도 존재하고 있다. 교육시설인 향교와 서원도 집 모양의 기호를 사용했는데 서원의 명칭은 생략되었다. 서원은 읍치와 가까운 곳이 인산서원(仁山書院)이고 바로 뒤편에 자리한 곳은 단산서원(丹山書院)이다. 역원으로 창수원(蒼水院)과 광제원(廣濟院)의 창고가 있고, 봉대로 대소산봉대(大所山熢臺)와 광산봉대(廣山烽臺)가 봉수형태의 범례로 표현되었다. 도로는 적색 실선으로 묘사되었는데 남문을 기준으로 해서 인접한 군현과 연결되고 있다. 다음 장에는 영해부의 주기가 실려 있는데 원호(元戶)·인구(人口)·전세(田稅)·군정(軍丁)의 정보가 기록되어 있고, 읍치를 중심으로 각 면리의 거리 및 서울과의 거리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지승』 「영덕현·영해부 지도」는 18세기 후반 영덕 지역의 인문·경제·군사·사회의 변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사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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