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261
한자 寧越邑
영어공식명칭 Yeongwol-eup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윤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37년 4월 1일연표보기 - 강원도 영월군 영월면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60년 1월 1일연표보기 - 강원도 영월군 영월면에서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으로 승격
성격 법정읍
면적 172.4㎢
가구수 10,798가구
인구[남/여] 20,799명[남 10,637명|여 10,162]

[정의]

강원도 영월군에 속하는 법정읍.

[개설]

영월읍은 영월군의 행정과 문화의 중심으로 영월군 전체 인구의 약 55%가 거주한다.

영월읍에 속하는 행정구역은 거운리, 덕포리, 문산리, 방절리, 삼옥리, 연하리, 영흥리, 정양리, 팔괴리, 하송리, 흥월리가 있다.

영월읍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은 조선 시대부터 관아가 있던 영흥리와 현재 군청이 있는 하송리이다. 영흥리하송리영월읍 전체의 3분의 2 정도의 인구가 산다. 영흥리하송리는 오랜 기간 영월의 중심부로 있어서 각종 행정기관이 밀집되어 있다. 또한 영월읍에 있는 영월문화재단, 영월도서관, 월담도서관, 영월군청소년수련관, 영월문화원 등 다양한 공공 문화시설에서는 주민 대상 평생교육 강좌가 운영되고 있다.

[명칭 유래]

영월군에 대한 기록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서는 “본래 고구려의 내생군(奈生郡)이다. 신라가 내성군(奈城郡)으로 고쳤고, 고려는 지금의 이름으로 고쳐 원주(原州)의 속현으로 하였다. 공민왕 21년[1372년]에는 이 고을 사람인 환자(宦者) 연달마실리(延達麻實里)가 명나라에 있으면서 국가에 공이 있다고 하여 군(郡)으로 승격시켰다. 본조(本朝)에서는 그대로 하였다. 공정왕(恭靖王) 원년에 충청도에서 떼내어 본도에 예속시켰다.”라고 하였다. 이를 통하여 고려 초기부터 영월이라는 명칭이 쓰였음을 알 수 있다.

[형성 및 변천]

영월군은 조선 초 태종 때에 소속을 충청도에서 강원도로 바꾼 이후, 여러 차례의 군(郡) 경계가 조정되었다. 숙종 때 단종의 복권과 함께 단종의 능이 있는 지역이라 하여, 군에서 부(府)로 승격되었다. 조선 말에 다시 군으로 바뀐 이후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다. 여러 차례 영월군의 경계가 조정되었으나, 영월이 부였던 시절이나 군이었던 시절을 막론하고 영월읍은 영월군의 읍치(邑治)로서 행정의 중심지였다.

1937년 4월 1일[강원도령 제8호] 군내면영월면으로 개칭되었다. 1960년 1월 1일 법률 제539호 「읍 설치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영월면상동면 연하리를 편입하여 영월읍으로 승격되었다. 법률 제539호의 제정 이유를 보면, “영월면영월군청 소재지로서 동군(同郡)의 중심 지방이며 근년 영월탄광의 개발과 아울러 영월화력발전소의 시설 확장, 영월 철도의 개통 등으로 인하여 비약적 발전을 보게 되어 현재 인구, 재정, 도시 형태 등에 있어서 읍의 설치 요건이 구비되어 있으므로 이를 읍으로 승격시키고”라고 하였다. 그리고 “강원도 영월군에 영월읍을 두고 그 관할구역을 영월면 일원 및 상동면 연하리로 함”이라고 되어 있다.

[자연환경]

영월읍은 동쪽으로 한강의 본류인 동강이 흐르고, 서쪽으로는 서강[평창강]이 흐르는데, 동강서강영월읍의 남쪽에서 합류하여 남한강을 이룬다. 행정구역으로 영월읍동강서강 그리고 남한강에 둘러싸인 지역이지만, 일반적으로 영월읍이라고 하면 과거 영월군의 읍치인 현재의 영월읍 영흥리 지역을 말한다.

영월읍의 진산은 발산으로 읍의 북쪽에 있고, 동으로 봉래산정양산, 남으로 태화산, 서쪽으로는 검각산영월읍을 둘러싸고 있다. 영월읍 지역은 분지로 산간 지역인 영월군에서는 상당히 큰 편의 평지가 있다. 방절리구하도 지역도 상당히 넓은 들인데, 현재는 농업보다는 다른 용도로 쓰이고 있다.

[현황]

영월읍의 면적은 172.4㎢이고, 2020년 현재 55개 행정리와 11개 법정리로 구성되어 있으며, 2021년 12월 현재 인구는 10,798세대, 20,799명[남자 10,637명, 여자 10,162명]이다.

조선 시대 영월부 관아는 2016년 3월 8일 대한민국의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영월부 관아영월읍 영흥리에 있다. 영월부 관아에는 자규루(子規樓)관풍헌(觀風軒)[강원도 유형문화재]이 있다. 영월이 중요한 지역이 된 가장 중요한 계기는, 숙종 때 단종이 복권되면서 영월이 도호부(都護府)로 승격된 것이다. 현재도 영월에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것은 영월 장릉(莊陵)[사적]을 중심으로 한 단종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2009년 조선왕릉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면서, 영월읍장릉도 포함되었다. 잘 알려진 대로 영월 장릉은 조선 제6대 임금 단종의 묘이다. 그러나 장릉은 처음부터 왕릉으로 조성된 것이 아니었다. 단종이 쫓겨나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세상을 떠난 후, 단종의 시신을 영월의 호장 엄흥도(嚴興道)가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가매장하였다. 이후 1516년(중종 11) 묘를 찾아 봉분을 만들었고, 1580년(선조 13)에는 상석이나 표석 등의 석물을 세웠다. 그 후 1698년(숙종 24) 단종대왕으로 복위되면서 능을 만들고 능호를 장릉이라고 하였다. 조선왕릉은 몇몇 북한 지역에 소재한 것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서울과 경기도에 있으므로, 강원도 영월에 있는 장릉은 대단히 독특한 것이다. 이런 면에서 장릉영월읍을 알리고 전국적인 관심을 끌 수 있는 중요한 관광자원이다. 또한, 영월읍에는 장릉 이외에 관풍헌, 자규루, 창절사(彰節祠)[강원도 유형문화재], 영모전(永慕殿)[강원도 유형문화재], 영월향교[강원도 유형문화재], 영월 정종대왕 태실 및 태실비[강원도 유형문화재], 영월 연하동굴(蓮下洞窟)[강원도 기념물], 보덕사 극락보전(報德寺極樂寶殿)[강원도 문화재자료], 금강정(錦江亭)[강원도 문화재자료], 금몽암(禁夢庵)[강원도 문화재자료], 민충사(愍忠祠)[강원도 문화재자료], 영월 왕검성(王儉城)[강원도 문화재자료]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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