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418
한자 陰地-
영어공식명칭 Eumjimaeul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흥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정의]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에 있는 자연마을.

[개설]

강원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양지마을 건너편에 있으며, 뒤쪽으로 높고 험준한 목우산(牧牛山)[1.066m]을 두고 있는 자연마을이다. 음지마을에는 강원경찰의 녹전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하여 1981년에 녹전전투 호국경찰 전적비(碌田戰鬪護國警察戰蹟碑)를 건립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강원경찰은 영월화력발전소·마차리탄광·상동중석광산을 사수하기 위하여 김인호 총경을 영월지구전투사령관으로 임명하였다. 그 당시 상동에 주둔하고 있던 전경 제1중대장 김해수(金海洙) 경위는 1950년 7월 7일 50명의 대원을 인솔하여 영월화력발전소를 지키기 위하여 상동을 출발하여 솔치고개에서 북한의 척후병 2명을 사살하고, 녹전교 부근에 집결한 1개 소대를 격퇴하였다. 이후, 후방에 있는 적 1개 대대 병력과 벌어진 전투에서 김해수, 석상익(石商益) 경위 등 24명이 전사하고 나머지 경찰들도 대부분 중경상을 입었다.

또, 음지마을 뒤쪽의 목우산은 험준한 산악 지대로서, 1949년 남로당의 빨치산[Partisan]은 강동정치학원 출신인 대대장 박갑수[가명 호림(虎林)]와 연규백을 중심으로 목우산에 본부를 설치하였다. 빨치산은 남로당 재건 공작과 우익 인사에 대한 살상과 식량, 금품, 의류 등 약탈을 일삼았다. 1950년 2월 8일 상동지서의 박운선 등 경찰관 5명이 목우산 아지트를 공격하여 박갑수와 연규백을 사살하여 영월군당위원회인 빨치산의 조직은 완전히 무너졌다. 지금은 1962년에 건립된 목우사라는 절이 있다.

[명칭 유래]

음지마을양지마을 남쪽으로 험준한 목우산 아래 있는 마을이다. 항상 햇볕이 비치지 않으므로 ‘음지마을’이라 한다.

[형성 및 변천]

음지마을은 300여 년 전 한양이씨가 터를 잡고 살았다.

[현황]

양지마을의 녹전사거리에서 충혼교를 지나면 음지마을의 녹전4리 마을회관과 산솔면복합체육센터가 나온다. 녹전터널을 빠져나온 국도 제31호선옥동천을 건너서 음지마을 사이를 가로질러 다닌다. 음지마을은 2021년 현재 20여 가구 40여 명의 주민들이 농업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다.

[참고문헌]
  • 『영월군지』 (영월군지편찬위원회·영월군, 2019)
  • 인터뷰(강원도 영월군 중동면 녹전리 주민 양승우, 남, 66세, 2021.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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