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삼국 시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530
한자 原三國 時代
영어공식명칭 The Proto-three Kingdoms Period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선사/철기
집필자 방기철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9년 - 방절리 유적A 지표조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3년 - 팔괴리 유적발굴 조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4년 - 삼옥리 유적C, 주천리 유적A 지표조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4년 - 외룡리 유적B 지표조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4년 - 주천리 유적B 지표조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6년 - 문산리 유적 발굴 조사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07년~2008년 - 삼옥리 유적C 발굴 조사

[정의]

강원도 영월 지역에 철기 문화가 유입되는 단계부터 삼국 시대 이전의 역사.

[개설]

우리나라 역사에서 철기 시대는 기원전 300년경부터 시작된다. 철기 시대는 다시 청동기 시대 후기와 겹치는 기원전 3000년부터 기원전·후까지를 초기 철기 시대, 기원전·후부터 300년까지를 원삼국 시대로 구분하기도 한다. 원삼국 시대는 선사 시대로부터 역사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라 할 수 있는데, 청동기의 실용성이 소멸되고 철기 생산이 본격화되었다. 각종 도구가 철로 만들어지면서 농업생산력이 향상되었고, 그 결과 인구 증가와 계급 분화가 진행되었다. 원삼국 시대는 고대국가 체제를 마련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한 시기로 철기 시대Ⅱ기, 삼한 시대, 부족국가 시대, 성읍국가 시대, 삼국 시대 전기 등으로 명명하기도 한다. 1989년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에서 원삼국 시대 경질무문토기(硬質無文土器) 조각이 채집되어, 영월 지역에 원삼국 시대 유적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처음 제기되었다. 이후 1990년대 이후 발굴 조사를 통하여 원삼국 시대 유적들이 확인되었고, 2019년 영월 지역에는 총 18곳의 원삼국 시대 전후 유적지가 조사되었다.

[유적과 유물]

강원도 영월 지역의 대표적인 원삼국 시대 유적은 삼옥리 유적C, 문산리 유적, 팔괴리 유적, 주천리 유적A, 주천리 유적B 등이다. 삼옥리 유적C는 동강의 충적 대지 여금앞들에 있다. 2004년과 2006년 지표조사를 통하여 유물산포지로 알려졌고, 2007년과 2008년 예맥문화재연구원이 발굴 조사를 실시하여 주거지, 수혈유구(竪穴遺構), 고상가옥(高床家屋) 등의 유구를 발견하였다. 삼옥리 유적C는 2세기 중엽부터 3세기 후엽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산리 유적은 동강의 하안 충적 대지에 있다. 2004년 지표조사를 통하여 철기 시대 유물산포지로 알려졌고, 2006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발굴 조사 결과 주거지 1기가 조사되었다. 3세기 전반 유적인 것으로 여겨지며 주거지 평면은 여(呂) 자형으로 면적은 88㎡으로 큰 규모이다. 내부 시설로는 화덕자리[爐址]·바닥 시설·주공·벽체 시설 등이 확인되었다.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打捺文土器)·석촉(石鏃)·그물추[漁網錘]·가락바퀴[紡錘車] 등이 출토되었다.

팔괴리 유적은 남한강 상류 강안의 서측 충적 대지에 있다. 2003년 강원문화재연구소의 발굴로 원삼국 시대 주거지와 삼국~고려 시대 주거지가 확인되었다. 원삼국 시대 주거지는 1기만 조사되었는데, 주거지 평면은 육각형이며 면적은 40㎡이다. 화덕자리·바닥 시설·벽체 등의 내부 시설이 확인되었고, 경질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 돌도끼[石斧]·숫돌[砥石] 등이 출토되었다. 그 외 단조철부(鍛造鐵斧), 꺽쇠, 광석으로부터 금속을 빼내고 남은 찌꺼기인 슬래그(slag) 등이 출토되었는데, 출토 유물들은 철기의 제작 및 사용과 관련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팔괴리 유적은 3세기 후반부터 4세기 중엽의 유적으로 추정된다.

좌평들에 있는 주천리 유적A에서는 원삼국 시대 주거지 4기가 발견되었는데, 무문토기와 타날문토기류, 철기와 석기 등이 출토되었다. 남한강 수계인 주천강 주변 북쪽 충적 대지 창촌들에 있는 주천리 유적B에서는 주거지 9기가 발견되었는데, 평면은 여(呂) 자형 4기, 철(凸) 자형 5기로 구분된다. 그 외 도랑유구[構遺構] 2기, 수혈유구 2기 등도 발견되었다. 주천리 유적에서는 경질무문토기류, 타날문토기류, 갈돌[磨石]·숫돌·석촉 등의 석기류, 쇠손칼[鐵刀子]·철정·쇠낫[鐵鎌]·쇠화살촉[鐵鏃] 등의 철기류, 가락바퀴 등이 출토되었다. 특히 주거지에서 조와 기장, 대마 종자 등이 발견되어 당시의 식생활과 농경의 모습을 알려 주고 있다. 주천리 유적B는 2세기 중반부터 3세기 중반 유적으로 추정된다.

[역사적 의의]

영월 지역에 존재하는 원삼국 시대 유적 대부분은 생활 유적이다. 이러한 사실은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의 선사 시대를 거쳐 역사시대에도 영월 지역이 여전히 사람들의 생활터전이었음을 보여 준다. 발굴 조사 결과 중부 지역과 강원도 동해안에서 유행하였던 중도유형문화(中島類型文化)의 여자형과 철자형 주거지, 청동기 시대 무문토기보다 단단한 경질무문토기와 경질무문기를 이어 철기 시대를 대표하는 타날문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그뿐만 아니라 한성 백제 시대 유행하였던 육각형 주거지도 발견되어, 주거 문화의 다양성을 보여 주고 있다. 원삼국 시대 영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은 중도 유형문화를 공유한 것으로 보아 예족(濊族)의 일원으로 여겨진다. 다만 예족 사회의 맥국(貊國)인지, 예국(濊國)인지, 삼한 중 마한에 속하였는지 진한에 속하였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백제가 원주 지방을 지배하면서 영월 지역은 백제의 영향에 들어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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