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0774
한자 金水東
영어공식명칭 Kim Soodong
이칭/별칭 김여동(金呂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엄찬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4년연표보기 - 김수동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8월 7일 - 김수동 영월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 시기/일시 1908년 8월 13일 - 김수동 일제 경찰에게 체포
활동 시기/일시 1908년 9월 30일 - 김수동 징역 10년을 언도
추모 시기/일시 2015년연표보기 - 김수동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주천면 -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영월 - 강원도 영월군
활동지 영월 - 강원도 영월군
성격 의병
성별 남성

[정의]

개항기 강원도 영월 출신의 의병.

[개설]

김수동(金水東)[1874~?]은 1874년(고종 11) 지금의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에서 태어났다. 정미의병 시기 영월 지역에서 항일 의병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여동(金呂東)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1905년 을사늑약 체결 이후 고종 황제는 을사늑약의 무효화를 청원하기 위하여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였다. 일제는 이를 빌미로 1907년 고종 황제를 강제로 퇴위시켰고, 순종 황제를 즉위시킨 후 한일신협약을 체결하였다. 한일신협약으로 대한제국의 통치권이 대부분 통감부로 넘어가고 부속 협약에 의하여 군대마저 해산당하자, 해산 군인들이 의병에 참여하며 정미의병이 전국적으로 거세게 일어났다. 당시 김수동홍광여(洪光汝)·곽양일(郭良一)·서병순(徐丙順)·김춘일(金春一)·정기옥(鄭琦玉) 등과 함께 영월에서 의병을 일으켜 항일투쟁에 참여하였다.

김수동은 1908년 8월 7일 동지들과 함께 영월군 우변면[현 주천면] 가오개리(加五介里)에서 잡화상 이준용(李俊用)으로부터 군자금 240원과 군수물자 12점을 모집하여 거안리(巨安里)로 이동하였다. 이후 김수동은 제천경찰서에서 파견된 일본인 순사 3명과 한국인 순사 2명에게 8월 13일 체포되었고, 1908년 9월 30일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수동의 공적을 기려 2015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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