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생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1203
한자 衣生活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최명환

[정의]

강원도 영월군에서 몸에 걸치거나 입었던 의류 및 의류와 관련된 생활풍습.

[개설]

영월군 의식주 가운데 시대에 따라서 변화가 큰 것이 의생활이다. 특히 근대 이후 화학 섬유의 발달과 기성복의 대량 생산으로 인하여 무명·명주·삼베 등을 재료로 만들던 전통 의복이 거의 사라지게 되었다. 현재는 무명이나 명주, 삼베 등으로 만들던 전통 의복은 명절이나 특별한 경우에만 일부 입고, 대량 생산한 서양식의 일상복과 예복을 입는다. 영월군 의생활은 지역적인 특성이 반영되기보다는 전국적·보편적인 경향을 보인다. 여기서는 전통사회 영월군 의생활이 반영된 모습을 알아본다.

[일상복]

일상복은 평상시에 입는 의복이다. 전통사회에서 영월군 남성들은 평상시에 ‘바지’와 ‘저고리’를 입었으며, 여성들은 ‘치마’와 ‘저고리’를 입고 버선을 신었다. 그리고 치마저고리는 거의 홑치마저고리였다. 의복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천은 무명, 명주, 광목, 옥양목 등이며, 여름에는 삼베로 의복을 만들었고, 겨울에는 솜을 넣어 누빈 옷을 입었다.

[일복]

전통사회에서 일할 때, 영월군 남성들은 바지통이 불편하기 때문에 바지 끝에서부터 무릎까지 행전을 하였다. 또는 대님 매는 방향으로 바지를 접어 끈으로 매거나 바지를 걷어 입었다. 여름철 일을 할 때는 상의는 소매가 짧고, 목둘레가 둥글며, 앞에 단추를 다섯 개 정도 달고 좌우에 큰 주머니를 단 등걸이 적삼을 입었고, 하의는 잠뱅이를 입었다. 잠뱅이는 길이가 짧고 통도 좁아 일하기가 편리하였다. 겨울철에는 머릿수건이나 ‘아마위’라 부르는 털실로 뜬 머리 싸개인 방한용 모자를 쓰고 일을 하였다. 그리고 손과 발의 보온을 위하여 ‘감발’과 ‘토시’를 착용하였다. 감발은 다섯 자에서 여섯 자 정도의 무명 헝겊을 두세 폭으로 갈라서 발뒤꿈치만 남기고 발을 감는 발싸개이다. 버선보다 훨씬 따듯하여 발이 덜 얼었다. 토시는 주로 광목으로 만들어 팔에 끼었는데, 솜이나 털을 넣은 것도 있다. 여성들은 일상복과 일복이 거의 구분되지 않았다. 다만 부엌일을 하거나 농사일을 할 때는 행주치마를 허리에 둘렀다.

[외출복]

영월군에서 외출할 때, 영월군 남성들은 저고리 위에 ‘두루마기’나 ‘도포’를 입었다. 그리고 머리에는 갓을 썼으며, 갓은 집으로 돌아올 때까지 벗지 않았다. 도포는 모시나 고운 삼베로 만들고, 두루마기는 주로 흰색 무명으로 계절에 따라서 홑이나 겹으로 만들었다. 여성들은 나들이할 때 반드시 ‘꼬리치마[긴치마]’에 저고리를 입고 머리에는 ‘쓰개치마’를 썼다. 처녀들은 집안에서 검정색 통치마와 저고리를 입었으나, 나들이할 때 빨강색이나 남색의 꼬리치마를 입었다. 개화기 이후 쓰개치마는 사라지고 외출할 때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치마저고리 위에 두루마기를 입었다. 겨울철에는 나이 든 여자들은 머리 앞쪽에 술을 달고 속에 털을 넣고 뒷부분이 긴 ‘남바우’와 금박을 박아 화려하게 꾸미 ‘조바우’를 쓰기도 하였다.

[의례복]

1) 빔

영월군에서는 명절에 ‘빔’이라고 하여 새 옷을 입는 전통이 있었다. 빔은 , 추석, 단오 등에 입는데, 특히 에는 대부분 가족들이 새 옷을 마련하여 입고 새해를 맞는다. 단오에는 처녀들이 빔으로 새 옷뿐만 아니라, 새 댕기를 매었다. 영월군에서는 단오에 새 옷을 입지 않아도 새 댕기는 마련하였다. 빨간 치마와 노란 저고리 또는 색동저고리를 입고, 새 댕기를 매고는 그네를 뛰는 것이 단오의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2) 배냇저고리

영월군에서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배냇저고리를 준비하였다. 배냇저고리는 광목이나 옥양목 등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새 천으로 만들기도 하지만, 천이 귀하던 시절에는 할아버지나 아버지 윗저고리를 뜯어서 만들기도 하였다. 배냇저고리는 깃과 섶이 없으며, 품을 넉넉하게 만든다. 고름을 달지 않고, 여러 겹의 실을 달아 허리를 맨다.

3) 혼례복

혼례 때 신랑은 속옷으로 적삼과 고의[속바지]를 입고 겉옷으로 바지, 저고리, 조끼를 입었다. 그리고 두루마기를 걸치고, 그 위에 사모관대를 하였다. 바지저고리는 옥색 또는 흰색을 한 벌로 입거나, 흰색 저고리에 옥색 바지나 옥색 저고리에 흰색바지를 입기도 하였다. 두루마기는 흰색, 회색, 검정색, 고동색 등을 주로 입었다. 그리고 남색이나 청색으로 가슴과 등에 쌍학흉배를 놓은 단령을 입고, 허리에 각대를 띤다. 머리에는 사모를 쓰고 발에는 목화나 수혜자를 신었다.

신부는 속옷으로 짧은 속속곳, 고쟁이[바지], 단속곳, 속치마, 겉치마 순으로 입고, 겉치마 위에 위치마를 입기도 하였다. 겉치마만 입는 경우에는 빨간색을 입고, 웃치마를 더 입는 경우 겉치마는 홑남치마를 입고, 웃치마는 홑홍치마를 입는다. 그리고 그 위에 초록색 바탕 소매에 색동을 단 원삼을 입었다. 머리에는 족두리를 쓰고 큰 댕기를 늘어뜨린다. 족두리의 밑은 둥글고 위는 육모로 되어 그 위에 칠보단장을 한다. 신은 꽃당혜나 징신을 신었는데, 미투리를 신기도 하였다.

4) 상례복

영월군에서 상이 나면 남자 상제는 바래지 않은 광목 바지저고리나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고, 상주는 굴건제복을 하였다. 굴건제복은 건 위에 높게 올린 것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상복은 육촌까지 입고, 팔촌 이상은 건만 쓰고 행전을 하였다. 여자 상제는 상을 당하면 머리를 풀고, 상복을 입으며, 머리에 테두리를 하고, 허리에는 새끼줄을 둘렀다. 새끼는 왼새끼를 꼬며, 테두리는 새끼줄[] 사이사이에 베 조각을 다섯 개 꼽았다. 상복은 바래지 않은 광목 치마 저고리나 삼베로 만든 상복을 입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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