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택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1217
한자 安宅祭
영어공식명칭 Antaekje
이칭/별칭 안택고사,텃고사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강원도 영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학주

[정의]

강원도 영월군에서 집을 지켜 주는 가신들에게 가정의 안녕과 복을 비는 의례.

[개설]

강원도 영월군에서는 예부터 집마다 안택제(安宅祭)를 지내 왔다. 안택제는 안택이라는 말이 뜻하듯 가정이 평안하고 번창하기를 빌며 지내는 제사이다. 안택고사, 텃고사라고도 일컬어진다. 안택제는 가신(家神)신앙에서 비롯한 의례이다. 각 가정의 집 안 곳곳에는 성주신, 조왕신, 삼신, 쇠구영신, 측신, 지신 등 온갖 가신이 있어 자신의 장소에서 맡은 역할을 하며 집을 지켜 준다. 그래서 사람들은 1년에 한두 번 정도 제물을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어 가신을 위로하는 것이다. 안택제로 가신을 위로하면 그해는 가정에 동티가 나지 않아 무사하게 보낼 수 있다고 믿었다.

영월 지역의 안택제는 연중행사인데, 제삿날이 고정된 것이 아니라 매년 길일을 잡는 일관에게 가서 좋은 날을 받았다. 동네마다 날을 받고 안택을 하여 주는 사람이 있었다. 날을 받으면 가족 모두 집 밖 출입을 삼가고 근신하였다. 고사 3~4일 전에는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부정을 막았다. 금기의 방법이 모든 집이 일괄적으로 같지는 않았고, 제의를 지내는 시간도 새벽에 지내는 집도 있었고 저녁에 지내는 집도 있었다.

영월에서 지내는 안택고사는 대개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첫째는 집주인이 비손을 하는 방법이다. 둘째는 복술이[점쟁이]를 불러 독경을 하는 방법이다. 셋째는 무당을 불러 굿을 하는 방법이다. 이 가운데 영월에서 많이 행하던 방법은 집주인이 직접 하거나 복술이를 부르는 방법이었다.

안택제를 지내는 장소는 집마다 달랐다. 그러나 대체로 가신이므로 집 안에서 행한다. 마당이나 뒤꼍에 터줏가리가 있는 집안에서는 토지신에게 고사를 먼저 올리고, 대청이나 안방에서는 성주신에게, 부엌에서는 조왕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처럼 장소에 따라 신이 기거하므로 집 안 곳곳에 떡을 놓기도 한다. 제물도 집마다 다른데, 백설기 또는 팥시루를 쪄서 시루째 올린다. 소반 위에는 타래실, 북어, 성주를 올리고, 메와 갱을 올리기도 한다. 시루떡 위에는 가족의 숫자대로 숟가락을 꽂기도 한다. 시루떡에 김이 잘 오르면 그해는 안택이 잘되었다고 여겼다. 제물을 차려 빌면서 가정에 아무 탈이 없도록 하여 달라고 빈다. 복술이를 불렀을 때는 복술이가 북을 두드리면서 독경을 한다. 모두 빌고 나면 집안 사람들 모두 각기 소지를 올려 그해 운수를 점친다. 이때 성주 소지와 우마 소지도 올린다. 제의가 끝나면 성주단지를 매단다.

[영월 지역의 구체적인 전승 사례]

1998년 자료에 따르면, 독경을 하면서 안택제를 올리는 북면 공기2리의 한 가정은 석 달 전에 날을 잡고 금기를 시작하였다. 안택제를 지내기 사나흘 전에는 대문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듬성등성 뿌렸다. 제물은 소반 위에 음식을 놓고 조상 시루와 타래실을 올렸다. 그리고 종이를 접어서 성주를 놓고 부엌과 안방에서 안택을 하였다. 안택제의 순서는 다음과 같다. 가신을 앉히고 나서 명당경을 세 번 읽고 안택경을 읽었다. 그다음으로 성주 소지를 올리면서 “인수인가는 백주 한 잔 아픈 사람이 내다보지 못하는 고로 이 정성을 드리오니 그저 소리로 드린 정성 대리로 받으시고 대리로 디린 정성 대리로 받으시고 그냥 받기를 착실히 하옵소서. 이 가정에 천년지나 무가하고 만년지나 무가하도록 하옵시며 그래 일년삼백육십오일 하루 같이 점지 하소옵소서.”라고 하였다. 이렇게 가족과 가축 을 위한 소지까지 모두 올리고, 다시 성주 소지를 올렸다. 소지를 올릴 때 비는 내용은 다 달랐다. 소지가 끝나면 성주단지에 쌀을 넣어 상기둥에 타래실로 매듭을 엮어 매달았다. 안택이 끝나면 떡을 조금 잘라서 성주 아래에 사흘 동안 놓았다. 가족이 모두 모여 앉아 음복을 하고, 소에게도 먹을 것을 나누어 주었다. 금줄은 태워 없앴다.

2015년 자료에 따르면, 영월 지역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하여도 마을에서 80% 이상이 안택제를 지냈고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지내는 집도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자료 조사 당시에는 안택제를 지내는 가정이 여전히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리 쉽게 찾아볼 수는 없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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