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1227
한자 長丞祭
영어공식명칭 Jangseungje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덕구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명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1970년대 - 장승제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덕구리에서 중단
의례 장소 장승제 장소 -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덕구리 지도보기
성격 마을 제사

[정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덕구리에서 행하여지던 장승 제례.

[개설]

장승은 커다란 나무를 숭배하던 원시 신앙에서 비롯된 마을 수호신의 상징이다. 장승이 마을 어귀에 무서운 형상을 하고 서 있는 것은 마을에 나쁜 귀신, 재앙, 질병이 침입하는 것을 쫓기 위함이다. 그 밖에도 장승은 옛날 여인네들이 정화수를 떠 놓고 자식을 점지하여 달라거나, 길 떠난 남편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으며, 길 가는 나그네들이 괴나리봇짐을 풀어 놓고 쉬어 가는 휴식처와 이정표 역할도 하였다. 사람들은 이러한 장승을 마을 수호신으로 여겨 액운을 막고 전염병을 물리치기를 빌며 장승제를 지냈다. 이처럼 마을 수호신에게 지내는 동신제의 성격을 띤 장승제는 강원도 영월군에서도 마찬가지 목적으로 행하여졌다.

영월 지역의 장승제로는 상동읍 덕구리 장승백이에서 지내던 장승제가 대표적이다. 덕구리는 1960년대 이전까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속하던 지역이며 강원도와 경상도의 관문이었다. 덕구리의 옛 우전거리[소시장] 길 옆에는 두 개의 큰 목장승이 서 있어 이곳에서 장승제를 올렸다고 한다. 장승백이의 장승은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마을로 들어오는 질병, 잡귀, 재앙 등을 막는 동시에 이정표의 구실도 하였다고 전하여진다.

[신당/신체의 형태]

덕구리 장승백이의 목장승에는 각각 “천하대장군(天下大將軍)”, “지하여장군( 地下女將軍)”이라고 쓰여 있었다고 한다.

[절차]

덕구리 장승백이에서 지내는 장승제는 제관을 선발하는 것으로 시작하였다. 주민 중에서 길일인 생기복덕일(生氣福德日)을 따져서 제관과 유가를 선정하고 제관의 집 문 앞과 목장승에 왼새끼로 꼰 금줄을 치고 마을 뒷산의 황토를 가져와 뿌렸다. 제관은 목욕재계하고 부정한 것을 보지 않으며 되도록 문밖 출입을 피하였다. 아내와는 합방도 하지 않았다. 제물로 돼지머리와 삼색과실, 포, 산적, 떡 등을 장승 앞에 차려 놓았다고 한다. 제의 절차는 강신(降神), 초헌고축(初獻告祝), 첨작(添酌), 아헌(亞獻), 종헌(綜獻), 소지(燒紙), 음복 순으로 진행되었다.

[부대 행사]

덕구리 장승백이에선 장승제가 끝나면 마을 사람들이 음식을 차려 한마당 잔치를 벌였다고 한다.

[현황]

장승백이의 장승과 장승제는 1970년대 새마을운동 당시 소멸되어 현재는 장승제를 행하지 않는다.

[영월 지역의 장승 관련 지명]

영월 지역에는 상동읍 덕구리의 장승백이를 포함하여 장승과 관련한 지명이 여럿 존재한다. 이들 지명 유래를 통하여 장승제의 흔적을 살펴볼 수 있다. 먼저, 남면 조전리의 ‘장승개’는 조전리 하촌에 있으며 옛날 행인들의 이정표 역할을 하던 장승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이곳은 영월읍 흥월리의 장승개와 남면의 양연역, 그리고 하원(下院)을 지나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로 가는 교통의 중심지였다. 한반도면 쌍용리의 ‘장승거리’는 월촌마을과 삽둔마을 사이, 제천으로 가는 기차 철다리 부근에 있는 마을이다. 옛날 마을 어귀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쓴 목장승이 서 있었으므로 ‘장승백이’ 또는 ‘장성거리’라 불렀다. 장승은 사람들이 많이 다니던 옛길에 세웠는데, 행인들에게는 이정표 역할을 하였고 마을 사람들에게는 동네 수호신 역할을 하였다. 영월읍 흥월리의 장승개 또는 장선이는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으로 가는 옛길이었다. 옛날 이곳에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라고 새긴 장승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남면 광천리의 장승백이, 북면 문곡리의 장승백이 모두 마을 입구에 장승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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