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302040
영어공식명칭 Magut
이칭/별칭 마곡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엄흥용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자연마을

[정의]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마굿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방절리(芳節里)의 본마을이며, 조선 제6대 단종(端宗)청령포에 유배되었을 때 단종을 따르던 충신들의 발자취가 많이 남아 있는 마을이다. 마굿은 풍수학적으로 배가 떠 있는 ‘행주형국(行舟形局)’의 분지로 300여 년 전에 마을 한가운데에 큰 느티나무를 심어 돛대 역할을 하였다. 그리고 배에 물이 들어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동네서 우물을 파는 것을 금기시하였다. 또, 배가 다른 곳으로 흘러가지 못하도록 고정시키기 위하여 돌을 쌓아 돈대(墩臺)인 ‘돌단배기’를 만들었다. 2012년에 수해 방지를 위하여 정부에서 마굿에 강변저류지를 만들었다. 마을 사람들은 행주형국의 마을에 호수가 생겨 앞으로 더욱 번창할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마곡 동북쪽에 있는 커다란 뼝대바위는 소머리와 똑같이 생겼는데 뼝대바위에 재미있는 전설이 전하여 오고 있다.

[명칭 유래]

마굿 동북쪽에 있는 소머리 바위산은 소가 엎드려 있는 와우형국(臥牛形局)으로 마굿마을은 소가 사는 소마굿간에 해당한다 하여 마굿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이후 1914년 토지조사사업을 하면서 마굿이라는 고유의 지명이 마곡(麻谷)으로 왜곡되었다.

[형성 및 변천]

마굿영월엄씨의 집성촌으로 영날산에 교수공계 중시조인 12세 엄억령(嚴億齡)의 묘, 우물골에 지평공계 중시조인 엄여성(嚴汝誠)의 묘, 노루목산에는 통정대부를 지낸 장사랑공계 엄낙숙(嚴樂淑)의 묘역이 있다. 또, 엄문삼절(嚴門三節) 중의 한 사람으로 마굿에 살았던 효자 엄민도(嚴敏道)에게 1708년(숙종 34)에 정려가 내려진 것으로 보아 마굿은 이미 300여 년 전에 마을이 형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57년에 농지개량조합과 수리조합을 결성하여 청령포에 양수장을 만들고 수로공사를 통하여 물을 끌어와 논농사를 생업으로 하였다. 그러나 2012년에 영월강변저류지수변공원이 조성되면서 소규모의 밭농사를 짓는 마을로 바뀌고 아파트가 세워져서 외지인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자연환경]

마굿은 옛날에 청령포 잔다리 근처를 돌아 흐르던 하천이 곡류(曲流)의 절단으로 인하여 구하도(舊河道) 지형이 형성된 곳으로 고등학교 지리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마굿구하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완벽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2012년 강변저류지가 조성되기 전에는 마굿 사람들이 구하도에서 논농사를 지었다. 마굿은 상습 침수지역으로 1972년, 1990년, 2002년[태풍 루사]에 큰 피해를 입었는데, 정부는 2012년 방절리 마굿 일대에 홍수 조절 기능을 가진 강변저류지를 조성하였다. 저류 면적은 68만 7805㎡, 저류량은 290만 톤이며 전망대, 생태습지, 생태공원, 자전거도로, 산책로 등 수변공원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현황]

마굿은 논농사를 많이 하였으나 정부의 4대강 사업으로 홍수 방지를 위하여 마을의 절반이 강변저류지로 변하여 영월군에서 동·서강정원으로 가꾸고 있다. 마굿은 영월의 관문으로 영월~제천 자동차 전용도로인 국도 제31호선이 마을 북쪽을 지나고 있다. 마을 한가운데 영월강변저류지수변공원과 청령초등학교, 신아아파트, 엄민도 효자각, 엄득문 효자각, 엄씨 열녀각 등이 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마굿 주민들은 새벽에 참외, 옥수수, 과일, 농산물을 지게에 지고 영월아침시장을 다녔다. 이때는 영월군의 인구가 12만 명이 넘고 마차광업소, 상동광업소, 옥동광업소 등 탄광촌의 경기가 좋아 장사가 잘되었다. 2021년 현재 신아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영월 읍내로 출퇴근 하는 자영업자들이 많다. 단독 주택은 30여 가구에 70여 명의 주민들이 생활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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