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6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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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永祚 |
이칭/별칭 | 임세순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황율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홍순창 |
출생 시기/일시 | 1943년 10월 19일 - 임영조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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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91년 - 임영조, 제1회 서라벌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3년 - 임영조, 제38회 현대문학상 수상 |
활동 시기/일시 | 1995년 - 임영조, 제9회 소월시문학상특별상 수상 |
몰년 시기/일시 | 2003년 5월 28일 - 임영조 사망 |
출생지 |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황율리 |
묘소 | 종로성당 묘역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
성격 | 시인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한국시인협회 임원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출신의 시인.
[개설]
임영조(任永祚)[1943~2003]는 본명이 임세순이며 1943년 충청남도 보령시 주산면 황율리에서 태어난 시인이다.
[활동 사항]
임영조는 주산중학교를 졸업하고 명천동으로 이주하여 성장하였다. 주산중학교 재학 시절, 지리 교사로 부임한 신동엽(申東曄)[1930~1969] 시인으로부터 ‘기억력 좋고 글 잘 쓰는 아이’로 주목받았던 임영조는 고등학교 진학 후 『진달래』, 『한국 명시 전집』, 『한국 시인 전집』 등을 독파하면서 시에 눈뜨기 시작했고, 신동엽 시인에게 본격적인 시작(詩作) 지도를 받았다.
서라벌예술대학 문창과를 졸업하고, 1970년 『월간문학』 제6회 신인상을 받은 시 「출항」이 김현승, 서정주, 박두진, 김남조에 의해 추천되었으며, 1971년에는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박남수(朴南秀), 서정주(徐廷柱), 김종길(金宗吉)에 의해 「목수(木手)의 노래」가 당선되어 문단에 데뷔하였다.
임영조는 신춘문예라는 관문을 통하여 문단에 화려하게 등단하였음에도 정작 그의 첫 시집은 등단 이후 수십 년이 흐른 뒤에야 출간되었다. 그 시집이 바로 『바람이 남긴 은어』[고려원, 1985]이다. 이후 그의 두 번째 시집 『그림자를 지우며』[현대문학사, 1988년]가 출간되었다.
문학평론가인 조남현은 “임영조의 첫 시집이 한 시인으로서의 진정한 제2의 출발을 알리는 것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했다면, 제2의 시집은 그 동안 수십 년간 공백기의 의문을 가셔 주는 독특한 관심 세계와 창법을 지닌, 그리고 안정감과 견고함이 뚜렷한 발성법을 지닌 작품들”이라고 평하였다. 그 이후로도 꾸준한 시작(詩作) 활동을 하였으며, 1990년대에 들어 많은 평론가들과 문학인들로부터 주목받는 시인으로서의 자리를 굳히게 되었다.
1994년 서울시 동작구 사당동에 ‘이소당(耳笑堂)’을 마련하여 시작과 독서에 전념하는 한편, 여러 대학의 문예창작학과에서 시 창작을 지도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한국시인협회 임원으로 활동하는 등 시인으로서의 충실한 삶을 영위하다가 2003년 5월 28일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저술 및 작품]
시집으로 『바람이 남긴 은어』, 『갈대는 배후가 없다』, 『흔들리는 보리밭』, 『귀로 웃는 집』 등이 있다.
[묘소]
임영조의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종로성당 묘역에 있다.
[상훈과 추모]
임영조는 1991년 제1회 서라벌문학상, 1993년 제38회 현대문학상, 1995년 제9회 소월시문학상특별상을 각각 수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