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08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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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砬將軍說話 |
영어의미역 | Folk Tale of General Sillip |
이칭/별칭 | 「신립 장군 이야기」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
집필자 | 김상철 |
[정의]
경기도 부천시 도당동에서 신립 장군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신립 장군 설화」는 임진왜란 때 충주의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왜병을 맞아 싸우다가 죽은 신립 장군의 요절에 얽힌 인물 전설이다. 사냥을 나왔던 신립 장군이 길을 잃고 헤매다 찾아간 가족을 잃은 여인 집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원인이 되어, 여인이 품은 한 때문에 임진왜란 때 충주에서 일찍 전사하게 되었다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상황]
1988년 부천시사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부천시사』에 실려 있다. 부천시 도당동에 현지조사를 나가 주민 구봉서[남, 70]와 인터뷰하여 채록하였다.
[내용]
옛날에 권율 장군의 사위가 세 분 있었는데, 맏사위가 달래강에서 죽은 신립 장군이다. 둘째는 오성부원군 이항복이고, 셋째가 정춘신이다. 신장군은 부모 없이 권율 장군의 맏사위로 데릴사위로 들어갔다. 어느 날 신장군이 사냥을 돌아다니다 해가 넘어가자 길을 잃었다. 밤중이 되니 집에 갈 수도 없어 걱정하고 있는데, 어디서 반짝거리는 불이 있어 그리로 찾아갔다.
주인을 찾았으나 영 대답이 없어 대문 안으로 들어가 중문에서 소리를 지르니 얼마 후에 초롱불을 들고 젊은 처자가 나와, “웬 손님이 밤중에 이렇게 찾으십니까?” 하고 물었다. 신장군은, “나는 사냥하러 나왔다가 길을 잃은 사람인데 밤중이 돼서 길을 찾지 못해서 그러니 처마 끝에서라도 하룻밤 유하고 갔으면 좋겠소.” 하고 청했다. 그러자 들어오시라고 하며 방에 앉혀놓고 얼마나 시장하시느냐면서 밥을 해 들여왔다. 밥을 다 먹고 나자 낭자는, “이제 요기를 마쳤으니 빨리 이 집을 나가시지요.” 라고 말했다.
“나가다니 무슨 소린가. 밥까지 해주고 나가라니 웬일이오?”라고 하자 낭자는, “이 집은 흉가가 돼서 몇 해 전부터 도깨비가 나와서 집안 식구를 하나씩 다 잡아먹고 지금 나 혼자 남아 있는데 오늘밤에는 내 차례입니다.” 한다. 신장군은 원체 장사라 도깨비나 귀신이 하나도 무섭지 않았다. 어떤 도깨비가 사람을 잡아가느냐고 물으니까 머리에는 삼지창에 투구를 쓰고 맨발로 들어와서 사람을 하나씩 잡아간다고 했다.
도깨비가 들어올 때가 되면 바람이 진동하고 대문짝이 부서지는 것처럼 하며 들어온다고 했다. 그래서 식구들은 다 죽고 낭자는 여자의 몸이라 어디 갈 데도 없고 하여 여기 있는데, 오늘밤은 낭자 자신이 잡혀가는 날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낭자는 신장군에게 “손님께서 여기 계시다가 화를 당하시면 무슨 경우입니까? 나는 타고난 팔자니까 당하지만 선비님은 빨리 가시지요.” 하고 간곡히 청하는 것이다.
신장군이 “세상에 나는 도깨비 아니라 귀신·호랑이가 나와도 무섭지 않은 사람이니 상관 말라! 내가 저 다락에서 보면서 귀신이 나오는 때를 지키고 있을 테니 가만히 계시오.”라고 말하였다. 여자는 신장군에게, 손님에게 불행한 일이 있더라도 원망은 하지 말라고 했다. 그런 걱정은 말라고 하며 다락에 가서 숨어 앉아 기다리고 있으니 과연 자정쯤 돼서 바람이 일고 천둥 치듯이 소리가 나며 대문이 열리면서 들어오는 것을 보니, 머리에는 삼지창 투구를 쓰고 발은 맨발로 누런 갑옷을 입고 들어오고 있었다.
신장군은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았는데 도깨비가 별안간 들이닥치자 노끈 뭉치를 도깨비에게 던졌다. 그러자 도깨비는 꼼짝을 못하고 뒤로 도망쳐 내뺐다. 도망간 도깨비를 찾을 수가 없어 다시 방에 들어와 보니 낭자가 까무러쳐 있었다. 그래서 신장군이 물을 떠다 입으로 뿜어서 깨어나게 했다. 낭자가 깨어나자 신장군은 당신네 집에서 무슨 짐승을 기른 일이 없느냐고 물었고, 낭자는 짐승이라고는 닭밖에 없었다고 했다. 누런 수탉으로 3년 묵은 것인데 누가 잡아갔는지 물어갔는지 없어졌다고 한다.
이에 신장군은 알았다고 하고 이튿날 아침을 먹고 달아난 자국을 찾아보려고 하니 노끈 뭉치가 발에 걸려서 끈이 풀려 있었다. 그 길을 쫓아가 보니 그 집 뒤 큰 바위 속에 들어가 있었다. 그래서 바위를 집어치우고 보니 누런 수탉이 들어 앉아 있었다. 수탉을 때려죽이고 내려와 보니 부모형제들이 모두 건넌방에 죽어 있었다. 신장군이 시체를 모두 파묻어 주고 나자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낭자는 부모형제의 원수를 갚아 주었으니 자기를 데리고 가서 노비라도 좋으니 좇아가서 살겠다고 청했다. 신장군은 데릴사위로 얹혀살고 있기 때문에 난처하니 남매의 의를 맺자고 했다. 낭자가 그렇게 하자고 했다. 그러나 데려가면 집에서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 당장 데려갈 수 없으니, 가서 승낙을 받아가지고 다시 오겠다고 하며 기다리라고 했다.
낭자가 그리 하자고 해서 신장군이 한참을 내려가고 있는데 “오라버니! 오라버니!”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그 집에 불이 붙어 있고 낭자는 지붕꼭대기에 올라가 있었다. 결국 낭자는 불에 타 죽었다. 신장군이 타 죽은 낭자까지 파묻어 주고 거기서 잠을 잔 후 이튿날 아침에 출발하여 한 나절 만에 자기 집에 도착했다.
집에 들어가니 권율 장군이, “내가 너를 잘못 봤다. 너 어디 갔다 왔느냐?” 하고 묻자 신장군이 그간의 사항을 이야기했다. 권율 장군이 “예끼 이놈! 내가 너를 잘못 보고 사위를 삼았구나. 넌 제 명에 못 죽는다. 참 유한이다.”고 말했다. 그 후에 여진족이 침입했을 때 신장군과 이장군이 무찔렀다. 싸울 때 그 여자가 이러저러하게 싸우면 이긴다고 가르쳐 준 대로 하니 백 승을 하여 다 물리치고 돌아왔다. 그래서 나라에서 큰 상을 받았다.
그런데 임진왜란이 닥쳐 신장군이 상주(尙州)까지 내려가 싸웠으나 원체 전력이 약해 불가항력일 때 이장군이 조령(鳥嶺)에서 매복을 하고 있자고 하였다. 그러나 그날 밤 신장군의 꿈에 그 여자가 나타나 충주(忠州)까지 후퇴하라고 하였다. 그 말을 듣고 신장군이 충주의 달래강에 와서 배수진을 쳤다. 그러나 여기서 신장군이 전사를 했다. 그 여자를 살려주지 않았기 때문에 싸움에서 실패를 보게 된 것이다. 그 여자의 한이 맺혀 신장군이 죽은 것이라고 한다.
[모티프 분석]
「신립 장군 설화」는 전국적으로 전승되고 있는 광포설화(廣布說話)이다. 주요 모티프는 ‘신립의 은혜 베품’, ‘낭자의 소원과 죽음’, ‘낭자의 원한’ 등인데, 부천 지역에 전해지고 있는 「신립 장군 설화」는 임진왜란 당시 안타깝게도 자신의 재능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요절하게 된 원인을 해명하고 있다. 신립 장군이 그 재능에 비해 너무도 일찍 요절했기 때문에 후대에 이러한 내용이 첨부되어 전승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신립 장군 설화」는 설화의 특성상 역사적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다. 신립은 경상도 사람이 아니라 황해도 평산 출신이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에 활약한 권율의 사위 또한 아니다. 신립의 장인은 무인(武人)인 최필신이다. 이와 같이 권율의 사위라고 설정한 것은 신립의 비범성을 나타낸 것이며, 만약에 남매의 의를 맺지 않고 낭자를 아내로 받아들였다면 임진왜란 때 요절하지 않고 큰 공적을 세웠을 것이라는 민중의 바람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