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1601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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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貴人趙氏墓 |
영어공식명칭 | Tomb of a royal concubine Mrs. Jo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경기도 부천시 원미로281번길 35[여월동 산32]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희태,견수찬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697년 - 귀인 조씨 탄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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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780년 - 귀인 조씨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780년 - 귀인 조씨 묘역 조성 |
이장 시기/일시 | 2005년 4월 - 귀인 조씨 묘 이장 |
문화재 지정 일시 | 2021년 8월 2일 - 귀인 조씨 묘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6호로 지정 |
현 소재지 | 귀인 조씨 묘 - 경기도 부천시 원미로281번길 35[여월동 산32] |
원소재지 | 귀인 조씨 묘 - 경기도 부천시 작동 산112-19 |
성격 | 봉분 |
관련 인물 | 귀인 조씨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2단 석축 |
관리자 | 전주이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6호 |
[정의]
경기도 부천시 여월동에 있는 조선 후기 영조의 후궁인 귀인 조씨의 묘.
[개설]
귀인 조씨(貴人趙氏)[1697~1780]에 대한 사항은 사위인 황인점의 창원황씨 가문에서 전해 오는 『영세보장(永世寶藏)』에 수록된 귀인풍양조씨지묘표를 통해 알 수 있다. 귀인 조씨는 1697년(숙종 33) 10월 16일 아버지 풍양조씨와 어머니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1716년 10세의 나이로 입궁하여 29세인 1726년(영조 2)에 숙원(淑媛)이 되었다.
1740년(영조 16) 영조의 열 번째 딸인 화유옹주(和柔翁主)를 낳았다. 화유옹주 위로 낳은 신생옹주(新生翁主)도 있었으나 일찍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후 숙의(淑儀)가 되었다가 1778년(정조 2) 귀인(貴人)이 되었다. 1780년 84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정조는 1797년(정조 21) 화성 행차를 위해 부평을 지나며 귀인 조씨 묘와 화유옹주 묘에 관원을 보내 제를 올리기도 하였다.
[위치]
귀인 조씨 묘는 부천시 여월동의 전주이씨 묘역 내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변천]
귀인 조씨 묘는 본래 작동 산112-19번지에 조성되어 있었으나, 2005년 4월 현재의 자리로 이장하였다. 이장하기 전 작동에 있던 귀인 조씨의 묘는 남향의 배치에 묘 주변을 거대한 돌이 에워싸고 있어, 이 묘를 통해 당시 왕실 묘의 위용과 풍수관념을 볼 수 있었으며, 이장되기 전의 묘역 인근에는 신생옹주 묘가 있었다고 한다. 귀인 조씨 묘는 2021년 8월 2일 부천시 향토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봉분은 2단의 석축 위에 놓여 있다. 특히 두 번째 석축은 장방형의 화강암 판석으로 축조되었다. 묘 앞에는 혼유석 1기, 비석 1기, 향로석 1기, 망주석 2기 등의 석물들이 갖추어져 있고, 이 가운데 비석과 망주석이 세워져 있다. 묘비는 옥개형으로 높이는 149㎝이며, 상석의 크기는 가로 131㎝, 세로 88㎝, 두께 42㎝이다.
묘표는 귀인 조씨가 세상을 떠난 지 17년 만인 1797년에 세워졌으며, 글은 사위인 황인점이 지었다.
[금석문]
귀인 조씨 묘 앞에 세워진 비석 전면에는 ‘귀인풍양조씨지묘(貴人豊壤趙氏之墓)’가 음각되어 있다.
[현황]
귀인 조씨 묘는 황인점 묘, 화유옹주 묘와 나란히 조성되어 있으며 잘 관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귀인 조씨 묘는 이장을 하면서 원래의 모습은 변형되었으나, 조선 후기 왕실 묘의 양식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