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1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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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岩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윤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청도읍의 동북쪽 가장 변두리에 있는 마을로 경산과 경계를 짓고 있으며, 신암과 중리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명칭 유래]
용각산 바로 밑에 자리 잡은 덕암리의 지명에 대한 별다른 기록은 없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도군 용산면의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중리동을 병합하여 덕암동이라 해서 대성면에 통합하였다. 1940년 대성면이 청도면으로 개명되면서 청도면 덕암동이 되었고, 1949년 청도면이 청도읍으로 승격하면서 청도읍 덕암리가 되었다. 1988년 덕암동에서 덕암리로 명칭을 바꾸었다.
청도읍에서 보행으로 경산 지역을 다닐 때는 대부분 이곳으로 통해서 갔다고 한다. 보리사(菩提寺) 절터가 있어 보릿고개로 알려진 고개는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를 거쳐 경산으로 가는 길과 왼쪽 숫골로 해서 성현으로 가는 길이 바로 북쪽 산 고개에서 이루어진 삼거리이다.
1800년대 용산면으로 있을 때 이 마을에 마근 시장(막은재)이 있어 주변의 하도 사람과 성현 사람들은 이 시장을 이용했다고 한다. 또 중리인 새각단은 중앙 고속 도로 신설시 발굴된 옹기굴이 있다. 옹기를 만들었고 옹기가 팔려가기 전에 모아둔 지역의 대부분 이름이 신기. 또는 새터, 새각단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 이곳도 그런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할 수 있다. 마을 입구에는 성황당이 있어 해마다 산신제를 드렸고, 일제 강점기에도 소를 잡아서 제를 올렸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소 잡는 것도 모두 허가제였지만 마을 사람들의 단합에 위정자도 말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용마와 장군의 역리로 오산이 생겼다는 전설도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자연 환경]
청도 팔경 의 하나인 용각 모우(龍角暮雨)로 잘 알려진 덕암리는 해발 고도 약 200m로 높은 지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동·서·북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며 남쪽으로 트여 있어 대부분의 경작지가 다랑논이다. 그러나 흙이 물 가두기 좋은 진흙이어서 일찍부터 논농사를 짓기 위해 저수지를 많이 만들었고 이 지역의 흙으로 옹기를 만들었으니 흙과 나무와 장인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현황]
2012년 현재 면적은 3.96㎢이며, 총 138가구에 295명[남자138명, 여자157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청도읍 내리, 서쪽은 화양읍 삼신리, 남쪽은 화양읍 진라리·청도읍 무등리, 북쪽은 경산시 남천면 하도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덕암 1리, 덕암 2리가 있으며, 신암·중리·새각단 등의 자연 마을이 있다.
덕암리는 넓은 면적의 경작지를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 밭으로 일구어져 있다. 용각산 중턱까지 밭으로 개간하여 복숭아와 감 농사를 짓고 있다. 덕암리의 서쪽을 중앙 고속 도로가 남북으로 지나고 있다. 덕암리에는 남원 양씨양규적을 추모하는 추원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