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230069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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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逸老 |
영어음역 | Yi Ilro |
이칭/별칭 | 회수(晦叟),송포(松圃)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칠곡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장영복 |
[정의]
조선 중기 칠곡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합천(陜川). 자는 회수(晦叟), 호는 송포(松圃). 고려 두문동충신(杜門洞忠臣)인 사인(舍人) 이치(李致)의 후손이며, 대사간 이세림(李世琳)의 손자이고 증 이조참의(吏曹參議) 이돈(李敦)의 아들이다.
[활동사항]
1613년(광해군 5)에 상소하여 이이첨(李爾瞻)을 제거하려다 10년간 위리안치(圍籬安置: 죄인이 귀양지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집 둘레에 가시로 울타리를 치고 그 안에 가두어 두던 일)되었다. 1633년(인조 11)에 내섬시(內贍寺) 참봉에 제수되었다. 1636년(인조 14)에 종묘(宗廟)의 봉사(奉事)로 소환되니, 왕이 ‘곧은 신하’라고 칭찬하였다. 다음 해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의 신위를 모시고 김선원(金仙源), 이죽총(李竹總), 송시은(宋時隱), 이동천(李東川) 등과 같이 강화도로 피난갔다가 성이 적에게 함락되자 혈서(血書)로써 시(詩)를 한 수를 남기고 형 이일영(李逸英)과 같이 강도(江都)에서 순절하였다.
[상훈과 추모]
1666년(현종 7)에 통훈대부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증직되고 정문이 내려졌다. 1807년(순조 7)에 나라에서 부역을 면하여 주었다. 1834년(순조 34)에 형제의 후손을 다시 급복(給復)한 후 부인과 함께 한 가문에 사절(四節)을 정려(旌閭)하여 경상북도 칠곡군 동명면 금암리 태봉산 밑에 일문사절각(一門四節閣)이 세워졌다. 합천 향사(鄕祠)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