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달성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80413
한자 三一 運動[達城郡]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대구광역시 달성군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19년 3월 30일연표보기 - 동화사 지방 학림의 대구 남문 시장 만세 운동 전개
전개 시기/일시 1919년 4월 15일 -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만세 운동 전개
전개 시기/일시 1919년 4월 26일 -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 만세 운동 전개
발생|시작 장소 남문 시장 - 대구광역시
종결 장소 미대동 - 대구광역시 달성군 공산면
성격 독립 만세 운동

[정의]

1919년 경상북도 달성군에서 전개된 독립 만세 운동.

[역사적 배경]

일제는 민족 동화 정책을 기초로 해서 한국을 식민 지배하였다. 1910년대 일제는 헌병 경찰 제도를 통한 억압적인 무단 통치를 실시하였다. 또한 일제는 토지 조사 사업과 회사령을 실시하여 조선의 경제와 농민들에게 큰 타격을 입혔다. 특히, 토지 조사 사업은 농민의 토지 소유를 폭압적으로 소멸시킴으로써 소작 조건을 악화시키고, 자소작농을 소작농으로 몰락시켰다. 이로 인해 각계각층에서 일본에 대한 저항 의식이 높아 갔다. 여기에 미국윌슨 대통령의 민족 자결주의와 러시아 혁명에 영향을 받아 전민족적인 항일 운동으로 3·1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경과]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독립 만세 운동이 3월 8일 대구의 서문 시장으로까지 번지자 달성군에도 그 영향력이 미치게 되었다. 3월 30일 동화사 지방 학림의 대구 남문 시장 시위, 4월 15일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시위, 4월 26일 공산면 미대동 시위 등이 차례로 일어나면서 만세 시위 운동이 더욱 확산되었다.

[결과]

동화사 지방 학림의 만세 시위 주모자 9명은 1919년 4월 12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각각 징역 10월 형을 선고받았고, 달성군 수성면 대명동 시위를 이끈 강윤옥은 징역 10월, 정용암은 징역 4월을 선고받았으며, 달성군 공산면 미대동 시위 관련자들은 1919년 5월 17일 대구 지방 법원에서 징역 6월에서 8월 형을 선고받았다. 달성군의 만세 시위를 이끈 사람들은 모두 대구 형무소에 수감되어 일제의 탄압을 받았다.

[의의와 평가]

1919년 달성군의 만세 시위 운동은 민족 독립운동의 고양과 확산에 크게 공헌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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