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1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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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東地志 |
분야 | 지리/인문 지리,문화유산/기록 유산 |
유형 | 문헌/전적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이현욱 |
저술 시기/일시 | 1863년 - 『대동지지』 저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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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찬 시기/일시 | 1863년 - 『대동지지』 편찬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32년 - 『대동지지』 필사 |
소장처 |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56-1 |
성격 | 고도서|지리지 |
저자 | 김정호 |
권책 | 32권 15책 |
규격 | 27.2×19.3㎝ |
[정의]
도봉구의 옛 지명인 해등촌(海等村)이 기록된 조선 후기의 지리지.
[개설]
『대동지지(大東地志)』는 32권 15책으로 구성된 조선 후기 지리지로서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하였다. 역사 지리지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신라 시조(新羅始祖) 원년(元年) 갑자(甲子)로부터 시작하여 1863년(철종 14)까지 1920년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
『대동지지』의 저자는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로 유명한 김정호이다. 생몰년은 미상이고 자는 백원(伯元)·백온(伯溫)·백지(伯之)이며, 호는 고산자(古山子)이다. 조선 후기 지도 제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김정호는 『대동지지』를 비롯한 지리지와 『대동여지도』, 『청구도(靑邱圖)』와 같은 지도를 제작하였다.
[편찬/간행 경위]
김정호는 『동여도지(東輿圖志)』를 편찬하였고 최성환과 함께 『여도비지(輿圖備誌)』를 편찬하였으며 이 두 지지를 종합하여 1863년[추정] 『대동지지』를 편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호는 이러한 지지를 바탕으로 하여 『청구도』, 『대동여지도』와 같은 지도를 제작하였다.
[형태/서지]
현재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소장 『대동지지』는 최남선(崔南善)이 소장하고 있던 필사본을 저본으로 하여 1932년에 필사한 것으로, 규격은 27.2×19.3㎝이다.
[구성/내용]
총 32권 15책으로 구성된 필사본이다. 「총목(總目)」, 「문목(門目)」, 「인용 서목(引用書目)」으로 짜인 앞부분, 각도 지지(各道地志)인 권1~24, 「산수고(山水考)」·「변방고(邊方考)」의 권25·26, 「정리고(程里考)」 권27·28, 「역대지(歷代志)」 권29~32로 구성된다.
권1은 경도(京都) 및 한성부로 각기 국조 기년(國朝紀年), 도성, 궁궐, 묘정 배향 제신(廟庭配享諸臣), 각 관부 등과 연혁, 호구, 역참, 시전(市廛) 등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하 각도는 문목의 내용에 따라 각기 해당 사항을 기록하고 있다. 「정리고」는 국내외 주요 교통로와 그 거리를 싣고 있다. 「역대지」는 「방여총지(方輿總志)」라고도 하는데 역사 지리서의 성격을 띠고 있다. 권32에는 고려의 기년, 국도, 5부 방리(五部方里) 등의 사항을 기록하고 있다. 그 가운데 도봉구의 옛 이름인 ‘해등촌’이 기록되어 있다.
해등촌과 관련한 기록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려 숙종 원년, 김위제(金謂磾)가 도선(道詵)의 비기(秘記)에 근거하여 양주 목멱(木覓)이 도성(都城)이 되기에 적합하다고 하였고 동왕 6년 남경 개창 도감(南京開倉都監)을 설치하고 최사추(崔思諏), 윤관(尹瓘)을 보내어 해당 지역을 살펴보게 하였다. 최사추와 윤관의 보고에 해등촌, 용산 등지의 산수를 살펴보고 왔다는 구절이 있다.
[의의와 평가]
『대동지지』는 조선 후기 지리지 편찬의 한 방향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의의를 가진다. 『청구도』 범례에서 확인할 수 있듯, 당대에는 지지(地誌)가 지도의 근본이 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것은 김정호의 여러 지지와 지도 가운데 서로 짝을 이루는 것이 있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지지의 내용은 지도의 기초 자료로 기능하였다. 그러한 측면에서 『대동지지』가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과 같은 형태가 아닌 호구, 전결, 도리(道里) 등에 대한 정보를 충실하게 수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의미를 가진다. 국가의 입장에서 통치와 교화의 목적에서 지도를 제작하는 것과는 다른 수요에 대응하는 목적에서의 조선 후기 지지와 지도 제작이라는 측면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대동지지』의 편찬에 60여 종 이상의 방대한 분량의 참고 자료를 이용하는 등, 자료의 수집에 충실한 것도 『대동지지』의 사료로서의 가치를 높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