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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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蘆海面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류정선 |
[정의]
1914년부터 1963년까지 서울특별시 도봉구에 설치된 지방 행정 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은 1914년 이전 양주군 노원면(蘆原面)의 ‘노(蘆)’ 자와 해등촌면(海等村面)의 ‘해(海)’ 자를 합성한 데서 유래되었다. 조선 시대까지 면(面)은 면적과 인구에서 편차가 컸는데, 근대적인 행정 지배를 위해 면제를 추진하고자 하였던 일제는 우선 면의 구역을 평균화하는 작업을 수행하였다. 이에 따라 1914년 면 통·폐합을 시행하는데, 우선 조선 총독부가 3월 1일 조선 총독부령(朝鮮總督府令) 제111호를 발표하고 이어 경기도에서 4월 1일 경기도령(京畿道令) 제3호를 발표하였다. 이 법령들로 지방 행정 구역은 통·폐합 및 개편을 맞게 되었는데, 조선 시대 도봉구 지역에 해당하는 해등촌면은 노원면과 통합되어 노해면이 되었다.
[내용]
1914년 행정 구역 개편이 되면서 비로소 창동, 도봉동, 방학동 등 현재의 도봉구 지역의 명칭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즉 1912년에 편찬된 『구한국 지방 행정 구역 명칭 일람(舊韓國地方行政區域名稱一覽)』에는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이전의 지명이 담겨 있는데, 양주군 해등촌면에 상루원리(上樓院里)·영국리(寧國里)·무수동(無愁洞)·도당리(陶唐里)·우이리(牛耳里)·마산리(馬山里)·유만리(流滿里)·암회리(巖回里)·원당리(元堂里)·계성리(鷄聲里)·창동리(倉洞里)·소라리(所蘿里)가 소속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1917년에 편찬된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 면리동 명칭 일람(新舊對照朝鮮全道府郡 面里洞名稱一覽)』에 따르면,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이후 노해면에는 도봉리(道峰里)·방학리(放鶴里)·쌍문리(雙門里)·창동리(倉洞里)·월계리(月溪里)·공덕리(孔德里)·상계리(上溪里)·중계리(中溪里)·하계리(下溪里)가 소속된 것으로 기록되었다. 이 중 현재의 도봉구 지역은 도봉리, 방학리, 쌍문리, 창동리에 해당한다.
『신구 대조 조선 전도 부군 면리동 명칭 일람』에 따르면 도봉리는 행정 구역 개편 이전 해등촌면의 상루원리·영국리·무수동·도당리 일부가 통합되어 탄생하였고, 방학리는 역시 해등촌면의 암회리 일부, 도당리 일부, 원당리 일부가 통합되어 탄생하였다. 쌍문리는 해등촌면의 소라리·우이리·계성리·원당리 일부가 통합되어 탄생하였다. 창동리는 기존의 창동리 일부 지역에 유만리 일부, 마산리 일부, 도당리 일부, 노원면의 녹천리(鹿川里) 일부가 통합되어 탄생하였다. 해등촌면 창동리의 일부는 현재의 노원구 월계동에 해당하는 월계리로 포함되었다.
[변천]
일제 강점기와 1945년 해방 이후까지 노해면이 지속되다가, 1963년 1월 1일 법률 제1172호에 의해 노해면 전체가 서울특별시 성북구에 편입되면서 노해면이 폐지되었다. 이 지역은 성북구 노해 출장소가 설치되어 도봉·방학·쌍문·창동리 등을 관할하다가, 1973년 7월 1일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북구·노원구 지역과 합쳐 도봉구를 신설하였다. 이후 다시 1988년 1월 1일자로 서울특별시 노원구가 도봉구에서 분리되었으며, 1995년 3월 1일 서울특별시 강북구가 분리되면서 현재의 도봉구를 이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