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90033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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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朝鮮大和紡績株式會社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류정선 |
[정의]
일제 강점기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 지역에 방적 공장을 설립한 업체.
[개설]
조선대화방적 주식회사(朝鮮大和紡績株式會社)는 1942년에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현 서울특별시 도봉구 창동]에 설립된 회사이다. 해방 직후 조선대화방적 주식회사 공장의 설비 상황을 보면, 직기 150대만을 보유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해방 이전까지 직포 부문에서만 조업이 이루어진 회사였던 것 같다. 조선대화방적 주식회사는 해방 이후 적산(敵産)으로 분류되어 처분되었다. 당시 많은 적산 공장에서 누군가가 연고권을 주장하며 접수한 다음, 공장을 운영하지 않고 돈이 될 만한 기계나 물품들을 내다 팔아서 사익을 채우는 경우가 많았다. 이에 미군정청에서 1945년 11월부터 3개월간 경인 지역을 특별 감찰하여 단속하였는데, 이때 조선대화방적 주식회사도 397만 3500원을 사취한 것으로 밝혀져 문제가 되었다.
조선대화방적 주식회사는 1949년 7월에 회사명을 대아 방직 주식회사(大亞紡織株式會社)로 고치고 사장에 안응진(安應鎭)이 취임하여 조업하였으나, 6·25 전쟁으로 인해 전 시설이 소실되었다. 이후 1952년 4월에 안응진이 일부 잔여 시설을 소개(疏開)하여 남하하였다. 같은 해 6월 잔여 시설 일체를 이희수(李熙洙)가 불하받았으나, 조업이 진행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일부 설비들이 해체된 후 판매되거나 폐기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대화방적 주식회사는 1943년에 공장을 건설하기 위해 경기도 양주군 노해면 창동리 241-5번지에서 연고가 없는 묘지를 정리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거의 부패하지 않은 신장 1.82m[6척]의 남자 미라를 발견하고 경성 제국 대학 의학부 이마무라[今村] 해부학 교실에 넘겨주어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